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석의 얼굴특강

사얼메(045) 제3장 귀가 둘인 이유 3 - 단소리 쓴소리 3- 단소리의 쓴맛

白鏡 2018. 4. 9. 05:49

사람의 얼굴이 전하는 메시지

서문(序文)

1장 사람 얼굴, 왜 이 모양으로 만들었나?

2장 눈이 둘인 이유

3장 귀가 둘인 이유

1. 귀로 귀담아 들어라

2.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라

3. 단 소리를 듣는 귀 쓴 소리를 듣는 귀

[당태종과 위징]

[당태종의 아내]

[단소리의 쓴맛]

위징이 죽자 그 동안 위징의 그늘에 가려 있던 여러 신하들의 충성경쟁이 시작되고.

위징의 쓴 소리 난 자리를 단 소리가 점점 매워간다.

 

단소리 감언(甘言),

그 중에서 가장 효험(效驗) 있는 감언은 무얼까?

그것은 주군이 좋아할만한 것을 꼬드기는 것이다.

 

당태종이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고구려 정복이다.

 

이는 비단 당태종 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중국의 모든 지도자들의 변함없는 염원이다.

 

한반도를 정복하여 중국대륙의 동쪽지도를 완성한 후

한반도란 부리를 갖춘 거대한 중국새가 힘차게 날아 올라

그 부리로 일본을 콕 찍어 삼키고 태평양을 가로 질러 세계를 쟁패하는 일,

그리하여 중화(中華)의 꿈을 이루는 것.

 

이러한 그들의 야망을, 그래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나라는 중국이란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나라 이후 360여 년간 혼란의 시기를 겪던 중원 땅을 평정하고

통일제국을 건설한 수()나라는

국가 대 국가 간의 세계 전쟁사에서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운

100만 이란 어마어마한 병력으로 고구려를 침공하였다가

50-60만이나 되는 병사들이 사망하고 그 전쟁의 후유증으로 결국 나라가 망하고 말았다.

 

그런 수나라를 접수한 후

주변국들을 다 복종시키고 대당제국(大唐帝國)을 이룩한 당태종.

그리고 끝까지 대구리 수구리지 않는 왠수 대가리 고구려.

 

그의 마지막 남은 과업은 고구려를 정복하는 것.

그래서 사무친 원한을 갚고 제국의 꿈을 완성하는 것.

그 외에 무엇이 있었겠는가?

 

하지만 그 야망 슬며시 드러냈다가

고구려를 함부로 건드렸다간 나라가 망한다며

석고대죄(席藁待罪)라도 할 듯한 위징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삐약 소리도 못내고 있던 당태종이었다.

 

그런 위징이 죽었다.

안 그래도 못 이룬 야망이 속에서 꿈틀거리는 마당에

그 야망을 부추기는 신하들의 소리는 초콜릿 같은 단맛으로 그의 귀에 녹아 들었으리라.

 

위징이 죽은 지 1년도 안되어(AD 644) 당태종은 고구려 침공을 명하고

그 다음 해인 645년에는 친히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 정벌에 나선다.

 

그의 뛰어난 지략에 우수한 최신 병기, 잘 훈련된 많은 병사들로 무장한 당나라 군대는

개모성(蓋牟城), 비사성(卑沙城), 요동성(遼東城), 백암성(白巖城)등을 차례로 함락시킨 후

그 다음으로 안시성(安市城)을 공격하기로 했다.

 

이 비보(悲報)에 접한 연개소문은 15만 병력의 지원군을 보냈으나

그들은 당군의 계략에 휘말려 성으로 가는 중도에 처참하게 궤멸당하고 만다.

 

풍전등화(風前燈火)의 고립무원(孤立無援) 안시성.

 

하지만 거기엔 당태종 못지않은 우리의 구국영웅(救國英雄) 안시성주(安市城主)

양만춘(梁萬春/楊萬春?)과 죽기로 각오하고 하나로 똘똘 뭉친 고구려의 군관민(軍官民)

평지에서 가공할 위력을 자랑하던 당나라의 공성(攻城) 무기가 별 힘을 못 쓰는

견고한 산성(山城)이 버티고 있었다.

 

하루에도 6-7회씩 죽어라 공격해댔지만

니 죽고 내 죽자는 식으로 결사 항전 (決死抗戰) 하는 고구려 사람들에게

당나라 군대는 고전을 면치 못했고

이제 최후의 수단으로 연인원 50만 명을 동원하여

안시성 보다 높은 토성(土城)을 쌓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일을 어쩌누!

우리나라 애국가의 가사대로 '하나님이 보우하사'

폭우가 쏟아지면서 골리앗 같은 그 놈의 토성을 쓰러뜨려 버린데다

 

때는 바야흐로 북방의 삭풍한설(朔風寒雪)이 시작되는 동절기로 접어들고

고구려 군의 보급로 차단으로 먹을 양식은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양만춘 장군이 쏜 화살에 당태종이 큰 부상을 입게 되자

그들은 드디어 퇴각하기로 결정한다.

 

참으로 대단하다!

산성 하나로 몇 십만 대군을 맞아 88일 간이나 버티고 승리하였으니,

그리하여 대당제국(大唐帝國)의 위대한 황제 당태종으로 하여금

패장(敗將)이 되어 도망을 가게 만들었으니!

 

 

 

 

사람이 언제 제일 비참해지던가?

춥고 배고플 때다.

 

당태종의 퇴각 길이 그랬다.

배 창자는 염치도 없이 연방 시냇물 흘러가는 소리를 내고

살을 애는 듯한 북방의 추위는 중원 땅의 중국인들에겐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어디 그 뿐이던가?

 

요택(遼澤, 요하의 삼각주 유역) 지역에 이르니

뻘 구더기가 200리 길이나 뻗어 있는데



앞서 여수전쟁(麗隋戰爭] 때 고구려군에 쫒겨 도망가다

이 뻘 밭에 빠져 죽고 맞아 죽은 수많은 수군(隋軍)의 해골들은 사방에 널부러져 있고

수레와 말은 뻘 때문에 지나갈 수 없어 풀을 베어 바닥에 깔아가며 도망가야 했으니

그 고달픔이 오죽했겠나?

 

전쟁이 끝난 후 그는 탄식했다.

'만약 위징이 살아있었더라면 내가 이런 무모한 전쟁은 벌리지 않았을 텐데.'

 

전투에서 입은 부상의 후유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쓰라린 마음의 병 때문이었을까?

 

당태종은 고구려 원정 후부터 시름시름 앓다가

4년 뒤인 64951세의 꽃다운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그리고 그 때 아들 고종(高宗)에게 남긴 유언 중 하나는

'고구려는 절대 함부로 넘보지 말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