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성경해석

느헤미야 1장 해석

白鏡 2007. 8. 5. 09:05
 

1: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 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궁에 있더니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 '하가랴'는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 희귀한 이름으로서 그 의미는 분명치 않지만 '여호와의 흑암'으로 추측된다. 반면에 '느헤미야'는 포로 전 후기를 막론하고 대단히 흔했던 이름으로서 그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위로하신다'이다. 바로 이 이름의 축약형이 '나훔' 이다 (나 1:1).

  아닥사스다왕 제 이십 년 - B.C. 445년을 가리킨다.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더니 - '기슬르월'은 태양력으로 11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에 해당되는 달(月)이 다. 이때 아닥사스다 왕은 당시 느헤미야가 머물러 있었던 '수산 궁'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페르시아 왕들은 대개 겨울에는 '바벨론'을, 여름에는 메대의 '악메다'를 휴양지 삼아 거기서 통치하였으며, 봄이나 가을이 되어야 '수산 궁'로 돌아왔기 때문이다(스 6:2; 에 1:2). 느헤미야가 고국으로부터 의 급박한 소식을 접하고서도(2, 3절) 즉시 왕에게 부탁하며 귀국할 수 없었던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실제로 느헤미야가 자신의 괴로운 심정의 자초지종을 아뢰고서 귀환 허가를 받은 것은 '니산월'(2:1), 곧 B.C. 444년 3, 4월에 해당되는 때였다.


1:2나의 한 형제 중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즉


   나의 한 형제 중 하나니 - 이 사람은 '느헤미야'의 친동생인 것으로 추정된다(Fensham, Schultz, 7:1, 2). 나중에 그는 느헤미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귀환해서 느헤미야를 돕는 관리로 임명되었다(7:2).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이르렀기로 -  이들이 '하나니'를 우두머리로 해서 '수산궁'에 온 것은, 예루살렘의 급박한 상황을 페르시아 왕궁의 고위직에 있었던 느헤미야에게 알리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니'는 페르시아나 바벨론에  살고있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결국 이것은 '하나니'가 자신의 친형 느헤미야와 헤어져 에스라를 따라 B.C. 458년에  팔레스틴으로의 귀환 대열에 합류했었음을 암시한다.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 이것은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을 말한다(스 2:1). 유대인들에게 있어 포로 생활이란 커다란 수치였으므로 성지(聖地)에로의 귀환은 곧 수치를 면한 것으로 이해되었다(스9:13 참조).


3:3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NIV]느 1:3

They said to me, "Those who survived the exile and are back in the province are in great trouble and disgrace. The wall of Jerusalem is broken down, and its gates have been burned with fire."


prov·ince〔〕 n.
1 [the ~s] 지방, 시골영국에서는 London 이외전국

 Seoul and the provinces 수도 서울지방

2 (행정 구역으로서의) (州), (省), (縣), (道)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 이는 당시 유대 사람들이 숫자가  적고 무장을 갖추지 못함으로써 이방인들의 노략 대상이 되며, 지극히 가난하여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음을 가리킨다(Batten).

한편 '그 도'에 대해서는 몇 가지  견해로 갈린다.

(1) 유프라테스강 서편지대를 가리킨다는 견해(Aharoni),

(2)사마리아를 가리킨다고 보고 당시 유대는 페르시아의 행정 구역상 사마리아에 속했다고 이해하는 견해,

(3) 유대를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유대가

고레스나 다리오 때에 이미 페르시아의 독립된 한속령으로 인정받았다고 보며, 학개가 스룹바벨을 '유다 총독'으로 지칭한 사실을 그 증거 자료로 제시한다(학 1:1). 따라서 세 번째 견해가 가장 무난할 듯하다.

   예루살렘 성은 훼파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 이 같은 사건이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1) B.C. 586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함락된 사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와(Feysgan, Rawlinson, Schultz),

(2) (스 4:7-24)에 기록된 르훔과 심새등의 훼방사건을 가리킨다는 견해가 있다(Williamson, Kidner).

예루살렘  함락은 본문 시점로 부터 무려 140여 년 이전에 발생한 오래된 역사적 사건이었지만 본문의 정황은 최근에 발생한 충격적인 요소가 전달된 것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이견해는 상당한 타당성을 지닌다.

(3) 에스라서와 본서 사이의 공백 기간인 12년 사이에 몇 차례의 성벽 재건이 시도되었으나 그때마다 훼방당했던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이다. 이 견해도 시대 설정의 측면에서 비교적 무난하다고 이해된다.


1: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만일 너희가 범죄하 면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 흩을 것이요


   이 같은 말씀은 레위기 26:27-45과 신명기 30:1-5을 해석적으로 인용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범죄하면'(*마알) '배은 망덕'(背恩忘德)하게 행동하다'  혹은 '불충성하게 행동하다'의  뜻으로서 구체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큰 은혜를 잊고 다른 신을 찾는 것을 가리킨다. 한편 '열국 중에 흩으실 것이요'는 (1)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국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간 일, (2)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가 멸망당하는 와중에서 또다른 제 삼국으로 피신한 일(왕하 25:26; 렘 42:10 - 22; 43:1 - 13)등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절의 '열국'은 앗수르, 바벨론, 애굽 등을 가리킨다. 어쨌든 '흩을것이요'라는 말의  주된 초점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가 되게 하신 역사적 사실에 맞추어져 있음은 분명하다.


3: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었느니라


[표준새번역]느 1:11

주님, 종의 간구를 들어주십시오. 주의 이름을 진심으로 두려워하는 주의

종들의 간구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이제 주의 종이 하는 모든 일을 형통하게

하여 주시고 왕에게 자비를 입게 하여 주십시오." 그 때에 나는 왕에게 술잔을

받들어 올리는 일을 맡아 보고 있었다.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 - 이들은 팔레스틴에서 느헤미야를  찾아온 '하나니' 일행을 가리킨다(Fensham, 2절). 느헤미야가 그들을 이같이 표현한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의 형편을 느헤미야에게 전달하기 위해 온갖 희생을 무릅썼던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그들은 온갖 위해(危害)요소가 도사리고 있었던(스 8:21, 22, 31) 약 1,400Km의 길을 자청해서 행(行)하여 느헤미야에게 왔던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구가 팔레스틴 본토의 경건한 유대인들을 가리킬 가능성이 있음도 배제치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 이는

(1) 느헤미야에게 왕의 면전으로  나아갈 수 있고 소청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스 4:11),

(2) 느헤미야의 소청이 왕에 의해서 기꺼이 받아들여지는 것(2:3-6) 등을 가리킨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술 관원'이라는 특별한 지위의 소유자였다는 점에서 위의 두 가지 중 첫째의 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편 느헤미야가 중요 직위에 있었으면서도 이 같은 염려를 한 까닭은 그가 페르시아왕들의 변덕스러움,  즉  어떤  때는 신하들에게 호의를 베풀다가도 곧 그태도를 급변시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느헤미야는

(1) 자신이 왕에게 소청하러 나갔을 경우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왔음을 이유로 왕이 진노하는 것(에 4:11),

(2) 자신이 왕에게 소청을 했을 경우 그것을 불쾌히 여겨서 심지어는 선대(先代)의 왕들이 내린 조서까지도 무효로 하는 것을 두려워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말은 '이 사람'이다. 이것은 세상 나라의 왕에 대한 느헤미야의 시각을 잘 반영해 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즉 느헤미야는 세상 사람의 시각으로 볼 때는 피정복민들의 생과 사를 좌우할 수 있는등 대단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특별한 인물이었던 아닥사스다 왕을 신앙적인 시각에 따라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한 사람으로서만 보고 있는것이다(Fensham).

다시 말해서 이것은 느헤미야가 팔레스틴으로 가고 못 가고의 문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달렸다고 보았음을 강력히 암시하는 문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때에  술 관원이 되었었느니라 - 개역 성경의 번역은 마치 느헤미야가 기도의 응답으로 '술 관원'의 지위에 오른 듯한 오해를 낳게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적절치 못하다. 느헤미야는 이미 '술 관원'의 지위에 있었다. 따라서 이것은 '그때에 술 관원이었느니라'고 번역함이 타당하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여기서 이처럼 자신의 신분을  밝힌 것은

(1) 앞의 '이 사람'이 누구인지를 시사해주며,

(2) 자신이 왕에게 소청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려는 의도 때문이었다(Rawlinson).

아무튼 느헤미야가 '하나니' 일행이 팔레스틴으로부터 오기 전에 이미 '술 관원'이었다는 사실은 그가 '수산 궁'에 있었다는(1절) 점에 의해서 증명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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