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사사이(027-1) 정년퇴임식 제1막, 정년퇴임의 의미

白鏡 2018. 9. 22. 10:31

사사이(027-1) 정년퇴임식 1막, 정년퇴임의 의미

 

201891일은 나의 정년 퇴임식이 있었던 날이다.

년 초부터 우리 과의 과장과 나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할거내?’로 의견을 교환해 왔는데 견해 자가 컸다.


과장의 입장에선 의국 역사 39년에 처음으로 치르는 정퇴식인만큼 나가는 사람 섭섭치 않게, 다른 과나 다른 병원에 보란 듯이 성대하게 폼 나게 치르고 싶었고 나는 그와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 서로 조율이 잘 되지 않다가 다음과 같은 말로 설득을 시켰다.

 

과장 뜻은 잘 알겠는데 이 행사가 누굴 위한 행사요?

과를 위한 행사요? 나를 위한 행사요?’”

그야 교수님을 위한 행사지요.”

그러면 과장 뜻이 중요하오 내 뜻이 중요하오?”

그야~~교수님 뜻이 중요하지요.”

아무리 상대를 위해 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상대가 원치 않거나 불편해하면 안 하는게 맞지요.

그러니 이번 일만큼은 전적으로 나의 뜻을 따라 주구려.”

 

1) 어디서

과장과 내가 끝까지 줄다리기를 한 것은 바로 장소 문제다.

과장은 지금껏 (거의)모든 임상교수들이 그래 온 것처럼 호텔을 고집했고

나는 의과대학 강당을 고집한 것이다.


내가 강당을 택한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정퇴의 의미가 무언가?

인생살이 은퇴하는 것도 아니고 사회에서 은퇴하는 것도 아니다.

나이가 되어 근무하던 직장에서 은퇴하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껏 근무해오던 곳에서 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누구에게 인사하고 가야하는가

당연히 함께 근무하던 사람들이다.


매일 얼굴 보던 사람들에게,

그동안 업무적으로 많은 교류가 있었던 사람들에게,

그동안 신세 졌던 사람들에게.

고마왔단 말 한마디는 하고 가야하지 않겠는가?


 

출근하면 제일 먼저 마주치는 주차요원들,

우리 과원들, 매일 내 방 청소해주는 미화반 아줌마,

점심 먹으러 식당 가면 밥 가져다 주는 영양과 아줌마,

복도에서 한 번씩 마주치는 30년 지기 요구르트 아줌마(이젠 꼬부랑 할머니다).

퇴근할 때 경례로 인사하는 오래된 수위들….

 

다른 사람들 다 재껴두더라고

나는 이런 사람들한테 인사하고 밥 한끼 대접하고 싶은데,

호텔에서 하면 이런 사람들까지 부를 여력이 되나? 안 된다.

그런 장소에 부른다면 부담스러워서라도 어디 잘 오겠는가?.

 

경비는 어쩌고?

김영란법인가 김대란법인가 하는 법 시행되고 나서는

과원 100명이 넘는 과 운영비 마련하기도 힘든 판에

일년에 한 번 야유회 가기도, 일년에 한 번 망년회 하기도 힘든 판에

무슨 돈으로 호텔에서 하겠노?

 

마련해 놓았단다.

내 은퇴에 맞추어 의국역사책 발간과 정퇴 경비마련을 위해

과장 되자 마자 과에서 열심히 세미나, 연수교육등을 주최하여 경비 마련해 놓았으니

나보고 염려 잡아매시란다.

 

참으로 유능한, 기특한 과장이다.

하지만 그 눈물 어린 앵벌이 돈을 내 우째 하루저녁 행사에 다 쓰겠노?

아이고 말아라. 마~~ 과비에나 보태써라. 

 

2) 언제

나의 정년은 831일까지다.

지금까지 은퇴식은 전부 임기 끝나기 전에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그노무 영란법 때문이다.

 

얼마전에 서울대학병원의 모 과에서

정퇴하는 교수에게 그 과 교수들이 십시일반 돈 거두어 골프채 한 세트 선물했다가

영란법에 걸려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그 때 나는 분노했다.


'내가 그 돈 와 내노?' 하며 떠나는 노교수를 뒷구멍으로 고발한

그런 배은망덕한 놈에게 분노했고


의사가, 평생을 돈 안되는 대학교수로,

그것도 국립대학 교수로 헌신하고 떠나는 노교수가

과원들이 주는 선물 하나 받았다고

이마빡에 부정청탁금지법 위반이라는 딱지를 붙혀놓고

무슨 큰 죄인이라도 되는 양 온 언론이 알도록 조사해서 망신주는

그 자석들에게 분노했다. 


그런 놈들 더럽고 앵꼽아서*,


그 자석들 상판때기* 보기 싫어서,


의과대학교수 가운 벗어놓고 나온 바로 다음 날.

연금생활 무직자(無職者) 신분으로 떨어진 바로 그날, 

91일을 정년퇴임기념일로 잡았다.

 

참말로 더런노무 세상*이다.

반평생을 바친 직장을 떠나면서

이런 것까지 신경써가며 열받아야 하다니. 나 이거 원~~~

 

<경상도 사투리 통역>


앵꼽아서*, - 아니꼬워서


상판때기* - ‘얼굴을 나타내는 말로서 상대가 몹시 경멸스러워 꼴도 보기 싫을 때 잘 쓰는 말이다. (사용용례: "내 앞에서 그 상판때기 좀 못 치우겠나?" --> 꼴 보기 싫으니 빨리 사라지라는 뜻)

더런노무 세상* - 더러운 놈의 세상


2018-09-22

will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