사람사는 이야기

사람 사는 이야기 (0025) 마지막 망년회

白鏡 2017. 12. 26. 07:31

# 2017-12-22 금요일 오후 6시 해운대 금세연(今世緣)

 

이 날은 우리 초음파실 망년회 날이다.

원래 예약은 16명으로 잡았는데

당일 부모님 우환으로 두 명이 빠지고14명이 참석했다.

 

우리 방 망년회 날은

내 밑에서 직원으로 함께 했던 사람들은 다 모인다.

병원 내 다른 센터로 분사되어 나간 사람들,

재단 산하 다른 병원으로 간 사람들,

병원을 떠나 다른 직종으로 옮긴 사람들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이런지 어언 34년이 되었다.

이래서인지 일부 몰지각한(?, ㅋㅋ)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
마피아) 'Han's Family'라 부르기도 한다.

 

팀장의 사회로 순서가 시작되었다.

먼저 Family boss인 나의 인사 순서.

 

"여러분, 다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고

특히 구 선생, 먼 길 마다 않고 와 주어 고맙습니다.

 

시간은 어김없이 가네요, 한 해가 왜 이리도 빨리 가는지.

시간은 나이만큼 빨리 간다는 말이 갈수록 실감이 납니다.

 

올 해 망년회는 참으로 뜻 깊은 망년회가 될 것 같습니다.

공식적으로 여러분과 함께하는 망년회는 오늘이 마지막이 될테니까요.

 

이사를 갈 때 우리는 결정할 것이 세가지 있지요

남기고 갈 것과 버리고 갈 것, 그리고 가지고 갈 것.

 

이제 며칠만 지나면 누구나 내년이라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한 집에서 방만 옮기면 되지만

나는 그 동안 35년간 살던 집을 떠나

2의 인생이란 미지의 세계로 이사를 갑니다.

 

그래서 요즈음 부지런히 버리면서 집을 비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를.

 

그것은 아마도 나와 함께했던 추억을 남기고 가겠지요.

그리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간직하고 갈 것인지를.

 

그 것 역시 그 동안 여러분과 함께한 추억이겠지요.

 

그리고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시 만날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 추억이라는 창을 통해 서로 소통할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같이 모여 함께 하는 오늘 이 순간은

또 한 장의 추억 페이지를 끼워 넣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보다 기억에 남는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예년과 달리 나름대로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우선 오늘 우리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 집을 통째로 빌렸구요.


둘째는 그 동안 업체나 기관으로부터 받은 잔잔한 선물들,

언젠가 써야지 하며 내 방 서랍들 속에 묵혀둔 물건들 다 꺼집어 내어

오늘 여러분 모두에게 줄 선물로 들고 왔구요,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의 흥을 돋우기 위해 기타와 노래책을 준비 해 왔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나에게 무얼 주느냐?

 

이 집 주인장이 정성스레 차려놓은 음식 맛있게 싹 다 비우고

이 집에 있는 술 싹 다 마시고

 

그리고 매일 함께 일하는 가족 같은 동료들과

서로 감사의 마음과 따뜻한 정을 나누면서

오늘 하루 마음껏 흥겹게 즐기는 겁니다.

 

그것이 오늘 여러분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동무들!        알겠지비   

 

"~~~~~~"


이상!      ~~~~~!"

 

이어서 세 사람의 건배사,

일 년 동안 있었던 공적 사적 대소사 보고(報告)

공식 일정이 끝나고 즐거운 만찬시간.

 

다른 이자까야나 일식집에선 잘 맛 볼 수 없는

집 반찬 같으면서도 독특한 메뉴와 함께

 

이 날 우리 모임을 위해

주인장께서


직접 철마에 가서 잡아온 큰 오리 네 마리에

한약제 14가지를 넣고 푹 고은 건강만점 특제 '오리탕'까지



다들 맛있게 먹고 즐겁게 담소하며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행복하다.

'아이고, 내 새끼들~~'



차려진 음식 접시에 젓가락질이 뜸해질 무렵

준비해온 초들을 맥주잔 뒤집어 그 꽁무니에 올리고

기타 옷 벗기고, 조명 낮추고, 소주병 안에 숟가락 꼽아서 마이크 세팅하고

파티모드로 전환.


기타 반주와 함께 나의 선창으로


동요와 주옥 같은 7080 노래를 다같이 합창.


'얼어 붙은 달 그림자~~'의 등대지기,
'
뜸북 뜸북 뜸북새~~'의 오빠생각,

'푸른 하늘 은하수~~'의 반달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의 두 개의 작은 별,

로 시작해


흥겨운 노랫가락

'조개 껍질 묶어~~'의 라라라 송과

'닭장 속에는 암탉이~~'의 동물농장으로 합창을 마무리 했다.

 

다음으로는 장기 자랑 순서.

먼저 포장된 상품을 진열해 놓고 상품목록을 불러 준 후

노래를 하든 춤을 추든 개그를 하든 무얼 하든 하나 하고 나면

자기가 원하는 물건 하나 마음대로 골라 가고 그 자리에서 개봉하기로 했다..

 

자기가 갖고 싶은 물건 타 가려면 남보다 빨리 나와야 한다.

그러니 안 나오려고 삐쭉 거릴 시간이 없다.

일사천리로 진행




(중간에 찍은 사진이라 상품이 얼마 없다)


마지막으로 오부리 타임.

노래 부르고 싶은 사람은

미리 나눠준 내가 만든 노래 가사집(동요~5060~7090까지) 중에서 한 곡을 골라


오부리 비 천원(이상)을 내고 신청하면

나가시 밴드인 내가 어떤 키로 부르든 반주를 한다.

만일 반주를 제대로 못하면 돈 도로 돌려주고,



이렇게 즐거운 시간 보내다 문득 시계를 보니 11시가 넘었다.

한 자리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섯 시간을 보낸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오부리 모은 돈에 김실장이 내 놓은 찬조금을 합하여

다들 택시비 만원씩 나누어 주고 창원서 온 구 선생에게는

만원짜리가 모자라 바꾸지 못한 오만 원짜리 한 장을 주었다.


대리기사가 오고

문 앞에 대기한 차에 오르니

다들 둘러 서서 '안녕히 가십시오' 조심해 가십시오'

하며 고개를 숙인다.


차창을 내리고 손을 흔드는 사이 차는 출발했다.

이런 단체 배웅을 받는 것도 오늘로 마지막이겠지………...

 

차 속에서 눈을 감으니

기분 좋은 피로와 취기가 올라 오면서

이들과 나눈 지난날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한 행복한 시간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