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사사이(029) 퇴직 후 닥치는 일들 1- 신분의 변화

白鏡 2018. 12. 31. 06:08

퇴직 후 닥치는 변화들

신분의 변화

 

지난달 1124

롯데호텔에서 부경지역 전문의 연수교육이 있어 참석하였다.

정년퇴임 후 두 달만이다.


접수대에서 이름표 찾고 참가자 대장에 이름 쓰고 의사면허번호 적고

직장난에 근무처를 적어야 하는데


바로 전까지만 해도 항상 부산 백병원이라 적었는데


갑자기 쓸 이름이 없어졌다.

그래서 아무 글자도 써 넣지 못했다. 한 마디로 황당했다.


인턴부터 시작해서 40년 동안 직장을 다니다가 정년퇴직을 하고 나니

제일 먼저 피부에 와 닿는 변화는 갑자기 신분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전에는 누구를 만나건 어디를 예약할 때건

백병원 한교수라는 말 한 마디면 더 이상의 수식어나 설명이 필요 없었다.


또한 처음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에게 인사 내지 부탁하러 오는 사람들이라

남의 명함 받기만 했지 내 명함 내밀 일은 잘 없었다.


하여, 내 명함에 새겨진 내 얼굴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40대의 싱싱한 얼굴 그대로였다.

 

그런데 막상 직장을 그만두고 나니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 자신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난감하였다.

그래서 현재의 내 신분이 무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연금수령(年金受領) 경로우대(敬老優待) 무직(無職) 무명작가(無名作家)'

이게 딱 정답이다.

 

그렇다고 이 대로 소개할 순 없고

명색이 작가이니 그래도 작가라 소개해야 안되겠나?”

하고 생각 하자마자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았다.

 

"직업이 무엇인지요?"

"작갑니다."

"무슨 책을 쓰셨는데요?"

"얼굴특강이란 인문학 서적입니다."

"그런 책도 있습니까?"

 

~~~아이고 쪽 팔려~~~

 

역시 아직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 전까지는, 의사란 말이 들어가는 게 났겠다.

그러자니 () ~~ 라는 구차한 수식어가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참으로 오랜만에 명함을 팠다.


역시 수식어가 여러가지 들어간다.


내가 남의 명함을 받았을 때 제일 별볼일 없게 생각해온 사람이

명함에 온갖 잡다한 직함 다 갖다 발라 놓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제 내 명함이 딱 그 짝이다.

결국 내세울 만한 직함이 별로 없다는 말 아니겠나?!


사람이 어디엔가 소속된 곳이 없다는 사실이 무얼 의미하는지 피부로 느끼는 요즈음이다.

이제 놀만큼 놀았고 몸도 근길근질하니

슬슬 짬짬이 몸풀러 몸팔러 좀 다녀볼까나? 



2018-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