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닥치는 일들 3
‘돈이 없다’
직장 없이 백수생활한지 어언 4개월이 지나갔다.
나는 직장생활 40년 동안 봉급을 받으면 내가 지출해야 할 개인 및 사회성 경비를 제외한 돈을 아내에게 주었다.
그러다가 퇴직 후에는 매달 나오는 연금과 일 년에 한 번 타는 몇 가지 연금성 보험금과 6개월에 한 번 나오는 인세(印稅) 전액을 아내에게 주기로 했다. 그래 봤자 아내는 대폭 줄어든 생활비로 더욱 허리를 졸라매야 한다.
나의 경우 수입은 오로지 강의료 뿐인데 아직은 초보 무명작가에 불과하다 보니 그 강의료 라는 게 코끼리 비스킷이다. 이런 비상시국을 대비해서 한 1년 정도 버틸 비상금은 그 동안 모아두었는데 벌써 4개월이 지났다. 자연 내 호주머니에 돈이 마른다. 그래서 생긴 변화가 몇 가지 있다.
1) 과거에는 지갑 지저분해진다고 만 원짜리 밑으로는 잘 넣어 다니지 않았는데 요즈음은 지갑 속에 천 원짜리가 수북하고 그 한 장 한 장이 귀중하게 보인다.
2) 과거에는 천 원, 이천 원 정도의 거스름돈은 그냥 됐다 하고 안 받았는데 요즈음은 몇 백 원까지도 주는 대로 챙겨 넣는다.
3) 과거에는 만 원짜리 이하는 얼굴 거슬려서 팁으로 줘 본 적이 없는데 요즈음은 오천 원짜리도 당당하게 내밀고 지난번 세차장에서는 이천 원을 팁으로 준 적도 있다.
4) 과거에는 공휴일 날 혼자 집에 있을 때 귀찮아서 점심 나가 사 먹었는데 요즈음은 집에서 내가 끓여먹는다
나는 돈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이다.
오만 것 잘 따지고 뭐든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돈 문제만 나오면 머리가 하얘지고 아
예 생각을 하기가 싫다.
그래서 돈과 관련된 숫자가 나오면 그냥 숫자로만 보이지 이것이 얼마나 큰 돈인지 실감
이 안 나고 계산을 하기 싫어진다.
그 이유가 무얼까?
나는 의사로서 대학교수의 길을 택할 때 결심한 것이 하나 있었다.
"앞으로 돈 보기를 돌 보듯 하자."
교수 중에서도 의과대학 교수는 교수 생활 내내 돈의 유혹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돈을 돌 보듯 하지 않으면 그 유혹을 견뎌내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돈에 대한 잡음 하나 없이 첫 직장에서 명예롭게 정년퇴임식을 치를 수 있었고
아내의 허리는 개미허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 자연인이자 생활인이 되었다.
앞으로도 돈 보기를 돌 보듯 했다간 아내 노후대책도 옳게 못 마련할 것 같다.
이제부터 돈 보기를 금 보듯 하여 열심히 돈을 벌고 열심히 모아야 겠다.
그래서 2019년 1월부터 한 구멍가게에 앵벌이하러 나간다.
지난 35년 동안 한 번도 그런적 없는데, 출근 시간만큼은 내 마음대로였는데,
꼭두새벽부터 집을 니선다.
그리고 토요일 휴무제가 실시된 지 15년 만에, 토요일도 같은 시각에 집을 나선다.
왜?
돈이 되니까…..
그리고 석달만 하는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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