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일은 음력으로 1월 23일이다.
그래서 지난 주일이 내 생일이었다.
생일이 오기 전 아내가 물었다.
'생일선물로 뭐 해 줄까요?'
그러자 내 입에서는 '자팡이'란 말이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와
나도 놀랬다.
보통은
'선물은 무슨…, 저녁이나 먹으면 되지~'
하고 넘어가는데 말이다.
한 평생 사치라고는 모르고 살아오다가
이 나이가 되니
뭔가 하나 정도는 사치를 누리고 싶다는
사치로운 생각이 드는 건 무슨 연유일까?
한 두 달 전에는
아내와 함께 백화점에 들렀다가
지나는 길에 눈에 띈
어떤 시계 하나에 완전히 필이 꽃혀
값이 100만 원이나 되는데도…
미련을 못 버리고 손목에 차고서는
이러 저리 감상하고 있는데
'당신 그거이 그렇게 갖고 싶으면
이번 생일 선물로 하나 사줄까요?'
하는 아내 말에
100만원 넘는 핸드백 하나 못 사준 내가
이건 아내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싶어
입맛만 짭짭 다시다 슬그머니 내려 놓았다.
시계를 포기하고 나니
이번에는 지팡이로 마음이 옮겨가
고급지팡이 하나쯤 갖고 싶다는 생각이
스물 스물 가슴에 기어든다.
그런데 부산에는
신사용 지팡이를 파는 데가 없어요.
그래서 재 작년
서울에 사는 아들네 집에 갔다가
압구정 현대백화점에 있는
외제지팡이 매장 둘을 둘러 보았는데
비싸기만 비싸고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
마~ 중간쯤 가격에
집고 다니기에 편해 보이는
가벼운 일본제 지팡이를 하나
20만 원 인가 주고 샀는데
들인 돈에 비하면 별로 폼이 안 난다.
(01)
그러다 어느 날 인터넷 검색창에서
별 기대 없이 '지팡이'를 쳐 보았더니
기가 막힌 사이트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름하여 '제이스틱' J Stick
(02)
여기에는
백만 원이 넘는 명품 지팡이부터
몇 만 원짜리 실용품까지
세계 각국 지팡이들이 총출동해 있다.
(03)
지금껏 한 번 본 적도 없는
그 다양힌 종류에 그저 눈이 휙휙 돌아가고
최고급 명품지팡이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나
고급편만 해도 좋은 것이 너무 많아
어느 것을 골라야 할지 모를 정도다.
(04)
그래서 한 일주일 동안
몇 번이나 돌아본 후 세 개를 골라놓고
이번 내 생일에는
가족들이
선물을 해 주겠다면
각자 따로 따로 하지 말고
다들 돈을 모아서
고급 지팡이를 하나 사달라 해야겠다고
나답지 않은
염치없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그런 대답이 너무 쉬게 나온 것이다.
'그런데 돈이 좀 비쌀텐데...'
'얼만데요?'
25만 량'
'그러면 윤선이하고 나하고 보태서
하나 사 줄게요'
'쌩큐고자이마스~~~'
'그라고, 혹시 승윤이 전화오면
이번에는 아빠가 지팡이를 갖고싶다 하니
마~~ 돈으로 보내라 하소'
'아이고 주책이다,
아아~~한테 그런 소리를 우째하요?'
사실 내 계산은
아내와 딸 합해서 비싼 것 하나 사고
아들 10만원 보내면
비오는 날 쓸 우산자팡이 하나 사고
내 돈 조금 보태어 5만 6천원 짜리
꽃무늬 shaft의 이벤트 상품 하나 사는 것이라
그리 한 것인데
아내 말을 듣고 보니
내가 너무 염치가 없었던 것 같아
우산지팡이는 이번에는 포기 했다.
그래서 이벤트 상품 하나로다가
에드발룬 한 번 띄어봤는데........
'아이고 이양반이 요새와서 부쩍
안부르던 지팡이 노래를 불러쌌더마는
정신이 좀 우째됬나?
지금 있는 지팡이만 해도 두개에
하나 더 사면 지팡이가 세갠데
거기다 또 하나 사믄 지팡이가 네 개라
이 좁은 집에 그거 다 어디 세워놓을라꼬 그라요?
무슨 지팡이 장사할 일이 있소?'
'그래, 그래, 그래, 알았다 마~~'
'아이고, 말 한번 잘 못 끄잡아 냈다가
본전은 고사하고 뼈도 못추리겠네.....'
그래서 얻은 것이
영화 "온전한도시"에 협찬했다는
'세공(손잡이) 프리츠 지팡이'인데
원 이름을 이리 저리 알아보니
'Chrome Plated Scroll Fritz Walking Cane'
지팡이 몸체(shaft)는
너도밤나무(Beechwood) 에 검은 옻칠을 하였고
손잡이(handle)는
크롬 도금을 한 두루마리 문양의
독일식(Fritz) 지팡이로서
제조사는 미국의 Royal Canes 사 이고
가격은 25만원 이었다.
(05)
물건을 받아보니
한국에서 짚고다니는 지팡이 100 중 90은
뭔가 노친네 내지는 환자 냄새 풍기는
그래서 품격과는 거리가 먼
알미늄 샤프트에 높이 조절용 홈이나 조임새가 있는데
이 지팡이는
윤기나는 검은 옻칠을 한
단절 없는 일자형의 굵직한 나무 shaft에
단단한 너도밤나무가 주는 묵직한 무게감에
손잡이를 잡았을 때
손 안에 가득차는 풍만한 그립(grip)감에
반짝이는 은빛 손잡이에 새겨진 정교한 세공이 더해져
한국 노신사의 품격을
한 단계 Upgrade 시키는 방점을 찍는 장식물로서
참으로 만족스러웠고
이는 그 날 저녁
생일축하 식사장소인 프랑스 식당
'래프랑시'에서 더욱 빛을 발하였다.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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