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이(064-10) 게이꼬씨를 기리며 – 재회(再會)
# 2012년 6월 22일 11:30AM
부산항 국제선 여객터미널,
안선생은 그의 아내와 함께 게이꼬씨 일행을 기다렸다.
처음에 안선생에게 외국 손님 마중하러 나가랬더니 "영어도 일어도 잘 못하는 제가 어찌?" 하고 말꼬리를 흘리기에 내가 말했다.
“걱정 말라우!, 게이꼬씨는 그동안 한국어를 꾸준히 공부해 왔고, 안 그래도 배운 것 한 번 써먹어보겠다고 전철 타고 오겠다는 사람이야. 그러니 너는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상대가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 그저 한국말만 하라우. 그거이 그녀를 도와주는 길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덩치에 걸맞지 않게 뭔가 불안했던지 영어, 일어 둘 다 어느 정도 통하는 부인을 대동하고 나간 모양이다.
승객들이 입국장에 보이기 시작하자 그는 게이꼬씨의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서 있었는데 게이꼬씨도 안 선생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어
서로를 금방 알아보고 반갑게 다가갔다.
피켓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나중에 이 피켓을 본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한 편으론 이 사람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피켓에는 마중나올 사람의 이름 뿐 아니라 부산 도착 시 그들이 알고 있어야 할 필수 정보가 다 들어 있었던 것이다.
1) 마중 나올 사람 이름
2) 그가 안 보일 시 걸어봐야 할 비상 연락망
3) 그래도 안 될 시 택시 기사에게 보여주어야 할 목적지 이름
4) 병원에 도착해서 연결할 내 방 전화번호
5) 거기다 자신들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미남' 과 '오른팔' 이란
애교스런 메시지까지...
아무튼 대단혀.
차는 예정시간에 맞춰 병원에 도착하고 우리는 반가운 재회를 했다.
이 얼마만이런가?
20년도 더 지난 세월의 풍상에 서로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딸 레이꼬의 모습과 비교해 볼 때 엄마인 게이꼬씨는 별로 늙은 것 같지가 않았다.
차 한 잔과 함께 환담을 나눈 후 우리 과를 한바퀴 구경시키고 나서 병원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가까운 삼계탕 집으로 갔다.
안 그래도 편지에서 내가 삼계탕전문점에 간다니까 아주 좋아했다.
대놓고 말을 못해서 그렇지 내심으론 '한국 가면 삼계탕은 한 번 먹어 봐야 할 것 아녀?' 하는 생각들이 있은 모양이다.
두 사람 다 어떻게나 잘 먹던지!
국물까지 깨끗이 비웠다. 김치도 잘 먹었다. 이 사람들 일본사람들 맞나? 할 정도였다.
게이꼬씨가 잇몸 때문에 잘 먹어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그야말로 기우(杞憂)였다.
그들의 먹는 모습을 보고 있는 나는 그저 흐뭇했다.
식사 후 주인에게 잘 먹었다고 인사하고 나오자 그녀는 가게 문 밖까지 따라 나와 배웅한다. 그러면서 음식이 두 분 입에 맞았는지 모르겠다, 두 사람은 어떤 사이냐 라는 둥 오지랍 넓은 관심을 보이길레 내가 모녀 사이라 하니 깜짝 놀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도무지 모녀로는 안 보이고 자매 정도로 보인단다. 이 말 들으면 한 사람은 기분 좋을 것이로되 또 한 사람은 필경 기분이 나쁠 것이라 통역해 주지않고 그냥 넘어갔다.
이렇게 다들 맛있게 점심 잘 먹고, 가게 주인의 극진한 배웅까지 받아가며 기분 좋게 해운대로 향했다.
2020-04-21
will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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