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사사이(027-16) 정퇴 제16막-9 신데렐라의 탄생

白鏡 2018. 11. 19. 09:12

신데렐라의 탄생

 

학회가 열리는 장소는 코펜하겐 시내에서 버스로 30-40 분 거리에 있는 해르레브 병원(Herlev Hospital)이었는데 당시 세계에서 가장 advanced 된 병원 중 하나였지요.

여기가 병원 건물이고


그 아래 납작한 건물이 연구동인데



이 비행접시처럼 생긴 두개가 말로만 듣던 계단식 강당 내지는 회의실이었어요.


이 회의실이 얼마나 잘 되어있었느냐 하면 그 당시에 벌써 환자 시술하는 Intervention실과 이 회의실 사이에 영상장치가 연결되어 있어서 중요한 시술이 있을 시에는 학회를 잠시 중단하고 라이브로 시술장면을 보다가 학회장에서 질문들을 하면 시술자가 즉석에서 답하고 토론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한 마디로 참 신기했지요.


그런데 학회장에 가서 접수를 했더니 홀름이 제 발표를 첫 날 첫 세션, Plenary session 마지막에 넣어놓은 거예요. 이 자리가 어떤 자리냐?


지난 학회 끝나자 마자 학회에서 각 분야 대가들에게 미리 부탁하여 3년 동안 연구한 결과물을 발표하는 자리라는 것 아닙니까? 이 말을 전해준 이 교수님도 발표순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는데 저야 오죽이나 놀랐겠습니까?


당시 인터넷도 없고 도서관에는 이 분야에 관한 저널(journal, 학술지) 하나 없어 바깥 세상에 대해서는 까막눈인 상태에서, 나 혼자 우물 딱 주물 딱 만들어낸 것을, 그 종주국에 와서 세계에서 모인 대가들 앞에서 멋 모르고 떠들다가 망신이나 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올 때부터 계속 떠나질 않았는데



난 그냥 논문 하나 발표하러 갔는데 이거 머꼬? 아이고 골이야~~~.


한 마디로 내가 아니라 홀름이 사고 친 거지요.


드디어 학회가 시작되고 앞에 사람들 하는 것 죽 보고 점점 내 차례가 다가오니 오히려


마음이 담대해져 가면서뭐 별 것도 없네, 아이고 모르것다, ~~ 하던 대로 하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연단에 나갔습니다.





몇 번이고 외웠던 대로 유창하게 막힘없이 술술 발표를 잘 마쳤습니다. 그 다음은 내가 제일 두려워하던 질문 시간. 발표는 내가 만들어 놓은 말 읊으면 그만이지만 질문은 도무지 자신이 없었어요.


나는 영어를 한국에서 한국 선생님들에게서만 배웠는데 여기 와서 처음으로 유럽식, 그 중에서도 북구라파 사람들의 그 독특한 억양에 영 적응이 안 되던 차라 질문을 받았을 때 잘 알아들을 자신이 없었지요.


그런데 조요~~~,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아요. 순간 한 편으로는 안도가 한편으론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이거 뭐~~ 말 같잖은 소릴 해서 같잖아서 질문도 안 하나???’


그러자 그 세션 좌장을 맡은 홀름이 안 그래도 예정에 없던 발표를 집어넣어 시간도 부족한데 잘 됐다 싶었던지 아니면 저를 배려해서 그런지


아이디어가 독특해서 질문이 없는 모양입니다.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시도로 세포 뿐 아니라 조직까지 뽑아낸 Dr. Han에게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하고는 일동 박수로 그 세션이 끝났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몰아 쉬고 자리로 돌아가 가방 챙겨 커피 브레이크 장소로 가려는 데 한 사람이 다가와 그 방법이 잘 이해가 안 되어 그러니 한 번 더 설명해 달라는 것 아닙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동영상으로 보여주었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것을, 당시에는 환등기에 슬라이드 필름을 꼽아 비추면서 논문발표 하던 시절이라 처음보는 전자기기 사용설명서 만큼이나 이해하기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나는 무대 옆에 있던 칠판에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하기 시작했지요. 그러자 주변에 십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들러 서서 진지하게 듣고 질문도 했습니다. 한 사람의 발표에 대해 이렇게 많은 관심을 보인 것은 학회 내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행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닥터 홀름이 자신의 홈파티에 저를 초대하여 또 한번 나를 놀래킨 겁니다.


그 자리는 각 분야 대가들과 학회준비에 주된 역할을 한 자기 식구 몇 명, 그리고 제자 이신 이 교수님 해서 도합 열 두세 명 정도 모인 자린데 여기에 저를 포함시킨 겁니다. 참 감사한 일이지요.


그 때 그 자리에 카메라를 소지한 사람은 저 혼자였습니다. 번쩍 아이디어가 떠 올랐습니다. 각 방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 댔습니다. 그리고 이 종이에 이름을 써라 그러면 나중에 인화해서 사진을 보내주겠다 했습니다.


(Dr. Holm 오른쪽은 배를 열지않고 췌장가성낭종을 위장으로 연결시키는 방법(cysto-gastrostomy)을 개발한 덴마크의 Dr.Hanke, 그 다음이 이종태 교수, 홀름 왼쪽은 세계에서 최초로 간의 분절절제술(hepatic segmentectomy)를 시행한 동경암센터의 Dr. Machuchi)


(필자 옆에 선 사람과 바로 아래에 앉은 사람은 갑상선 종양에 대한 세침흡인술 및 알코홀 치료의 대가 이태리의 Dr. Livraghi와 Solbiati)


(전립선암 치료용 의자를 개발하고 초음파 유도하에  암조직에 직접 방사성 동위원소 치료를 주이하여 치료한 교토대학의 Dr. Watanabe와 그 부인)


이러면서 세계 대가들의 얼굴과 이름을 내 머리 속에서 매치시키고, 나 또한 그들에게 내 이름 석자와 얼굴을 확실하게 각인 시킨거지요. (청중 웃음)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면서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묻는 말이 닥터 홀름과 어떤 사이냐? 홀름 밑에서 배웠느냐? 아니면 어느 나라에서 배웠느냐? 영어는 어디서 공부했냐? 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의 속뜻은

~~ 낮에는 그렇다 치더라도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새파란 동양인이 어떻게 이 자리에까지!, 이 무슨 시추에이션???@@@#@#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결국 홀름이 저를 두 번 놀래키는 바람에 저도 그들을 두 번 놀래킨 거지요, 낮에 한 번, 밤에 한 번.


또한 그 때 제 나이가 만으로 서른 세 살 때니까 그런 말 들을 만도 했구요.


그래 제가 답했습니다. 나는 외국에 가서 공부한 적 전혀 없고 오로지 한국에서 한국 선

생님들께만 배웠다. 홀름은 지난 5월 한국에서 한 번 뵈었을 뿐이라고.




이렇게 해서 저는 하루 아침에 세계 무대에 신데렐라로 등장했습니다.


저로 하여금 제일 빠른 지름길로 인도해 주신 이종태 교수님,

그리고 그 하이웨이 톨게이트를 통과시켜 주신 Dr. Holm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2018-11-19

Will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