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닥치는 변화들
‘신분의 변화’
지난달 11월 24일
롯데호텔에서 부경지역 전문의 연수교육이 있어 참석하였다.
정년퇴임 후 두 달만이다.
접수대에서 이름표 찾고 참가자 대장에 이름 쓰고 의사면허번호 적고
직장난에 근무처를 적어야 하는데
바로 전까지만 해도 항상 ‘부산 백병원’이라 적었는데
갑자기 쓸 이름이 없어졌다.
그래서 아무 글자도 써 넣지 못했다. 한 마디로 황당했다.
인턴부터 시작해서 40년 동안 직장을 다니다가 정년퇴직을 하고 나니
제일 먼저 피부에 와 닿는 변화는 갑자기 신분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전에는 누구를 만나건 어디를 예약할 때건 ‘백병원 한교수’라는 말 한 마디면 더 이상의 수식어나 설명이 필요
없었다.
또한 처음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에게 인사 내지 부탁하러 오는 사람들이라
남의 명함 받기만 했지 내 명함 내밀 일은 잘 없었다.
하여, 내 명함에 새겨진 내 얼굴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40대의 싱싱한 얼굴 그대로였다.
그런데 막상 직장을 그만두고 나니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 자신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난감하였다.
그래서 현재의 내 신분이 무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연금수령(年金受領) 경로우대(敬老優待) 무직(無職) 무명작가(無名作家)'
이게 딱 정답이다.
그렇다고 이 대로 소개할 순 없고
“명색이 작가이니 그래도 작가라 소개해야 안되겠나?”
하고 생각 하자마자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았다.
"직업이 무엇인지요?"
"작갑니다."
"무슨 책을 쓰셨는데요?"
"얼굴특강이란 인문학 서적입니다."
"그런 책도 있습니까?"
~~~아이고 쪽 팔려~~~
역시 아직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 전까지는, 의사란 말이 들어가는 게 났겠다.
그러자니 (전) ~~ 라는 구차한 수식어가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참으로 오랜만에 명함을 팠다.
역시 수식어가 여러가지 들어간다.
내가 남의 명함을 받았을 때 제일 별볼일 없게 생각해온 사람이
명함에 온갖 잡다한 직함 다 갖다 발라 놓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제 내 명함이 딱 그 짝이다.
결국 내세울 만한 직함이 별로 없다는 말 아니겠나?!
사람이 어디엔가 소속된 곳이 없다는 사실이 무얼 의미하는지 피부로 느끼는 요즈음이다.
이제 놀만큼 놀았고 몸도 근길근질하니
슬슬 짬짬이 몸풀러 몸팔러 좀 다녀볼까나?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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