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성경해석

느헤미야 2장 해석

白鏡 2007. 8. 5. 09:25
 

2:1 아닥사스다 왕 이십년 니산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 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이 없었더니


   아닥사스다 이십년 니산월 - '니산월'은 유대 종교력으로 정월(양력 3-4월) 에 해당된다.  그리고 '하나니'등이 페르시아에 도착했던 '기슬르 월'은 11-12월 이다(1:1). 그렇다면 1:1의 '기슬르 월'이 '아닥사스다 제 이십 년'이었다고 할 경우 본절의 '니산 월'은  '아닥사스다 이십 일 년'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본 절에 '이십 년'이라고  표기된  까닭은 그 당시 느헤미야가 왕의 재위년수를 '디스리 월'(양력으로 9-10월)부터를 새해로 간주하는 유대 민간력을 좇아 계산하였기 때문이다(Fensham ). 따라서 '기슬르'(1:1)이나 본절의 '니산 월'은 동일한 재위년도에 속하는 셈이 된다.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 이것은 그당시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음을 암시해주는 문구이다(Williamson, Fensham ). 사실 페르시아의 왕들은 이와 같은 잔치를 매우  자주 베풀었었다(Fensham, 에 1:3; 5:6). 또한 이것은 고대 중근동 국가들의 일반적 관습이기도 하였다. 아마도 그때 아닥사스다 왕은 바벨론에서의 월동을 마치고,  '니산  월'(양력으로 3-4 월), 즉 봄이 되었기 때문에 느헤미야가 있던 '수산 궁'으로 다시 돌아왔을 것이다(1:1). 아무튼 왕이 베푼잔치는 '술 관원'이었던 느헤미야가 왕에게 나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1:11).


   이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愁色)이 없었더니 - 이 문장에 대해서는 단어해의 차이로 인해 문장해석에 있어서 네가지 정도의 이견이 있으나 개역한글 번역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무리가 없고 그렇다면 이 문구는 느헤미야가 그 전에는 항상 밝은 얼굴로 자기의 소임을 다했음을 말해 준다고 볼 수 있다.


2:5 왕에게 고하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NIV]느 2:5

and I answered the king, "If it pleases the king and if your servant has found favor in his sight, let him send me to the city in Judah where my fathers are buried so that I can rebuild it."


   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 이 부분을 알기 쉽게 번역하면 "폐하께서 좋으시다면, 그리고 저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하신다면“


2:6 그 때에 왕후도 왕의 곁에 앉았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행할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 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즐겨하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표준새번역]느 2:6

그 때에 왕후도 왕 옆에 앉아 있었다. 왕은 "그렇게 다녀오려면 얼마나 걸리겠느냐? 언제쯤 돌아올 수 있겠느냐?"하고 나에게 물으셨다. 왕이 기꺼이 허락하실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나는 얼마가 걸릴지를 말씀드렸다.



   왕후도  곁에 앉았더라 - 고대 중근동 국가에서는, 왕이 국사(國事)와 관련된 귀빈을 맞이하고 있을 때는 '왕후'가 내전(內殿)에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자리였던 관계로 인하여 '왕후'도 왕과 함께 있었다(Rawlinson).  이런 때에 '왕후'는 관례적으로 긴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는 왕의 발(足) 곁에서 왕의 얼굴을 쳐다보며 앉아 있었으며 왕과 왕비가 이런 자세로 있는 동안 신하들은 그 주변에 모여 서 있었던 것 같다(Schultz).


그런데 느헤미야가 본절에서 '왕후'가 함께 있었음을 특별히 밝힌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세가지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1) 왕이 느헤미야에게 호의적 반응을 보인데는 '왕후'의 영향력 행사가 있었음을  암시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Myers, Rudolph, Widengren),

(2) 느헤미야가  왕으로부터 팔레스틴으로 돌아가기 위한 허락을 받는 과정에서 '왕후'라는 장애물이 있었음을 암시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Batten),

(3)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자신의 소원을 알린 곳은 연회장이 아닌 은밀한 장소에서 였음을 암시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Kidner)등이 있다.


그렇지만 

첫째,  '왕후'는 왕의 명령이 있을 경우 왕과 함께 연회장에 참석할 수 있고 또한 이것은 매우 보편적이었으며(Rawlinson, 에 1:11)

둘째, 아닥사스다 당시에는 여인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컸으며(Fensham)

셋째, 느헤미야는 항상 왕궁에 거하므로 왕의 처첩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며

넷째, 5절과 6절은 왕이 왕후가 있었을 내전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추측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 등으로 볼때

위의 세 견해 중 (1)의 것이 가장 타당성이 있는 듯하다.


   네가 몇 날에 행할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 오겠느냐 ```내가 기한을 정하고 -이것은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상당한 신임을 얻고 있었음을 극명히 보여준다. 즉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를 자신의  곁에서 떠나 보내기를 아쉬워했던 것이다. 한편 이 문구는 동의적 대구법의 표현 방식이다. 따라서 '몇 날에 행할 길이며'와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데 소요되는 전(全)기간을 묻는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아닥사스다 왕은 이러한 반복적  표현을 써서 느헤미야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강렬 하게 드러내고 있다. 또한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가 돌아올 날을 본인이 정하지 않고 느헤미야에게 직접  정하도록 한 것은 느헤미야에 대한 세심한 배려임이 분명 하다


2:10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케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본절과 같은 이방인들의 반응은 성전 재건 사업에의 참여 요청이 거부된  사건(스4:1-6)이 있은 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의 냉전 상태가 매우 심화되었음을 잘 보여 준다.

   호론 사람 산발랏 - 애굽 남부 지역인 '엘레판틴'(Elephantine)에서 발굴된 문서에는 산발랏이 사마리아의 총독으로서 언급되며 또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언급되고  있다. 이 문서에 나타나는 두 아들의 이름에 공통적으로 '여호와'를 뜻하는  어미(語尾)가 달려 있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유대의 대제사장 가문과 깊은 친교를 맺고 있었다는 점(13:28)에서, 이들은 나름대로 여호와를 섬겼던 자들로 추측된다(Fensham).  그러나 이들의 종교는 지극히 혼합주의적이었기 때문에(스 4:1, 2) 순수한 여호와 신앙을  지녔던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서 용납될 수 없었다. 한편, 여기서 '호론'은 윗 벨호론과 아랫 벨호론(수 16:3, 5)중 어느 하나를 의미한다(Rawlinson, Myers). 이곳은 당시에 사마리아 사람들이 차지하고 살던 지역이었다. 그리고 '산발랏'은 바벨론식  이름으로서, '신(月神)이 생명을 주신다'의 뜻이다.

   종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 - 여기의 '종'(에베드)은 '신하' 혹은 '부하'의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비야'는 '산발랏'의 휘하에 있던 인물이었던 셈이  된다(6:17, 18). 한편 '암몬 사람'은 반드시 '도비야'가 암몬 지역 출신이었거나 혹은  암몬 땅에 살고 있었음을 의미치는 않는다. 왜냐하면 '도비야'는 (1) 대제사장과 친밀하게 연락하는 사이였던 것으로 보아 자신을 여호와를 섬기는 자로 자처하고 있었으리라 짐작되며(13:4), (2) 암몬사람들에게 '여호와의 선하심'이라는 의미를갖는 유대식 '도비야'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가능성은 다소 희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만 도비야의 조상이 '암몬사람'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보는 편이 무난하겠다(Williamson, Fensham).

   심히 근심하더라 - 사마리아 총독의 이같은 반응은

(1) 성벽재건의 방해 공작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에 따른 두려움,

(2) 예루살렘의 부흥으로 말미암아 사마리아가 유다에 대한 상대적 우월성을 상실할 가능성에 따른 염려(Schultz) 때문이었다.


2:11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거한지 삼일에


   거한 지 삼 일에 - 이같이 예루살렘 도착 후 '삼 일'을 쉰 까닭은

(1) 오랜 여행에 따른 심신(心身)의 피로를 풀며,

(2) 예루살렘의 정확한 상황을 청취하며,

(3) 도모하려는 사업의 성공을 위해 기도하기 위한 목적 때문일 것이다.

이 같은 모습은 에스라 에게서도 발견된다(스 8:15, 32).


2:12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하사 예루살렘을 위하여 행하게 하신 일을 내가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두어 사람과 함께 나갈새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내가  말하지 아니하고 - 이것은  느헤미야  자신의  성벽 재건 계획이 '산발랏'과 '도비야'에게 알려질 경우 그 사업이 미처 시작되기도 전에 심각한 난관에 봉착하거나 그 대적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해 올 것을 염려하여 취해진 조처였다.  느헤미야가 심지어 자신의 동족에게 까지 말하지 아니한 까닭은 그들의 상당수가 '산발랏' 및 '도비야'와 결혼 등 이모 저모로 인연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Schultz, 6:18; 13:28).

   밤에 두어 사람과 함께 나갈새 - 간접적인 보고로만 들은 예루살렘의 형편을 직접 확인파악 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느헤미야가 밤에 이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신의 이런 확인 활동이 '산발랏'과 '도비야'와 내통하고 있던 유대인에 의해서 감지되지 않도록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의 '두어 사람'은 문자적으로  '소수'를  의미하며 구체적으로는 느헤미야의  형제 '하나니'등을 가리킬 것이다(1:2).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 오직 '느헤미야'만이 '짐승'을 탄  것은  최대한으로 대적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한편, '짐승'(*,베헤마)은 일반적으로는 '말'과 '나귀' 모두를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말'은 콧소리를 심하게 낸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여기서 느헤미야가 탄 '짐승'은 나귀였을 것이다(Fensham).


2:14 앞으로 행하여 샘문과 왕의 못에 이르러는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는지라


   샘문과 왕의 못에 이르러는 - '샘문'은 '분문'에서 북쪽으로 대략 120m 정도에  위치했으며 그 바로 앞에는 '실로암 못'이 있었다. 한편 '왕의 못'은 3:15에서는 '셀라 못'으로 지칭되고 있는 '실로암 못'이다.


2:16 방백들은 내가 어디 갔었으며 무엇을 하였는지 알지 못하였고 나도 그 일을 유다 사람들에게나 제사장들에게나 귀인들에게나 방백들에게나 그 외에 일하는 자들에게 고하지 아니하다가


   방백들(*세가님) - 광범위하게 사용된 단어였기 때문에 한마디로 그 의미를 정의하기  곤란하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이것을 회중들에 의해서 선출된 백성의 대표들로  본다(Widengren, Fensham, Rawlinson).

   유다사람  제사장  귀인  방백 - 이들은 당시 유다공동체를 구성했던 대표적인  네 계층으로 이해될수 있을 듯하다. 여기의 '유다 사람'은 반드시 유다 지파 사람만을 의미치 않는다.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유다 지파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인구수에 있어서 가장 컸던 까닭에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이처럼 표현했을 뿐이다. 그리고 '제사장'은 포로 후 시대라는 그 당시 상황에서는 행정 및 경제의 측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신분이었다(Williamson). 그러나 여기서는 이스라엘 공동체 중 종교적 세력을 대표하는 신분으로 암시되는 듯하다. 한편 '귀인'(*호림)은

그 문자적  의미로는 '자유로운 자'이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신분이었으며 또한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를 알수 없다. 다만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어느 정도의  권세를 갖고 있던 신분 정도로 추측될 뿐이다(Fensham). 또한 '방백'은 본절  초두의 '방백'과 동일하다. 이들은 '제사장'과는 달리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행정 분야를 관장하던 신분이었던 것 같다.

   그 외에 일하는 자들 - 성벽재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한자들을 가리킨다(Pulpit Commentary).


2:19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비웃어 가로되 너희의 하는 일이 무엇이냐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 하기로


   아라비아 사람 게셈 - '아라비아 사람'은 앗수르 시대부터 페르시아 시대에 이르기까지 요단 동부 지역의 지배 계급이었다(본 단락 주제 강해,  '아라비아 사람' 참조).

한편 '게셈'이라는 이름은 애굽 땅에서 발견된 B. C. 5세기말 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은 그릇에 그 아들 '카이누'(Qaynu)와 함께 여신 '한-일라트'(Han-'ilat)에게  헌신한 자로서 새겨져 있다. 뿐만 아니라 아람어 비문에서는 '게달의 왕'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사실을 통해서 볼 때 '아라비아 사람 게셈'은 요단 동쪽및 남쪽 지역을 다스리던 자였던 것 같다(Rawlinson). 이처럼 '게셈'이 '도바야'와는 달리 '산발랏'의 휘하에 있었던 한 관리가 아니라는 사실은  6:2에서 이 '게셈'이 사마리아의 총독 '산발랏'과 함께 느헤미야에게 대면(對面) 요청을 했다는 점을 통해서도 자명해 진다.

   업신여기고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 하기로 - 대적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벽  재건 시도를 중단시키기 위해 사용한 두 가지 무기이다. 즉, 하나는 '조롱'이며 또 하나는 '협박'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업신여기고'(*           ,  얄라구)는  '조롱하다' 등의 뜻이 있는 '라아그'(*       )의 사역형으로서, 마땅히 귀중히 여겨져야 할 어떤 대상을 오히려 우습게 여기는 태도를 가리킨다(대하 30:10; 22:7; 잠 17:5). 한편,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라는 질문은, 일찍이 아닥사스다 왕이 사마리아 관원들의 참소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벽 복구사업을 중지시켰던 역사적 사실을 그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그러한 협박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벽 재건사업은 중지령을 내렸던 아닥사스다왕의 새로운 허락과 명령에 따라 시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2:20 내가 대답하여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 그의 종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명록도 없다 하였느니라


[NIV]느 2:20

I answered them by saying, "The God of heaven will give us success. We his

servants will start rebuilding, but as for you, you have no share in Jerusalem or any claim or historic right to it."


[공동번역]느 2:20

나는 그들을 이런 말로 물리쳤다. "하늘을 내신 하느님께서 우리 일을 이루게 하실 것이다. 아무도 이 일을 막지 못한다. 우리는 그 하느님의 종으로서 성 쌓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예루살렘에는너희에게 돌아 갈 몫이 없다. 너희에게는 아무 연고권이 없다."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명록(名錄)도 없다 - 이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유다의 문제에 대해서 간섭할 하등의 명분이나 이유가 없음을 강조하는 말이다(스 4:2,3). 여기서

* '기업'(*헬레크)은 이스라엘의 땅 분배와 관련해서 사용된 법정적 용어이다. 한편 * '권리'(*체다카)는 행정 구역으로서의 유다에 대해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가리킨다(Williamson, Fensham).

앞의 '기업'이 시민권의 문제와 관련 있다면, 이것은 행정권과 관련이 있다고 할수 있을것이다(Williamson). 마지막으로 

* '명록'(*지카론)은 종교적 의식에의 참여권을 가리키는 듯하다 (Fensham, Williamson).

'신앙- 성경해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느헤미야 4장 해석  (0) 2007.09.03
느헤미야 3장 해석  (0) 2007.08.05
느헤미야 개관 및 요약  (0) 2007.08.05
느헤미야 1장 해석  (0) 2007.08.05
에베소서 2장 구조도 및 해석  (0) 2007.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