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그 인친 자는 하가랴의 아들 방백 느헤미야와 시드기야,
하가랴의 아들 방백 느헤미야 - 총독 느헤미야를 가리킨다. 이처럼 총독 느헤미야가 언약서에 인친 자의 명단 초두에 나오는 것은 그가 금번과 같은 신앙 운동의 주도자였음을 시사한다. '하가랴'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1:1 주석을 참조할것.
한편 '방백'(*티르솨타)은 8:9에서는 '총독'으로 번역된 단어이다.
시드기야 - 본절의 '느헤미야'와 '시드기야' 사이에는 접속사 '와우'(*)가 있다.
그러나 '시드기야'와 2절 초두의 '스라야' 사이 부터에는 접속사가 사용되지 않는다. 결국 이는 본 절의 두사람, 즉 '느헤미야'와 '시드기야'가 2-8절의 인물들과 구별된 자들이었음을 암시해 준다. 즉 2-8절의 인물들이 제사장 곧 종교 지도자들이었던데 반하여 본 절의 두 사람은 정치적 권세를 가졌던 지도자들이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여기의 '시드기야'는 총독 느헤미야의 서기관이었던 '사독'(13:13)과 동일 인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두 이름이 모두 '의롭다'를 뜻하는 '차다크'(*)라는 어근에서 파생됐다는 점도 이 같은 추측을 어느 정도 뒷받침한다.
10:9 또 레위 사람 곧 아사냐의 아들 예수아, 헤나닷의 자손 중 빈누이, 갓미엘과
여기서부터 13절까지는 레위 사람들의 명단이다. 그러나 제사장의 경우와는 달리
가계명(家系名)이 아닌 개인명(個人名)이다. 이와 같이 봐야 할 까닭은 여기에 나열되는 이름들이 8장과 9장에서 대부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Fensham).
10:14 또 백성의 두목들 곧 바로스, 바핫모압, 엘람, 삿두, 바니,
여기서부터 27절까지는 일반 백성들의 가문명(家門名)이 나열되고 있다. 14-19
절의 이름들이 대부분 에스라 2장의 귀환 가족의 이름과 중복된다는 점은 그 사실을 능히 증명할만한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Fensham).
10:28 그 남은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및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는 모든 자와 그 아내와 그 자녀들 무릇 지식과 총명이 있는 자가
[표준새번역]느 10:28
이 밖에 나머지 백성, 곧 제사장과 레위 사람과 성전 문지기와 노래하는 사람과
성전 막일꾼과 주의 율법을 따르려고 그 땅의 여러 백성과 인연을 끊은 모든
이들과 그 아내들과 그들의 아들딸들과 알아들을 만한 지식이 있는 이들 모두가,
본 절 이하에서는 언약 문서에 인친 백성들이 맹세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그 언약에 대한 철저한 준수를 다짐하는 내용이 전개된다.
그 남은 백성 - 직접 서명을 하지 않은 서민들을 가리킨다. 직접 서명을 한 사람은 한 가문의 대표적 지도자만 이었다. 그러나 일반 서민들은 자신들이 직접 서명하지는 않았으나 그들의 대표가 서명했기 때문에 마치 본인이 한 것과 다름없었다. 한편 본 장의 1-17절에서 인을 친 것은 각 가문의 대표였다는 점에 근거하여 여기의 '그남은'이라는 말은 다음의 '제사장' 등을 모두 수식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 - 이들도 레위 지파 사람들로 크게는 레위사람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협의적으로 이들은 성전 제사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사역을 수행했던 '레위 사람'과는 구별됐었다(스 2:40-42). 어떻든 '레위 사람'이 이들을 대표하여(9-13절)언약서에 서명을 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느디님 사람들 - 이들은 혈통적으로 볼 때 원래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었으나 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며(스 2:43) '레위 사람'을 도와 성전 봉사의 직무를 수행했던 자들이었다. 따라서 레위 사람들이 이들을 대표하여 언약서에 인을 쳤을 것이다.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율법을 준행하는 모든 자 - 이들은 원래는 이방인이었으나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공동체에 가입한(스 6:21) 무리였다(Rawlinson). 이들은 자신들의 본처(本處)를 떠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주지로 이주(移住)한 후 할례를 받음으로써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원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창 17:12,13).
무릇 지식과 총명이 있는 자 - 8:2,3의 표현을 빌면 '알아들을 만한 회중'이다. 따라서 이들은 언약 및 언약서에 인을 치는 것이 무엇인지릍 이해하는 상적인 지각을 지닌 사람(Rawlinson)을 말한 것이지 특별한 지식의 소유자들을 말함이 아니다.
10:29 다 그 형제 귀인들을 좇아 저주로 맹세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종 모세로 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좇아 우리 주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켜
그 형제 귀인들 - 언약 문서에 인을 친 족장 및 그 밖의 지도자들을 뜻한다.
저주로 맹세하기를 - '저주로 맹세하기를'은 언약이나 조약을 지키지 않을 경우 지키지 않은 당사자 자신에게 '저주'가 내려져도 달게 받겠다는 공언(公言)과 함께 이루어지는 언약 방식이다(민 5:21).
10:30 우리 딸은 이 땅 백성에게 주지 아니하고 우리 아들을 위하여 저희 딸을 데려오지 아니하며
이방인과의 통혼(通婚)과 관련된 에스라의 개혁 조치(스 9,10장)에도 불구하고 당
시 이스라엘 사회에는 그 같은 악습이 완전히 근절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에스라의 개혁으로 통혼의 문제는 얼마 동안 거의 사라졌을 지도 모르지만 에스라가 페르시아 궁전으로 소환되어 오랜 기간 그곳에 있었고(8:1) 느헤미야도 에스라가 다시 돌아오기 직전에 온 터라 이방인과의 통혼 악습은 되살아났음이 분명하다.(13:23).
10:32 우리가 또 스스로 규례를 정하기를 해마다 각기 세겔의 삼분
일을 수납하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쓰게 하되
본 절과 같은 결정은 그 당시의 독특한 상황에 따른 불가피한 일이었다.
즉 이스라엘이 독립 국가로 있을 때는 막대한 왕의 수입(收入)중 일부가 성전 재정을 위해 보태졌으나 페르시아의 피정복 상태 하에 있던 그 당시의 상황에서는 재정난으로 성전의 효과적 운영이 심히 어려웠다.
해마다 각기 세겔의 삼분 일을 수납하여 - 출 30:11-16에는 이십 세 이상된 모든 백성들이 생명의 속전으로서 반 세겔씩 바쳤고 이 돈은 성막 건물을 제작하는 비용으로 쓰여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인구 조사가 있었을 때에 특별한 목적으로 드려지는 것이어서 정기적인 성전세의 개념으로 보기는 힘들다. 아마 후대에 가서는 매년 정기적으로 성전세 명목으로 일정한 액수가 납세되었던 것 같으며 예수 당시의 성전세는 매년 반 세겔이었다(마 17:24).
고레스, 다리오 및 아닥사스다등의 조서에는 예루살렘의 성전 예배를 위해 공적기금이 사용되도록 허락되었지만(스6:8-10) 그러한 기금은 언제 중단될지 몰랐고 더욱이 성전운영이 이방의 재원(財源)에 의존된다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했다(Brockington). 따라서 비록 백성들의 생활형편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성전세를 삼분 일 세겔씩 납부키로 자원하여 결단을 내린 것이다.
10:36 또 우리의 맏아들들과 생축의 처음 난 것과 우양의 처음 난 것을 율법에 기록된 대로 우리 하나님의 전으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주고
[현대인의성경]느 10:36
그리고 율법에 기록된 대로 우리 맏아들을 성전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데려다 주어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게 하였고 우리 양과 소와 그 밖에 가축의
첫새끼도 제사장들에게 주기로 하였다.
맏아들들과 ...하나님의 전으로 가져다가 - 이것은 백성들의 맏아들이 하나님께 바쳐져야 했던 것과 동일하다(출 34:19). 이같이 사람을 포함한 모든 초태생(初胎生)이 하나님께 바쳐져야 했던 것은 만물의 창조주가 하나님이심을 기억케 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 특히 장자를 대속하게 했던 것은 백성 전체가 몸과 마음을 거룩히 하여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며 헌신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한편 이렇듯 장자를 하나님께 돌리게 된 기원은 출애굽 직전 하나님께서 애굽의 모든 초태생을 죽이셨던 데서 유래한다(출 13:13-1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장자는 속전(贖錢)을 대신 지불함으로써 그 장자를 하나님께 바치는 셈이 되도록 하셨다.
반면 짐승의 초태생은 대속이 안 되었고, 이에 따라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바쳐져야만했다(출 13:15).
10:37 또 처음 익은 밀의 가루와 거제물과 각종 과목의 열매와 새 포도주와 기름을 제사장들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골방에 두고 또 우리 물산의 십일조를 레위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였나니 이 레위 사람들은 우리의 모든 성읍에서 물산의 십일조를 받는 자임이며
36절까지가 성전에서의 희생 제사를 위하여 바쳐진 것들인 반면 본 절의 것은 제사
장의 생활을 위하여 바쳐진 예물들이었다(Batten).
처음 익은 밀의 가루 - 여기의 '처음'(*레쉬트)은 순서상의 처음 혹은 질적 으뜸 등의 뜻이 있다. 펜샴(Fensham)이나 윌리엄슨(Williamson)등은 후자의 의미를 타당히 여겨서 본 문구를 '가장 좋은 가루 떡'으로 이해했다(민 15:18-21).
거제물(擧祭物) -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렸던 제물 중 제사장 몫을 의미하는 듯하다(39절 ;레 7:32).
하나님의 전골방 - 성전 건물 안에 있던 부속실(附屬室)이었다(13:4,5).
(the storerooms of the house of our God - NIV)
물산의 십일조 - 이것은 다른 지파들처럼 자신들의 기업을 갖고 있지 않았던 레위 사람들에게 주어지도록 규정되어 있었다(민 18:21). 그리고 레위 사람들은
자신들이 받은 십일조의 십일조를 제사장들의 몫으로 주어야 했다(민 18:26).
여기서 이처럼 십일조가 강조되고 있는 것은 당시 별다른 기업이 없어서 오직 십일조만으로 생활을 해야 했던 레위 사람의 많은 수가 십일조가 걷히지 않음으로써 큰 어려움에 봉착한 나머지 성전을 떠나버렸던 그 당시 상황때문이었다(39절;13:10). 말라기에서도 바로 이같은 강조가 나타나고 있는데(말 3:6-15) 이러한 사태는 거의 동시대 사람인 느헤미야와 말라기 모두에게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다.
10:39 곧 이스라엘 자손과 레위 자손이 거제로 드린바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가져다가 성소의 기명을 두는 골방 곧 섬기는 제사장들과 및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있는 골방에 둘 것이라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현대인의성경]느 10:39
또 레위 사람들을 포함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물로 바친 곡식과 새 포도주와
감람기름을 성전 기구가 보관된 골방과 그리고 제사장과 문지기와 성가대원이
머물고 있는 골방에 갖다 두도록 하였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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