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성경해석

느헤미야 3장 해석

白鏡 2007. 8. 5. 09:35

 



느헤미야 3장의 구조 (by ‘The NIV Study Bible')

 성곽재건 건축자들의 명단 (Ch. 3)


    1. 북쪽지역 (3:1-7)

    2. 서쪽지역 (3:8-13)

    3. 남쪽지역 (3:14)

    4. 동쪽지역 (3:15-32)


예루살렘 성곽의 중수에 대한 ‘디럭스 메튜헨리 주석’

여기의 예루살렘 성곽 건축 기록을 살펴보면 우리가 주목할 것이 몇 가지 있다.

(1) 대제사장 엘리아십과 형제 제사장들이 건설역군들의 선봉이 되었다(1절). 

  이 일에 힘든 부분이 있다면 제사장들이 그 일을 담당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며 위험한 일이 있더라도 그 위험을 감수할 사람은 제사장밖에 더 적합한 사람이 없다. 제사장들은 양문을 건축했다. 이 문을 양문이라 부르는 이유는 성전에서 희생으로 드릴 양을 들여오는 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번제 드리는 일은 제사장들의 유업이기 때문에 그들이 이 문을 건축하게 되었다. 또한 이 문은 말씀과 기도로써 성별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2)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능력에 따라 이 일에 참여했다.

  백성들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어떤 사람은 좀 더 많이, 어떤 사람은 좀 더 적게, 각자의 몫을 맡아서 이 사역을 담당했다.

(3) 예루살렘 주민이 아니지만 이 일에 열심인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은 모두 개인적인 이익이나 유익을 고려하지 않고 공동의 이익을 순수하게 앞세웠다. 이 사람들 중에는 먼저 여리고 사람들(2절), 기브온과 미스바 사람들(7절), 사노아 사람들(13절)이 있었다. 따라서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예루살렘 성곽 건축에 손을 모았던 것이다.

(4) 대부분의 예루살렘 민장들과 타 성읍 민장들은 이 일에 적극적이었다.       

  이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명예를 걸고 재산과 능력을 최대한으로 기울여 이 선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5) 그러나 드고아 귀족들은 사역을 감당치 않아(5절) 비난을 받았다.

   즉 이들은 귀족적인 지위와 자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섬기는 일과 선한 사업의 의무도 면제받은 것처럼 생각하고 이 사역의 의무에 예속받지 않으려고 했다.

(6) 옛 문은 두 사람이 함께 중수했다(6절).

  따라서 이들은 협력자로서 명예를 나누어 가졌다. 우리는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선한 사업에 협력한 사람에 대해서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7) 제사장이나 민장들과 마찬가지로 착하고 성실한 상인들 즉 금장색, 향품 장사,들 뿐 아니라 상고들(8,32절)도 이 일에 적극적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직업 때문에 이 사역에서 면제된다고 생각하거나, 공공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상점을 비워두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항변하지 않고 오히려 이 일로 입을 손해는 하나님께서 사업을 축복하심으로 갚아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8) 여자들 중에도 이 일에 참여한 사람이 있었다.

  살룸과 그 딸들(12절). 이들은 직접 일을 할 능력은 없었지만, 유산을 가지고 있었거나 부자 과부였기 때문에 재료를 구입하고 일꾼을 고용하는데 돈을 드렸을 것이다. 바울 사도도 복음에 그와 함께 힘쓰던 선한 여인들에 대하여 언급하였다(빌4:3).

(9) 어떤 사람들은 자기 집과 마주한 곳을 건축했다고 한다(10,23,28,29절).

  한 사람(아마 하숙하던 사람인 것 같다.)은 자기 침방과 마주 대한 곳을 쌓았 다고 기록되었다(30절). 선한 사업이 전체적으로 진행될 때 개인들은 그 일 중 에서 자신에게서 가장 가까운 부분이나 자기 능력이 미치는 부분까지만 전념하 면 된다. 사람들이 자기 집 문 앞을 청소한다면 거리는 깨끗해질 것이다. 개인이 한 가지씩만 고친다면 우리 사회 전체가 개혁될 것이다. 가진 것이 침실  밖에 없는 사람은 그 맞은편만 쌓아도 자기 몫은 다한 것이다.

(10)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할당된 부분을 힘써 건축했다고 한다(20절).

  이처럼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히 사모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아마 이 사람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여 더 열심히 더 부지런히 일하도록 했을 것이다.

(11) 어떤 사람은 여섯째 아들이었다고 한다(30절).

  다섯 사람의 형들이 이 사 역에 손을 대지 않았고 그가 일을 했던 것 같다. 선한 일을 할 때, 형들이 앞서 가는 것을 보려고 지체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만약 형들이 선한 일 하기를 싫어한다면 그 뒤를 따라가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가장 유용한 사람이 가장 명예로운 사람이다.

(12) 일을 먼저 끝낸 사람들은 동료를 도와주었고 도움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부분에 가서는 나누어서 일했다.

  므레못은 한 부분을 완성하고(4절) 다시 다른 부분을 맡았다(21절). 드고아 사람들은 그들이 맡은 부분을 끝내고(5절), 다른 곳을 또 맡았다(27절). 이들의 사역이 더욱 빛나게 보이는 이유는 드고아 귀족들이 이 사역을 기피함으로 나쁜 본을 보여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본받아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오히려 자기들의 열심으로써 귀족들의 탐욕을 부끄러워하고 속죄하기 위하여 두 배의 일을 감당하였기 때문이다.

(13) 이 사역에서 느헤미야 자신이 담당한 특별한 분량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느헤미야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겠는가? 그렇지 않다. 그가 성곽의 어떤 부분을 맡아 건축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누구보다도 많은 일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이 모든 일을 감독하면서 자신의 종자의 반수는 도움이 필요한 곳을 도와주게 하였고 반수는 망을 보게 하였기 때문이 다.(4:16) 여기에 대해서는 앞으로 자세히 살펴볼 기회가 있다. 그리고 느헤미 야가 몸소 돌아 다니면서 건축자들을 가르치고 격려하는 동안, 시간이 날 때는 직접 일에 손을 대기도 했을 것이다. 또한 적의 동태에서 눈을 떼지 않았는데 이것에 대해서도 다음 장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항해사는 돛줄을 잡아당길 필요 가 없다. 그에게는 전방을 주시하는 일만으로도 충분한 일인 것이다.

 

 

3:1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NIV]느 3:1

Eliashib the high priest and his fellow priests went to work and rebuilt the Sheep Gate. They dedicated it and set its doors in place, building as far as the Tower of the Hundred, which they dedicated, and as far as the Tower of Hananel.


[공동번역]느 3:1

대사제 엘랴십은 동료 사제들을 거느리고 양 다니는 문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문틀을 짜고 문을 만들어 달았다. 그런 다음 메아 망대까지, 또 하나넬 망대까지

수축하여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대제사장 엘리아십 - 이 사람은 스룹바벨과 함께 최초로 팔레스틴에 귀환했던 대제사장 '예수아'의  손자이다(12:10).  그런데  나중에 그의 손자가 산발랏의 딸과 결혼했고(13:28), 또한 그는 이방인 도비야(2:10)에게 성전의 방을 내어줄(13:4, 7) 만큼 산발랏 일당과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그렇다면 엘리아십이 처음에는 느헤미야를 도와 헌신적으로 재건 사업에 참여하다가 나중에 산발랏 일당에게 매수당했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불온한 마음을 가진 채 단지 백성들의 눈을 의식하여 형식적으로 재건 사역에 참여하였을 뿐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어쨌든 보다 분명한 것은 백성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대제사장이 재건 사역에 협력하였음을 느헤미야가 부각시키려 했다는 사실이다.


3:3 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공동번역]느 3:3

물고기문은 하쓰나아 일가가 세웠다. 문틀을 짜고 문짝을 만들어 달고 빗장과

빗장꽂이를 만들어 달았다.


   어문(魚門)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 - 예루살렘 북쪽 성벽의 좌측에 위치한 문으로서, 갈릴리 바다 및 요단 강에서 잡힌 물고기들이 바로 이곳을 통해서 들어왔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진 듯하다. 이 문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구절들은 본서 12:39과 대하 33:14 그리고 습 1:10 등이다.

한편, '하스나아'는 '스나아'라는 지명(地名) 앞에 정관사 '하'가 붙은 것으로 봐야한다(스2:35 ). 따라서 '하스나아의 자손들'도 2절의 '여리고 사람들'처럼, 자신의 조상이 '스나아'라는 곳에 살고 있었음은 알았으나 그 족보를 밝히지 못함으로 인하여 조상의 이름 대신 지명을 통하여 구별되고 있다(스 2:35).

3:4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므세사벨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였고


   므세사벨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므슬람 - 이 사람은 자신의  딸을  '도비야' (2:10,19)에게 며느리로 주는 등 사마리아 사람들과 밀착된  관계를 맺었던(6:18)

제사장이다(30절). 그가 성벽 재건에 참여한 이유는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경우와 유사할 것이다(1절 주석 참조). 한편  '므술람'이라는 이름은 '동맹한'이란 뜻이다.



3:5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

주의 역사에 담부치 아니하였으며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 6절의 언급으로 미루어 볼 때, '드고아 사람들'의 작업 몫은 '옛 문'과 인접한 동쪽 성벽의 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한편, '드고아'는 예루살렘 동남쪽 약 14.5Km 지점의 불모지에 자리 잡았던 성읍으로서, '아라비아 사람 게셈'(2:19)에 의해서 공격받기 쉬웠던 입지 조건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드고아 사람들'은 출신지역에 따라 분류된 포로 귀환자 명단(스 2:20 - 35)에 나오지 않음을 볼 때, 자신들의 족보를 잊어버린 사람들은 아닌 듯하다. 느헤미야는 다만 (1) '드고아'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의 공격을 쉽사이 받을 수 있는 지역이며, (2) 그곳의 귀족들은 오히려 성벽 재건에 참여치 아니했다는 등의 특별한 상황 때문에, 조상의 이름을 통한 가족 분류 방식을 포기하고 이같이 동리의 이름을 통해 이들을 분류하고 있다고 본다.

   그 귀족들은 그 주의 역사에 담부(擔負)치 아니하였으며 - 이것은 문자적으로 '그들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목들을 자신들의 주(主)들의 역사에 가져오지 않았다'의 뜻으로서, 멍에 메기를 거절하는 황소의 모습에 빗대어서(렘 27:12) 성벽 재건 사역에 동참치 않은 귀족들을 암시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한편, 여기서 '그 주'는 누구를 가리킬까? 본절의 '주'(아도네이헴)가 복수라는 점에서 하나님으로 볼수 없으므로 느헤미야를 도와서 일을 하던 감독자들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 문자적 의미는 '높임을 받는자'이다.

한편, '귀족들'이 성벽 재건에 참여치 아니했던 이유는

(1) 이들이 '아라비아 사람 게셈'의 보복을 두려워했으며,

(2) '게셈'과 상당히 깊숙한 밀착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때문으로 이해될 수 있다.

3:6 옛 문은 바세아의 아들 요야다와 브소드야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본절에서부터 11절까지에서는 약 600m 가량의 성벽 재건 작업에 대해서 엄급한다.

   옛문 - 왕하 14:13과 램 31:38의 '모퉁이 문'과 동일시 되며 예루살렘 북쪽 약 30Km 지점에 있던 '여사나'(대하 13:19)라는 곳으로 향하는 도로로 통하는 문이었다. 이 문을 옛 문’이라고 부르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 문이 멜기세덱이 제일 처음 건축했다고 전해오는 옛 예루살렘성에 속해 있던 문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3:8 그 다음은 금장색 할해야의 아들 웃시엘등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향품 장사 하나냐등이 중수하되 저희가 예루살렘 넓은 성벽까지 하였고


[현대인의성경]느 3:8

그 다음 부분은 금세공업자 할해야의 아들 웃시엘이 건축하였고 향품 제조업자인 하나냐는 넓은 성벽까지 그 다음 부분을 건축하였다.


[NIV]느 3:8

Uzziel son of Harhaiah, one of the goldsmiths, repaired the next section; and

Hananiah, one of the perfume-makers, made repairs next to that. They restored

Jerusalem as far as the Broad Wall.


   금장색(金匠色)..향품 장사..중수하되 - 7절에서는 가까운 지방 사람들끼리 힘을 합하는 모습이 언급된 데에 이어서, 여기서는 특별한 직업의 소유자들끼리 협력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고대 중근동 사회에서는 '금장색'은 순금이나 금박으로 장신구와 우상등을 만드는 일에 주로 종사했었다(사 40:19; 41:7; 46:6; 렘 10:9, 14; 51:17). 그러나 포로 귀환후의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우상 숭배가 엄격히 금지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본문의 '금장색'은 장신구 등의 제조에만 관계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본절과 31, 32절은 이 '금장색'들이 자신들 끼리의 동업자 조합을 형성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짙게 풍기고 있다. 더구나 여기의 '금장색'(초르핌)이라는 단어가 복수라는 사실은 그 가능성을 더욱 높게 한다. 

한편, '향품장사'는 애굽이나 인도 등지에서 완제품을 수입해서 팔거나 혹은 식물에서 '향품'을 직접 추출해내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이런 직종에 종사했던 인물로 성경에 최초로 언급되는 자는 브사렐이다(출 37:1, 29).

이러한 '향품'은 '분말' 혹은 '액체'의 형태였고, 조그만 용기에 보관되어 여인들에 의해서 지참되었다(사 3:20).

이 같은 향품의 주된 용도는 몸의 냄새를 상쇄시키는 것이었고 장례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아무튼 '금장색'이나 '향품 장사'는 (1) 시간 할애가 용이하였으며, (2) 다른 직업의 소유자보다 수입이 많은 관계로 경제적으로 넉넉했기 때문에, 성벽 재건 사업에 적극적일 수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이들은 그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보통 중류계급으로 분리되었다고 한다.


3:9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후르의 아들 르바야가 중수하였고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 여기서 '지방'(펠레크)은 원래 '주위'나 혹은 '물레가락'의 뜻을 지니며 한계가 명확하지 않은 주변지역을 가리킨다. 따라서 여기의 '예루살렘 지방'은 예루살렘 시내 지역이 아닌 예루살렘과 붙어있는 변두리 지역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스리는 자'(사르)는 본서에서 보통 '방백'으로 번역된 단어로서(스 10:14) 그 당시의 유다 지역이 조그만 단위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음을 시사해준다. 한편, 본절은 해당 지역의 책임 관리자 혼자서만 재건 사역을 감당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마 그의 주도하에 해당 지역내의 주민들이 이 일에 협력하였을 것이다.


3:11 하림의 아들 말기야와 바핫모압의 아들 핫숩이 한 부분풀무망대를 중수하였고


[NIV]느 3:11

Malkijah son of Harim and Hasshub son of Pahath-Moab repaired another section and the Tower of the Ovens.


   한 부분(미다 쉐니트) - 이것은 문자적으로 '두번째 부분'으로서, 이미 배정됐던 몫 이외의 또 다른 부분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말기야'와 '핫숩'은 여기 이외에 다른 부분의 축성(築城)작업도 부여받았던 셈이다(23절).

   풀무 망대 - 이는 12:38; 대하 26: 9등으로 볼 때 '골짜기 문'과 '넓은 성벽'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였던 곳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이 같은 명칭이 붙여진 것은, 그곳에서 빵이 구워졌기 때문인 듯하다.


3:13 골짜기 문은 하눈과 사노아 거민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분문까지 성벽 일천 규빗을 중수하였고


   본문까지 성벽 일천 규빗을 중수 - '일천 규빗'은 약 450m의 길이이다. 북쪽 성벽 약 200m 정도를 네 집단에서 담당했던 것(2-5절)과 비교해 보면 매우 작은 성읍 '사노아'의 거민들이 이렇게 많은 분량을 담당하였다는 사실은 특이하게 보인다.이 점에 대해서는

(1) 사노아 거민들이 큰 열심을 냈었다는 측면,

(2) 그들이 담당했던 성벽의 파괴가 극심하지 않았었다는 측면 모두가 인정될수 있을 것이다.

3:15 샘문은 미스바 지방을 다스리는 골호세의 아들 살룬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고 덮으며 문짝을 달며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왕의 동산 근처 셀라 못가의 성벽을 중수하여 다윗성에서 내려오는 층계까지 이르렀고


   셀라못'은 '실로암 못'과 동일시되는 것으로서(사 8:6; 요 9:7). 그 물이 넘쳐 흘러서 기드론 골짜기와 힌놈의 골짜기가 마주치는 곳에 위치했던 '왕의 동산' 쪽으로 흘러갔다. 결국 이 '셀라 못'은 '왕의 동산'의 수원(水源)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 못이 예루살렘 본성(本城)의 바깥 쪽에 위치했었다. 이런 점 때문에 그 못과 그 물을 이용하는 자들의 보호 목적으로 별도의 성벽이 쌓아졌었으므로 '셀라 못'은 성벽에 둘러싸여 있게 된 셈이다.

그렇다면 본 문구의 '성벽'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루살렘의 동쪽 성벽의 가장 남쪽부분 약 100m를 가리키며 '셀라 못'의 동쪽성벽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것은 '셀라 못가의 성벽'이라고 할 만하다.

   다윗성에서 내려오는 층계 - '다윗성'은 예루살렘의 동남쪽의 한 구릉지대로서,

기혼 샘의 북서쪽에서부터 남쪽까지 뻗어 있었다(삼하 5:7, 8). 그리고 '층계'는 기

드론 골짜기로 내려갈 수 있었던 계단이었다.


3:16 그 다음은 벧술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아스북의 아들 느헤미야가 중수하여 다윗의 묘실과 마주 대한 곳에 이르고 또 파서 만든 못을 지나 용사의 집까지 이르렀고



   벧술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느헤미야 - '벧술 지방'은 예루살렘 남쪽 약 21Km 지점에 위치한 '벧술'이라는 성읍(수15:58) 그자체를 뜻하지 않고 다만 그 성읍의 인접 지역을 가리킬 뿐이다(9절).

한편, 본절의 '느헤미야'는 본서의 저자인 '느헤미야' 와 동명 이인이다.

   다윗의 묘실과 마주 대한 곳에 이르고 - '다윗의 묘실'은 '묘실'(* 키브레이)이 복수라는 점에서 다윗 왕 한 사람만의 무덤이 아니라 다윗부터 시작해서 그 후예들의 공동 묘지였음이 분명하다(대하 28:27).

그 위치는 '다윗 성'(15절)의 남쪽 곧 시온산 어디였을 것이다(Myers, 왕상 2:10).

   파서 만든 못을 지나 용사의 집까지 - 히스기야 왕이 산헤립에 의해서 포위됐을때 히스기야는 기혼의 샘 물을 막은 후 고랑을 파서 그 물이 다윗 성 안쪽으로 흘러 들어오도록 해서 식수(食水) 문제를 해결했었다(왕하 20:20; 대하 32:3, 4). 그때 그 흘러들어온 물이 한 곳에 모이도록 해놓은 시설이 곧 여기의 '파서 만든 못'이었다(사 22:9 - 11).

한편 '용사의집'은 다윗의 충실한 부하들이었던 '용사들'(삼하 23:8; 대상 11:10)이 사용했던 병사(兵舍)였다(Rawlinson).


3:18 그 다음은 그 형제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헤나닷의

아들 바왜가 중수하였고


[NIV]느 3:18

Next to him, the repairs were made by their countrymen under Binnui son of

Henadad, ruler of the other half-district of Keilah.


[표준새번역]느 3:18

그 다음에 이어지는 부분은, 그일라의 다른 반쪽 구역의 책임자이며 헤나닷의

아들인 바왜가 친족들과 함께 보수하였다.



   그 형제..헤나닷의 아들 바왜 - 여기의 '바왜'(* )는 '빈누이'(* )의 오기(誤記)로 간주될 수 있다. 그 이유는

(1) '바왜'라는 이름은 구약 성경이나 그밖의 문헌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으며,

(2) 9절의 '한 부분'은' 이미 배당된 몫 이외의 또 다른 부분'(11절)을 가리키므로, 본장 어디에든 '빈누이'가 느헤미야로부터 할당받은 작업 몫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하나 그렇지 못하며,

(3) 더구나 10:9에는 '빈누이'라는 레위 사람이 '헤나닷의 자손'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본절의 '바왜' 를 '빈누이'로 고치고, 이 '빈누이'가 느헤미야로부터 두 몫의 성벽 공사를 할당받았다고 결론지어야 할 것이다.

한편 이 '빈누이'는 에스라의 언약문에 인을 치기도 하였다(10:9).


3:25 우새의 아들 발랄은 성 굽이 맞은편과 왕의 윗 궁에서 내어민 망대 맞은편 곧 시위청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바로스의 아들 브다야가 중수하였고


[현대인의성경]느 3:25

우새의 아들 발랄은 그 모퉁이에서부터 경비실 뜰 곁의 윗궁 망대 앞까지

건축하였고 그 다음 부분은 바로스의 아들 브다야가 건축하였다.


[NIV]느 3:25

and Palal son of Uzai worked opposite the angle and the tower projecting from the upper palace near the court of the guard. Next to him, Pedaiah son of Parosh



3:26 (때에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하여 동편 수문과 마주 대한

곳에서부터 내어민 망대까지 미쳤느니라)


[표준새번역]느 3:26

오벨에 살고 있는 성전 막일꾼들이, 동쪽 수문 맞은쪽, 쑥 내민 망대가 있는

곳까지 보수하였다.


[NIV]느 3:26

and the temple servants living on the hill of Ophel made repairs up to a point opposite the Water Gate toward the east and the projecting tower.

   때에(*웨) - '그리고' 혹은 '그런데'의 뜻이다.


3:28 마문 위로부터는 제사장들이 각각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표준새번역]느 3:28

말 문 위로는 제사장들이 각각 자기 집 맞은쪽을 보수하였다.



3:31 그 다음은 금장색 말기야가 함밉갓 문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여 느디님 사람과 상고들의 집에서부터 성 모퉁이 누에 이르렀고


[표준새번역]느 3:31

그 다음에 이어지는 부분, 곧 점호 문 맞은쪽, 성전 막일꾼들과 상인들의 숙소가

있는 데까지, 그리고 성 모퉁이 누각까지는, 세공장이 말기야가 보수하였다.


[NIV]느 3:31

Next to him, Malkijah, one of the goldsmiths, made repairs as far as the house of the temple servants and the merchants, opposite the Inspection Gate, and as far as the room above the corner;


   금장색 말기야 - 본절의 '금장색'(* , 초르피)은 8절의 '금장색'과는 달리 단수이다.

   함밉갓 문과 마주 대한 부분 - '함밉갓 문'(*솨아르 하미프카드)의 '하미프카드'는 삼하 24:9에서는 '인구 조사'의 의미로 사용된다. 따라서 본 절의 '함밉갓 문'은 히브리 단어의 음역을 그대로 따르기 보다는 차라리 의미적으로 번역해서 '소집문'(RSV, the Muster gate ; the Inspection gate)으로 옮겨질 수 있다(Fensham,  Williamson). 이는 백성들이 특별한 일이 발생했을 경우에 그 문 앞으로 소집되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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