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살며 생각하며(005)- 교수님이라 불러드리리까

白鏡 2019. 4. 28. 17:51

살며 생각하며(005)- 교수님이라 불러드리리까?

 

초음파실에 환자가 오면 직원들은 환자 볼 준비를 해 놓고 나에게 의뢰지를 들고 와

초진인지 재진인지 어디가 불편한지 왜 이 검사를 하는지에 대해 간단히 보고를 한다.

 

헌데 어느 날 보고 말미에

‘이 분은 본 대학 인문계열 00과 교수님이신데 호칭에 대해 아주 예민한 분입니다’

란 토를 단다.

 

"호칭 문제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이 분이 이전에 CT 검사 받으러 왔다가 그 문제 때문에 시끄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불렀길래 그래?"

 

000님’이라 불렀는데 기분 나쁘답니다.'

 

"야이샹! 그러면 뭐라고 불러야 한단 말이야?"

 

"' 000교수님이라 불러야 한답니다."

 

"거 참 별난 친구 다 보겠네.

정 그러려면 이마빡에 교수라 써 붙이고 다니든지!"

 

의뢰서에 적혀 있는 나이를 보니 나와 같다.

나는 속으로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친구야?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문득 한 사람이 떠 올랐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교직원 신검 때였다.


한국, 특히 부산사람들,

자신을 검사해 줄 의사가 들어와도 인사 안 하기로 이력이 났지만

그래도 같은 기관의 교직원 신검 때는 거의 다 인사를 한다.

 

그런데

한 나이 들어 보이는 교수가 내가 들어가도 인사도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천정만 쳐다보며 마네킹처럼 누워 있었다.


그래서 그가 인상에 남았고 그의 전공과가 기억에 남았는데

오늘 왔다는 사람과 같은 과였다.

 

나는 혹시 그 양반 아닐까 생각하며

호기심 충만한 상태로 검사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전혀 뜻밖의 사람이 누워있었다.


‘여자였던 것이다.

 

그 녀의 이름이 남녀구분하기 애매한 이름이었는데다

이런 소동을 벌일 사람은 당연히 남자일 것이란 선입견을 가진 내가 잘못이었다.

 

또 한가지 선입견이 깨진 것은

내가 검사실에 들어서면 아무 말도 않을 사람일 줄 알았는데

‘안녕하세요?’하고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선입견이 깨진 것은

그렇게 못되먹게 생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콧등 살집이 빈약하고 입술이 얇으면서 윗입술 선이 또렷하고

코끝에서 윗입술까지 내려오는 윤곽이 단아하면서도 무언가 날카롭게 보여

 

'자기 주관이 강하고 고집이 세며 정이 없고 매몰찬 구석이 있겠구나~'

하는 인상 외에는.

 

나는 그 환자와의 첫 인사에서 마지막 인사 때까지

단 한 번도 교수란 호칭으로 불러주는 친절을 베풀지 않았고

그녀가 같은 기관의 교수란 사실조차도 아는 체하지 않고

여느 환자나 똑같이 대했다.

 

그런데 그녀는 검사 받는 동안 순한 양처럼 온순했고

마칠 때 감사하단 인사까지 했다.

또 한 번 내 선입견이 깨어졌다.

 

‘도대체 이건 무슨 메커니즘???

 

검사를 마치고 내 방에 돌아와 앉자 여러 가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보기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CT실에선 왜 그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했을까?


우리 기사들이 무언가 비위를 상하게 했나?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인데 나 앞에선 내 기에 눌려서 얌전했나?

 

내 이성은 후자를 선택했다.


요즈음 병원이 어떤 데 인가?

대학병원 마저도 경영난에 시달려 살아남기 위해 비굴할 정도로 친절하다.


게다가 상대는 같은 기관 소속의 교수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 사람에게 우리 직원들이 경우에 어긋날 행동을 할 리가 없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행패를 부리던 환자들도 내 앞에 오면 꼼짝 못하는 것을

그 동안 죽~ 경험해 왔기에 후자의 생각이 더 설득력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 사람은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비굴한 그런 류의 사람 아니겠나? 

 

교수란 직업은 자존심과 명예를 먹고 산다.

그래서 나는 이 직업을 참 자랑스럽게 여겨왔다.


하지만 내가 비록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할지라도

남들까지 내 직업을 존경하고 떠받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

 

만약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이 교수를 교수님이라 부르지 않았다면

"너 앞으로 내 수업 들어오지 마!" 하고 쫓아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꼭 '교수님' 이라고 불러야 할 의무가 어디 있으며

강요할 권리는 또 어디서 나오는가?

더군다나 여기는 병원이다.

 

치사한 이야기지만

아닌 말로 요즈음 유행하는 갑을 관계로 따지자면

누구나 병원에 오면 일단은 을의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건강과 생명에 관련되는 중요한 끄나풀을 의료진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병원에 와서조차 그렇게 대접받으려 들면서

교수님이라 안 불렀다고 생 난리를 쳤다면 다른 데서야 오죽 하겠나?

특히 자기 과 소속 교수나 대학원생들에게는


박사과정 중에 있는 내 딸의 하소연이 피부로 느껴진다.


존경심은 호칭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강요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호칭에 걸맞은 말과 행동을 보일 때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 아니겠나?


다시 한 번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교수님' 께서...

 

2017-08-03

Revised 2019-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