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사사이(030) 퇴직 후 닥치는 일들 2 - 갈 곳이 없다

白鏡 2019. 1. 3. 16:06

퇴직 후 닥치는 일들

‘갈 곳이 없다’

 

퇴직 후 매일 눈 뜨면 가장 실감나는 일은

아침마다 밥 먹기 무섭게, 몸이 안 좋든 기분이 안 좋든 무조건 가야만 하는 그 어딘가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첫 일주일 정도는 참 좋았다.

똑 같은 시각에 밥 먹고 의무적으로 무조건 나가야하는 부담감 대신

아침 밥 먹고 싶은 때에 먹고 햇살 따사로이 드는 거실에서

편안한 LazBoy에 기대앉아 느긋이 차 한잔 즐기는 여유가 참 좋았다.

 

하지만 그런 여유도 일주일쯤 지나자

가야할 곳이 사라졌다는, 갈 곳도 없고 불러주는 곳도 없다는 현실감에

약간의 비참함과 막연한 불안감으로 서서히 대치되기 시작했다.

 

이런 지 보름 가까이 되어가니 돈도 안 벌어오고 하루 종일 집에 앉아서

삼식(三食)이를 넘어 간식까지 요구하는 종간나새끼 노릇만 하고 있는 남편에 대해

아내의 인내심도 슬슬 바닥이 나는 모양이었다.

 

“하루 종일 남편이 집에 있으니 일이 제대로 안 된다.

“하루 종일 남편이 집에 있으니 돌아서면 밥 걱정이다.

 

“어데 갈 데가 그래 없소?

 

지금껏 알 수 없던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사지 멀쩡한 대한민국 남정네들이 왜 평일 낮에 산에 그렇게 많이들 올라가는지

 

그래서 오피스텔이라도 하나 얻어 나가려 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도무지 안되겠단다.

 

“당신이 쓰레기 분리수거 해서 내다 버리길 하겠소?”

 

매일 청소를 하겠소? 빨래를 하겠소?

 

“그리 되면 결국 내가 또 두 집 살림하게 되는 기라!

 

생각 끝에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내가 잘 아는, 나를 왕 같이 대접해 주는, 조용한 카페에 가는 것이다.

 

그 곳은 한적한주택가에 있는지라 평소 손님도 잘 없고

문은 없지만 8명이 앉을 수 있는 독립된 조그만 회의실 같은 룸이 있어

남 신경 안 쓰고 혼자 노트북 펼쳐 놓고 공부하기에 딱 좋은 장소다.

점심도 해결되고.

 

그런데 하루만에 벽에 부딪혔다.

 

평소 화장실을 자주가는 나는

그 집의 소변기와는 익히 안면을 틔운 사이지만 좌변기와는 한 번도 대면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날 따라 그 집에 들어가자 마자 아랫배가 뭉글거리더니 그와 만나고 싶다는 강력한 충동이 일어나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좌변실(坐便室) 내부 공간이 너무 좁았다.

 

나 같은 사람이 앉았다 일어나려면 손잡이를 잡고 일어나든지

아니면 하체의 반탄력을 이용해서 한 번에 팍 일어나야 한다.

그리 되면 몸이 앞으로 쏠릴 수밖에 없어 좌변기 앞 공간이 넓어야 하는데

그 공간이 너무 좁은 것이다.

 

순간 난감했다. 도로 집에 가?

하지만 차 몰고 20분이나 왔는데,

차 대고 노트북 가방 들고 지팡이 짚고 언덕배기 올라왔는데,

오늘부터 낮에 어디 간다고 큰소리 치고 나왔는데

오자 마자 짐 싸 들고 도로 집으로 돌아가면 아내한테 이 무슨 쪽이냐? @@@&#$

 

어떡하지?

 

에라 모르겠다.

지금껏 살아오며 산전(山戰), 수전(水戰), 공중전(空中戰), 땅굴전까지 치러왔는데

이런 것 하나쯤 해결할 방법이 없겠는가?

휘리릭 재빨리 머리를 회전시킨다.

 

떠오른 방법은 두 가지.

비록 왼쪽에 있고, 높이도 낮고, 손으로 잡고 힘주기도 힘들 정도의 작은 문고리지만

그 놈을 잡고 몸을 뒤틀며 일어나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화장실 안에 사람 없을 때 문을 열고 문 쪽으로 돌아앉아

후다닥 일어나서 잽싸게 바지 올리는 거다. 흐흐.

 

그런데…………………

그 때 만일 누군가 갑자기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더군다나 상대가 여자라면?

 

좌변기실 공간을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는 이 좁은 화장실 안에서,

아무 생각없이 들어오던 여성이 코 앞에서 생면부지(生面不知)남성의 성()스러운 성물(性物)과 직면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갑자기 처칠의 유머가 떠오르며 웃음이 났다.

 

처칠이 75세 때 한 기자로부터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나는 언제고 하나님과 대면할 각오가 되어있다.

하지만 하나님 쪽에서 나와 대면 한다는 큰 시련을

직면할 각오가 되어있는지는 알 수 없다.

 

나이 들어 좋은 것 중 하나는

사람이 보다 뻔뻔해지고 보다 여유가 생긴다는 점이다.

 

그래서 극한 상황에 몰린 늙은 나는

비록 상대가 여성이라 하더라도 그런 자세로 대면할 각오가 되어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다 하더라도 사전에 아무런 지식도 없는 미지의 여성에게

그 큰 시련을 직면하게 하는 것은 못할 짓이 아닌가?

 

아이고 모르것다. 무언가 방법이 있겠지….

하나님은 감당치 못할 시련은 안 준다 하셨으니 어떡하든 해결해 주시겠지…

너희 믿음대로 되리라.’

 

들어갔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자연의 재판을 받고 난 후

 

왼손으로 문고리를 꽉 잡고 오른 손바닥을 문에다 대고

으랏차차차차:”

온 힘을 다 짜내어 코브라 트위스트 추듯 하며 일어났다.

 

불가능하다 싶었던 일이 가능으로 바뀌었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역사(役事)를 이뤄내었다.

역시 사람은 극한적인 상황에 내몰리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짓 두 번 다시는 하고싶지 않았다.

 

화장실에서의 대역사를 치르고 난 후

마음을 가다듬고 노트북을 켜고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안가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홀에 나는 룸에.

서로 보이지도 않고 거리도 떨어져 있어서 방해가 안 될 줄 알았는데

일생을 Ultrasound(초음파)Music sound 같은 사운드에 파묻혀 살아온

나의 귀는 마치 초음파탐지기라도 되는듯 그들의 대화내용까지 탐지해

나의 뇌에 시그널을 보낸다.

 

도무지 집중이 안된다.

40분 작업하다가 점심이나 먹고하자 싶어 홀에 나와 샌드위치와 커피를 한 잔 시켜 음악과 함께 먹었다.

 

맛은 있었다.

하지만 나 같은 신토불이 늙은이에게 점심은 역시 뜨끈한 국물이 있는 면이 제일이다.

하루 이틀은 몰라도 매일 올 때마다 이 메마른 서양음식으로 때울 순 없다.

 

먹고 마시고 음악 듣고 있으니

지금까지 길든 점심시간 습관대로 눈이 실실 감긴다.

 

공부가 하기 싫어진다.

~~ 집에 가서 잠이나 자자.

 

오늘로 이 집은 시마이!

 

그런데~~~~~~내일부턴 또 어디로 가지?”

 

참으로 오랜만에 김세환의 ‘길 잃은 사슴 ’이란 노랫가락이 떠오르는 날이었다.

 

 

* Epilogue

두 번 다시 그런 화장실 경험하고 싶진 않았지만 이 날의 경험은 나에게

‘앞으로 어떤 화장실도 들어갈 수 있다’ 라는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그로부터 얼마 후에 현대백화점에 갔다가 실제로 그만큼 좁은 화장실을 만났는데

그 날 썼던 방법으로 거뜬히 화장실을 탈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낮에 공부할 장소는 교회가 해결해 주었다.

평소에 쓰지 않던 방이라 비록 창고 같긴하지만

교회에 남아도는 책걸상 하나와 전기 온열기 하나 갖다 놓고

창 밖 하늘과, 산과, 풀과 나무와 함께 책도 보고 글도 쓴다.

 

왜 진작 이 생각을 못했는지!

 

역시 하나님은 사람이 감당치 못할 시련은 주지 않으시는 분이다.

할렐루야!

 

 

2018-09-27

2019-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