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사사이(051) 베트남 TV에 이름 나온 사연(후편)

白鏡 2017. 1. 21. 17:46

처음에

조카의 부탁을 받았을 때만 해도

쉽게 생각했다.

 

메디칼 전문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일반영화에서 종종 보는

의료와 관련된 말도 안 되는 상황설정,

병명과 맞지 않는 증세,

병원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병원장면 등

 

전문가인 의사의 눈에 비치는

코메디같 은 황당 시츄에이션 정도만

좀 바로 잡아주면 되지 않겠나?

하는 정도로 말이다.

 

헌데

막상 대본을 받아보니

이제 내가 황당해 진다.

 

첫 회부터 바로 교통사고다.

주인공인 한류 스타가

건널목에서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던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심하게 다친다.

 

119에 실려 병원 응급실로 가고

거기서 바로 수술실로 가서 여러가지 수술을 받는 등

상황은 숨가쁘게 이어지는데

 

그에 따른 병명이라는 것이

한 둘이 아니에요.

 

1. 대퇴부와 무릎, 팔목 등에 복합 골절

핀 고정술 시행

2. 다발성 장기 손상과 복강 내 출혈

비장 절제술 시행

3. 수술 도중에 저혈압성 쇼크로 인한

심정지가 한번

4. 두개골 골절로 인한 뇌출혈.

5. 뇌손상에 의한

신경학적 이상 증세 및 기억상실증

6. 회복기 재활치료

더 전문적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이런 병원 상황만

드라마 첫 회부터 5회 초까지

죽 이어지는지라

분량도 만만찮을 뿐 아니라

 

너무 많은 과가 개입이 되다 보니

복부만 전공해온 영상의학 전문의 입장에선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렇다고 대충 해 줄 수도 없고


결국 방법은
각과 교수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수 밖에.


우선 119 차량 내 및 응급실 장면에선

1) 응급의학과 

수술실 상황에선


2) 정형외과

3) 일반외과 

두개골절 및 소량의 뇌출혈에 대한 치료는

4) 신경외과 

병실에서의 신경계 이상증세 및 기억상실증에 대해선

5) 신경과

6) 정신과


재활치료에 대해선

7) 재활의학과

그 사이사이 필요한 영상검사에 대해선

8) 영상의학과


결국 나 이외에

일곱 개 과 전문의의 자문이 필요하다.

하여

각과 교수들 명단을 앞에 놓고



내가 제일 마음 편히 부탁할 수 있는 사람 7 명을 골랐다.

이럴 땐 나 많은 값, 33년 터줏대감 값을 톡톡히 한다.

다들 내 제자 아니면 대학 후배들이다 보니 못 한다 소리도 못하고.


그 때부터


한 회 한 회 대본이 넘어올 때마다

해당과 교수들에게 대본을 보내고

자문을 구했다.


그런데 의과대학 교수란 게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바쁘다.




게다가 임상과의 경우

외래를 보고 있을 때나 회진 돌 땐



환자 보는데 방해될까 봐

전화하기가 좀 거시기 하고

수술실에 있을 땐 아예 연결이 안되고


그러다 보니

같은 병원 내에서도 전화 한 번 연결하려면

시간 차를 두고


몇 번이고 전화를 걸어야 하니

그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이런 우여 곡절 끝에

한 장면에서 보이는

상황 설정 하나 하나

쓰는 약물 하나 하나

의료진이 나누는 대화 하나하나

배우들의 증세 표현까지

세밀히 살피고 고쳐서 무사히 끝냈다.

 

그 후 명절 땐

그 동안 도와준 각 과 교수들에게

감사의 선물을 다 돌렸다.

 

그리고 나에겐

그 드라마 첫 회부터 38회까지

Ending credit

의료자문 'HAN SANG SUK' 이란

내 이름 석자가 올라가는

대가가 주어졌다.


그것도

수많은 이름 자막 중에


(이렇게 이름 많이 들어가는 credit은 처음 봤다)

앞에서 15번째


그 중에서도

한 화면에 사람이름 몇 명 안 들어가는 곳에



그 중에서도

제일 눈에 뛰기 쉬운 맨 마지막에

배치해 주었다고

조카가 생색을 낸다.


(위의 이미지를 클릭해서 인내심을 가지고 보시길)


이래서 영화나 드라마는 끝까지 봐 주어야 한다.

인내심 단련도 할 겸.


2017-01-21

Revised 2019-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