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성경해석

고린도서 개관

白鏡 2006. 4. 21. 14:12
 

고린도서 개관                             (1차 교정 5월 18일, 2006)


1. 기록자 : 사도 바울

2. 기록연대 : A.D. 55-57년 사이

3. 기록장소 : 에베소

4. 기록대상 : 고린도시에 있는 성도들

5. 기록배경

고린도
고린도는 아가야 지방의 수도로서 지리적 위치로 보아 상당히 중요한 지점에 놓여 있다.

헬라 본토에서 페로폰네소스반도로 나가는 바로 길목에 있어서 육로와 수로로 상업상 교통이 빈번한 곳이다.

기원전 146년에 무미우스(Mummius)에 의해 파괴되었으나 그로부터 80년 후인 기원전 44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에 의해  복구되었다. 그후 고린도는 급속히 재건되어 아우구스토 황제에 이르러 아가야(Achaia)의 수도가 되고 바울 당시에는 인구 60만을 헤아리는 대도시로 발전했다. 당시에 이 도시는 상업의 도시로 번창했으나 반면에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극히 암담하고  무질서하였다. 그 도시인들은 다신교를 숭배했고(행 17:16-22) 그들의 생활은 음란했다. 따라서  '고린도화 하다'라는 말은 '아프로디트(Aphrodite) 여신을 숭배하며 추악한 음행을  행한다'는 의미가 될 정도였다.


고린도 교회

인종적으로 다양한 주민들 사이에는 종교적 혼합주의가 성행하였으며 약 49년경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중 고린도에 도착하여, 생계를 노동으로 꾸미며 회당에서 가르쳤다.

=그의 사역이 1년 반 지난 후에 급성장하는 교회가 생겼는데, 이방인 기독교인들을 구성하였고, 대부분 하층계급인들 이었으나, 부유한 이들과 유대인들도 존재하였다.


아볼로

1)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이었고 달변이며 성서를 잘 풀어 말했다(행 18:24).-성서박사

2) 그가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다는 것(행 18:25)은 아볼로의 설교는 지적이며 논리 정연하여 힘이 있었으나, 그 설교의 영적 수준은 낮았다. 세례를 회개의 개념으로만 앎.

아직 신앙의 초보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성령세례, 육체의 부활, 예수의 재림 등에 대하여는 막연하였다.

3)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행 18:26). 아볼로의 설교를 들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독실한 신앙인으로 바울을 사랑하고 적극적으로 후원하였음)가 저를 청하여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서 복음의 진리를 가르쳤다.

4) 아가야 지방으로 가기를 원하므로 고린도교회로 파송

5) 처음에는 많은 인기가 있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고...(3:16)"

6) 얼마되지 않아 본인 및 교인들의 미숙으로 많은 문제가 생김. 주로 바울파에게 배척을 당함

7) 아볼로는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에 머물렀고 고린도 교인들의 질문과 관련하여 바울이 그에게 고린도로 가기를 강권하였으나 갈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16:12).


고린도 교회의 문제
1.폐륜아 - 아버지가 상대하던 여자를 아버지가 죽은 후 아들이 차지 함

2.성도사이에 송사 - 이권으로 교회안에서 해결하지 않고 법정에 소송을 함

3.결혼에 관하여 찬반 파벌 - 바울이 임박한 환란으로 인하여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도 좋다 라고 한말을 교리로 만든 사람들이 있어 문제가 됨)

4. 바울이 사도냐 아니냐로 시비

5. 예배 시 여인들의 머리에 수건을 쓰냐 마냐 -히브인들은 남자가 머리에 얹음(키파) -> 없으면 신문지라도 얹음 -(14세 이상의 여자는 머리카락을 내 보이지 않음)

6. 은사문제 -> 방언이 문제됨(방언하는 자 = 바울파, 여자파, 신비파 -이들이 아볼로를  무시함 -> 아볼로가 못견디고 에배소의 바울에게 도망감) -> 이에 바울이 쓰기를 은사는 여러 가지나 주는 같고 모든 은사를 한 주께서 여러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그당시 그리스인들은 모든 것을 각 각 다른 신이 준다고 생각 하였다)라면서 우선순위를 두기를 가르치는 은사를 제일 먼저 둗고 방언을 제일 뒤에 두었다.

7.부활

8. 연보

9. 파벌문제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

바울은 이런 소식들을  제 3차 전도 여행 중 에베소에 3년동안 머물면서

다음과 같은 경로를 통해 알게된다.

1) 글로에 집안사람으로부터

2) 아볼로가 돌아와 전하고

3) 남아있던 세 집사가 아볼로를 다시 모시기 위해 와서 이야기를 전함

4) 바울이 이전에 써 보낸 편지에 대해(5장9절) 그들이 질문서를 보냄(7장)

 

이에 바울이 답장을 보낸 것이 고린도 전서이다.

그 후 고린도에 거짓 선교사들이 와서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부인하고 교인들을 호도하였고 사태가 다급함을 인식한 바울은 급기야 직접 고린도 교회를 찾아 갔지만 이미 대부분의 신자들이 바울을 반대하는 자들에게 동조하여 그를 맞아 주지 않았다.

 

바울은 비통한 마음을 안고 에베소에 돌아와 '번민과 비통한 마음을 안고 울면서' 매우 격앙된 어조로 편지를 썼는데 이것이 고린도 교회로 보낸 '눈물의 편지'이다(고린도후서 2:4).

바울은 디도(디모데도 동반했을 가능성이 크다)를 고린도로 보내어 이 눈물의 서간을 보내고 그 사이에 마케도니아로 건너가서 디도가 돌아 오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디도를 만나 고린도 신자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사도에게 순종하고 모든 적들을 엄하게 다스리겠다는 약속을 들었다.

 

이에 대한 바울의 답신으로 나온 편지가 고린도후서(AD 57)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이 고린도후서는 사도직에 대한 편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사도직의 본질과 역활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겸허한 태도로 자신의 약함 안에서 힘차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높이 기리고 있다.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 내용은 교우들이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어 그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고 사목적인 대답을 해 주기 위해 쓰여졌다.

그러므로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는 최소한 네번은 된다고 볼 수 있다.


6. 핵심어 및 내용 :

고린도전서의 핵심어는 "회개"와 "연합"이다. 바울은 사랑하는 마음과 단호한 태도로 회개하고 죄악에서 벗어나 바른 삶을 살라고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권면한다. 또한 고린도 교회가 추구해야 할 아름다운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일이다. 한 몸이 되었을 때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세워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 각각 속에 거하시는 동일한 성령님께서 주시는 힘을 의지하여 악의 세력을 이길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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