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사람사는 이야기(014) 부부 이야기(06) 자존심과 동정 사이

白鏡 2017. 2. 25. 07:43

2015-02-22

 

구정연휴가 끝나

아이들이 다 돌아 간 날

난 피곤해서 9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자다가 눈이 떠

물 한잔 마시고 화장실 갔다가

누워서 휴대폰을 보니 12시 좀 넘었다.

 

방문 틈 사이로 불빛이 보이는 걸 보니

아내는 아직 거실에서 TV를 보는 모양이다.

 

더 자야지 하고 잠을 청했지만

잠이 안 온다.

이럴 땐 괜히 시간 낭비할 필요 없다는 걸

경험으로 터득한 바

거실로 나갔다.

 

나가니 눈이 부셔

눈을 반쯤 뜨고 인상은 잔뜩 지푸린 채

양 손에 이불과 벼게를 들고

갑자기 강시처럼 등장한 나를 보고

아내가 놀라

 

‘여보, 자다 말고 왜 나왔소?

한다.

 

‘잠이 안 와서...

여기 좀 누웠다 잠 오면 자고

안 오면 글 쓰다가 잘라고..

 

그 편한 Lazy Boy 소파를 놔두고

항상

 

카펫 위에 전기장판

그 위에 얇은 요대기가 깔린

거실바닥에서

내가 글 쓸 때 쓰는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TV를 보는

아내 곁에 누워

눈을 돌리니

마침 나도 즐겨 보는

‘동치미’를 하고 있다.

 

그 때 나오는 이야기의 주제는

 

‘남편이 아내 몰래 눈물이 날 때’

 

‘자신의 외로움을 몰라주는

무심한 남편 때문에

다른 남자가 생각날 때’

살면서

위로 받고 싶을 때에 관한 것이었다.

 

아내가 묻는다.

 

‘여보, 당신은 요즈음

자신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위로 받고 싶을 때 없어요?

 

‘아니’

 

‘참말로?

 

‘그럼’

 

‘마누라가 그래 잔소리하고

때로는 원망을 쏟아내는데도

어디 가서 위로 받고 싶은 적 없어요?

 

‘물론 때때로 화는 나지.

하지만 다 받아낼 만 하니 견디지.

 

‘당신 참말로 강한 사람이다.

‘당신 괜히 강한 척 하는 거 아니가?

 

‘야이샹! 척할게 따로 있지

이 나이에 무슨 그런 것 허세부리간?

 

‘그거 다~~ 당신 자존심 때문이지?

 

‘자존심은 무슨 자존심!

 

‘그러니 아이들도

엄마 안됐다는 말은 해도

아빠 안됐다는 말은 아무도 안 하지.

사람이 때로는 측은지심이 들 때도

있어야 하는데......’

 

‘내가 미쳤나?

아이들한테 동정 받게!

 

‘거 봐~~~

저게 자존심 아니고 뭐꼬?

‘아니면 당신 기질이 너무 쎄서 그렇나???

 

‘물론 내 기질도 쎄고, 자존심도 강하지.

하지만 그런 것만 가지고 그런 건 아니고,

.

당신 알다시피

내가 두 살 때 소아마비 앓아가지고

지금껏 살아오면서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사람으로부터 거부당하고

세상으로부터

불공정한 게임 강요당하다 보니

 

모든 걸 투쟁을 통해

내 스스로 쟁취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었지.

 

그러다 보니

혹독한 시련을 통해

투쟁심은 나날이 커져갔고

장애물이 있으면 들어내야 했고

누구든 나와 맏닥뜨리면 이겨야 했고

.

.

.

그 때는 피눈물 많이 흘렸지.

 

하지만 그런 것 다 이겨냈고

이젠

내가 마음만 먹으면 안될 일이 없다는

자신감까지 생겨서

 

다른 건 몰라도

누가 나를 무시하거나

내가 불쌍해 보이는 건

~ 못 참는기라.

 

갑자기 아내가

내 손을 덥석 잡고 흔들면서

 

‘당신 참 대단하다, 대단해.

존경스럽소!.

 

그리곤 조금 있다가 하는 말

 

‘그런데

이래 강한 사람이

어느 날 힘 없고 풀 죽은 모습 보이면

참말로 더 불쌍하게 보이겠다.

 

‘내가 그런 모습 보이면

저 양반 이 세상 하직할 때가 다 됐구나

하고 생각하면 돼’

 

‘그기~ 어데 마음대로 되요?

내사 마~

요양병원에 누워있을 상황이 되면

아무 것도 안 먹고 굶어서

그냥 고대~~로 사그라질거라.

 

그런 건 나 자신 있어요.

 

한데 당신은

다른 건 다 참아도

배고픈 건 도저히 못 참으니

굶어 죽지도 못하고 우짜겠노?

 

‘그 말도 맞네......그것 참~~~

연구할 거리 하나 더 생겼구먼.

 

 

# Epilogue

그 동안 난

너무 강하게만 살아왔다.

 

그러다 나이 50줄에 들어서자

더 이상 투쟁의 대상은 존재하지 않게 되고

오로지

가르쳐야 할,

돌보아야 할,

이끌어줘야 할,

사랑해야 할 대상만 남았다.

 

그래서

이제부턴 강하게 살기보단 유하게 살고

이기는 삶보단 져주는 삶을 살아야겠다

생각하고 나름대로 꾸준히 노력해왔다.

 

하여 지금은 과거에 비해

많이 부드러워졌고

기도 많이 꺾였다고 생각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나 스스로 생각해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종종

그런 말을 듣기 때문이다.

 

한 예로

 

나를 오랜만에 만나 본 제자들이

지네들끼리 만나면

 

‘한교수님, 요새 기 많~~이 꺾였네’

내지는

 

‘아이고, 완전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됐네’

등의 말들을 한단다.

 

하지만 아직도

어떤 부분을 탁 건드리면

 

옛날 썽질이 그대로 머리를 쳐들면서

 

야이 썅!

 

이란 말이 바로 튀어나온다.

 

아직 극복하지 못한

나의 그 연약한 부분이 무얼까?

 

그건 어쩌면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잘 알지도 모르겠다.

 

아이고~~

한 도() 통할라믄 아직 멀었네.

 

더 유해지고

더 휘어져야제.

 

그래서

내가 얼마나 강해 보이는지

아니면

내가 얼마나 유해 보이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 동안 찍은/찍힌 내 사진들을

~~ㄱ 훑어보고

그 대표적인 모습을 두 개

재미 삼아 골라보았다.

 

(2009 2월 우리과 전공의 입국식 때 인사말 하는 장면) 

 

(2012 2월 가족과 함께 ‘동래파전’집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망가져야 할까?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