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성경해석

느헤미야 13장 해석

白鏡 2008. 3. 9. 08:36
 13:1 그 날에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 그 책에 기록하기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영히 하나님의 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공동번역]느 13:1

그 무렵에, 사람들은 모세의 책을 백성에게 읽어 주다가 이런 말을 발견하였다. "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하느님의 성회에 들어 올 수 없다.


[표준새번역]느 13:1

그 날, 백성에게 모세의 책을 읽어 주었는데, 거기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참석하지 못한다.


[현대인의성경]느 13:1

그 날 모세의 율법을 백성들에게 읽어 주다가 이런 내용이 기록된 것을 발견하였다 :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일체의 종교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다.


[NIV]느 13:1

On that day the Book of Moses was read aloud in the hearing of the people and there it was found written that no Ammonite or Moabite should ever be admitted into the assembly of God,


as·sem·bly〕 n. (pl. -blies)
(사교·종교 위한) 집회, 회합, 회의


   그 날(*하욤 하후) - 12:44의 '그 날'과 동일한 날로 봄이 무난하겠다. 그 이유는 1) 성벽 봉헌 시 뜨겁게 달아올랐던 감격과 헌신의 마음 자세가 식기 전인 성벽 봉헌 직후에 계속 정화 운동을 전개했을 가능성이 많으며(Kidner) 2) 12:44부터 본장 3절까지는 3인칭 시점으로 기술된 데 반해 4절 이후부터는 1인칭 시점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 '모세의 책'은 주로 모세 율법, 즉 모세 오경을 가리킨다. 본 절은 이어 전개되는 정화 운동이 철저히 성경 말씀에 따른 것임을 천명하는  내용이다.

   암몬사람...하나님의 회(會)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 이것은 신  23:3의  요약이다. 한편 '하나님의 회'(*카할 하엘로힘)는 구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사용된 표현이다. 즉, 여기의 '카할'은 구약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항상 '여호와'와 함께 사용된것이다(레 4:13;민 16:3;20:4). 일반적로 '여호와의 회'는

(1) 언약 공동체로서의 백성들의 모임(민 20:4;신 23:1),

(2) 성전(聖戰) 수행을 위해 모인 백성들의 집합, 혹은

(3)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모이는 제의적(祭儀的) 의미에서의 회중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다면 신 23:3과 관련된 문맥에서 사용된 이 '하나님의 회'라는 표현은 '여호와의 총회'(카할)와 동일한 의미를 나타내는 것임에 분명하다.


13:2 이는 저희가 양식과 물로 이스라엘 자손을 영접지 아니하고 도리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그 저주를 돌이켜 복이 되게 하셨다 하였는지라


본 절은 하나님께서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을 이스라엘의 공동체에 들어오지 못하게 엄금한 이유를 설명한 것으로서, 신 23:4,5의 요약이다.

   저희가...이스라엘 자손을 영접지 아니하고 - '암몬'과 '모압'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접해야 했던 이유는 두 족속이 이스라엘 백성과 혈통적으로 한 뿌리에 속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들이었다(창 19-30-38).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러한 관계를 고려하여  절대로 그들을 공격하지 말라고까지 하셨었다(신 2:9,19).

   양식과 물 -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두 가지였다(신 2:6,7).

   발람에게...저주하게 하였음이라 - 이것은 모압 왕 발락이 주동이 되어 메소포타미아의 브올에 살던 복술가(卜術家)'발람'을 초청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주가 임하도록 하라고 요청했던 사실을 가리킨다. 모압과 암몬 족속이 이처럼 행동했던 까닭은 막강한 군사력을 소유했던 아모리 족속까지 격파시켰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에게도 그 같은 군사 행동을 취할까 염려해서 였다(민 22:2,3). 그러나 사실상 이 같은 염려는 어처구니없는 기우(杞憂)였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형제로 인식하고 있었다(신 2:9,19). 이에 따라 그들은 다만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날 수 있는 길만 비켜주고(신 2:27,28), (2) 먹을 양식과 먹을 물을 돈을 받고 공급해주면 그만이었다(신 2:6).

   뇌물을 주어(*사카르) - '품삯을주고 고용하다' 혹은 '어떤 일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다'의 뜻(창 30:28;민 18:31;전 4:9;9:5). 이것은 구체적으로, 모압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한 대가로 발람에게 많은 은금(銀金)을 주었던 사실을 가리킨다(민 22:18;24:13).

   저주를 돌이켜 복이 되게 하셨다 - 비록 발람이 모압 사람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할 마음을 가졌었지만 하나님의 강권적 역사에 따라 그가  도리어 이스라엘을 축복했던 사실을 가리킨다(민 24장).


13:3 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 곧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서 몰수히 분리케 하였느니라


[NIV]느 13:3

When the people heard this law, they excluded from Israel all who were of foreign


13:4 이전에 우리 하나님의 전 골방을 맡은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연락이 있었으므로


   이전에(*리프네이 미제) - 느헤미야가 페르시아로 다시 돌아가기 전의

어느 시점을 가리킨다(6절).

   우리 하나님의 전 - 여기의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만이 들어갈 수 있는'의 의미로 확대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표현은 암몬사람인 도비야에게 성전의 방을 주었던 제사장 엘리아십의 조처가 대단히 잘못된 일임을 보여준다.

   골방을 맡은 제사장 엘리아십 - 본절의 '엘리아십'은 (1) 대제사장  엘리아십(Rawlinson, Schultz, Kidner, Keil). (2) 동명(同名)의 또 다른 제사장(Fensham,  Myers,Williamson) 등으로 추측할 수 있는데

첫째, 대제사장은 성전의 사소한 부분에 대한 감독권까지 갖고 있었으며

둘째, 본 절의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연락이 있었다는 사실과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산발랏의 사위가되었으므로'라는 28절의 내용

셋째, 대제사장에게는 다만 '제사장'이라는 직함이 적용되는 경우도 허다하다(대하 24:2;스 2:63)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1)의 견해가 보다 타당성이 있다.

   도비야와 연락이 있었으므로 - '도비야'는 암몬 출신으로서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의 주구(走拘)였다(2:10). 그는 비록 '여호와의 선하심'이라는 뜻의 히브리식  이름을 가졌지만, 결코 여호와 종교의 예배자는 아니었다.

한편, '연락이 있므로'(*카로브)는 (장소, 혈연 또는 시간등에 있어서) '매우 가깝다'는 뜻으로서 각별한 친근 관계를 가리킨다(Rawlinson).


13:5 도비야를 위하여 한 큰 방을 갖추었으니 끄 방은 원래 소제물과 유향과 기명과 레위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십일조를 주는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특별한 밀착 관계를 유지했던 것은 느헤미야의 귀환 전, 곧 오래전부터 였겠지만, 본 절과 같은 시혜(施惠)는 느헤미야가 페르시아로 일시 돌아갔었던 B.C. 433-432년 동안에 이루어졌었다.

   한 큰 방을 갖추었으니 - 엘리아십이 여러 개의 곳간을 헐어서 하나의  큰  방으로 만들어 도비야에게 주었음을 뜻한다(Rawlinson).

   그 방은...곳이라(*하이우) - 원문상으로는 '그것들은...이다'의  뜻이다.

이처럼 본 동사(*하야)의 주어 어미가 3인칭 복수라는 사실은 엘리아십이 도비야에게준 '한 큰 방'이 여러 개의 작은 방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임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소제물 - 고운 가루에 기름과 유향을 섞어서 만든  일종의  무교병(레2:1) 으로서 상번제와 안식일 제사 그리고  대부분의  희생  제사와  함께  드려졌던  예물이다(민15:3:10).

   유향 - 소합향, 나감향 ,풍자향 등의 향품을 동일한 비율로 섞어 증거궤 앞에 놓았던 제물이다(출 30:34).

   기명 - 성전제사 때에 사용되던 여러 가지 그릇들이다. 그것들의 대부분은  최초의 포로 귀환때 바벨론에서 가져온 것들임이 분명하다(스 1:6-11).

   레위사람...노래하는 자...문지기 - 세 종류의 레위인들 이었다. 이들은 모두 레위지파에 속하였지만 그 직임에 따라 이와 같이 세 종류로 분류되었었다(스 2:40-42).


13:6  그 때에는 내가 예루살렘에 있지 아니하였느니라 바벨론 왕 아닥사 스다 삼십 이년에 내가 왕에게 나아갔다가 며칠 후에 왕에게 말미를 청하고


  그 때에는 - 문자적으로는 '이 모든 동안'이다. 구체적으로 도비야가 엘리아십의 호의에 따라 성전에 속한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던 기간을 말한다.

   바벨론 왕 아닥사스다 삼십이 년 - B.C. 433년을 가리킨다. 한편, '바벨론왕  아닥사스다'라는 표현은 페르시아 왕들이 바벨론 왕들의 후계자로 자처했던 전통과 관련이 있다(스 5:13).

   내가 왕에게 나아갔다가 - 느헤미야가 페르시아로 돌아간 것은

(1) 그가 아닥사스 다에게 약속했던 기간이 다 됐거나

(2)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의 호출을 받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며칠 후에 왕에게 말미를 청하고 - '며칠후에'(*레케츠 야밈)는 문자적으로 '날들의 끝에'의 뜻이다. 추측컨대 느헤미야가 페르시아로 다시 온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무렵을 의미하는 듯하다. 바로 이 같은 사실에 근거하여 우리는 느헤미야가 B.C. 433년에 페르시아로 돌아가서 정확히 1년만에 팔레스틴으로 귀환했으리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13:10 내가 또 알아본즉 레위 사람들의 받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그 전리로 도망하였기로


   레위 사람들의 받을 것 - 레위 사람들의 유일한 수입원(收入源)이었던 십일조를 가리킨다(10:37).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 느헤미야는 십일조의 원활한 징수를 위하여 레위 사람들을 각 성읍에 주재시켰었다(10:37).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십일조를 바치지 아니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느헤미야가 자리를 비운지 불과 1년 가량의 기간 동안 성전 제사의 절대적 필요성을 무시할 만큼 영적으로 침체했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레위 사람들...그 전리(田里)로 도망하였기로 - 성벽 봉헌식 이전에도 레위 사람들의 상당수는 여러 촌(村)에 흩어져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있었다(12:27).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십일조를 성실히 내겠다는 백성들의 다짐(10:37-39)을 믿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십일조 납부가 중단되자 다시 생업 유지를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


13:13 내가 제사장 셀레먀와 서기관 사독과 레위 사람 브다야로 고지기를 삼고 맛다냐의 손자 삭굴의 아들 하난으로 버금을 삼았나니 이는 저희가 충직한 자로 인정됨이라 그 직분은 형제들에게 분배하는 일이었느니라


   하난으로 버금을 삼았나니 - '버금을 삼았나니'는 문자적으로 '그들이  손에  두었다'이며, 하난이 위의 세 사람을 도와 고지기 직무를 수행하였다는 뜻이다(NIV,  made Hanan...their assistant). 한편, 위의 세 고지기가 각각 제사장, 서기관, 레위인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하난은 평민 출신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Edwin Yamauchi).


13:15 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식물을 팔기로 그 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그 때 -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에서 재 귀환한 직후일 것이다(Fensham).

   내가 본즉 - 느헤미야가 총독의 자격으로 민정(民情)을 살피는 것을 말한다.  특히 '본즉'(* 라아)은 세밀한 조사 관찰 행동을 묘사할 때 자주 사용되는 단어이다(창 6:12;22:13;왕하 7:13;대하 24:22).

   안식일에 술 틀을 밟고...식물을 팔기로 - 이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 계명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었다는 단적인 증거이다. 그들은 성벽 재건 직후 언약을 갱신 하면서 안식일 계명을 제대로 지키기로 결단한 바있다. 그들은 그때 자신들과 이방인을 분명히 구별케 해주는 안식일을 온전히 지킴으로써 종교적, 문화적 순수성 유지를 도모하려고 했었다(10:31). 그러나 그들은 이방인들과의 빈번한 경제적 접촉의 결과로 오히려 안식일 개명을 경시하는 두려운 상황에 도달하고 만 것이다. 아무튼 이같은 안식일 계명의 경시는 그 날에 소용되는 양식을 하나나님께서  채워주신다(출16:19-22)는 분명한 약속을 망각하고 또한 믿지 않은 결과였다.


한편 '술틀을 밟고'에 대해서는 포도주 제조 과정을 참조하라(사 63:2,3).

당시 포도즙을 짤 때에는 먼저 큰 통에 포도를 넣고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가  밟았다. 한 시간 정도 밟으면 질이 좋지 않은 포도는 맨 위로 떠올랐으며  그후  계속해서 30분 정도를 더 밟으면 향기 좋은 포도즙이 각 송이에서 흘러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 더 밟으면 신 포도까지 터져  전체  포도즙의  맛은  좋지  않게  된다고  한다(Burder).

   내가 경계하였고 - (NIV)Therefore I warned them against selling food on that day.


13:16 또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하며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유다 자손에게 예루살렘에서도 팔기로 


 15절에 이어 본 절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극적으로 안식일을 범했던 사실에 대해 다룬다. 한편 '두로 사람'은 고대 중근동뿐만 아니라 지중해 지역 전체에 그  명성을 날렸던 페니키아 상인들을 가리킨다(겔 27:12-36;28:16).

   예루살렘에 거하며 - 이방인들의 이 같은 행위 자체는 결코 불법이 아니었다. 다윗시대에도 여부스 사람이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다(대상 21:15). 뿐만 아니라 느헤미야 당시에도 유대인들과의 무역에 종사하는 많은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했었다.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안식일에...팔기로 - '물고기'는 이스라엘 백성에 의하여 매우 애호되던 식품이었다(레 11:9;민 11:5;신 14:9;마 14:17). '두로 사람'들은 이 '물고기'를 자신들이 살고 있던 지중해 연안에서 잡았거나 혹은 갈릴리 바다에서 다른 사람들이 잡은 것을 사와서 팔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물고기'는 '어문'을 통해서 예루살렘 안으로 반입됐을 것이다(3:3).


13:18 너희 열조가 이같이 행하지 아니 하였느냐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으로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이 모든 재앙으로 우리와 이성읍에 내리신 것 - 본절의 '이 성읍'은 단수라는 점에서 예루살렘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따라서 본 문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음로써 그 형벌로 수도 예루살렘이 완전히 훼파당하는 사태를 맞이했었던 사실을 가리킨다(렘 17:27). 그러나 간접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사건을 가리킴도 물론이다.


13:20 장사들과 각양 물건 파는 자들이 한두번 예루살렘성 밖에서 자므로

안식일이 지나자마자 상품을 들여와 팔기 위한 장삿속 때문이었다. 장사꾼들이 성밖에서 군거(群居)하며 떠들어대는 소리가 매우 요란했을 것이며 또 백성들이 성벽 아래의 물건들을 구경하기 위해 성문 혹은 성벽 쪽으로 몰려들어 혼란을 야기시켰을 것이다(Rawlinson).


13:22 내가 또 레위 사람들을 명하여 몸을 정결케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로 거룩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옵시고 주의 큰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


   레위 사람들...몸을 정결케 하고 - (1) '성문'을 지키는 일은 성전을 지키는 일과 불가분의 관계이며(대상 9:17-22;26:12-19), (2) 성문 파수가 안식일 준수를 목적으로 하는 종교적 성격이었다는 점 등에서 레위인들은 정결 의식을 거쳐야 했다.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로 거룩하게 하라 - 성문에는 이미 평민들과 느헤미야의 종자(19절)가 성문 파수를 위해 배치되어있었다. 그런데 다시 레위 사람까지 배치한 까닭은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를 보다 잘 아는 그들을 통해 성문 파수가 완전히이루어질 수 있게 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물론 레위 사람들은 성벽 파수의 직무를 부여받았었다. 그러나 그것은 성벽 파수의 감독 직무였을 뿐이다(7:1). 느헤미야는 금번에 그들을 감독의 자격이 아닌 직접적인 성문 파수 담당자로 발령한 것이다.

   나의 하나님...큰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 - 이것은 느헤미야가 비록 자신이 선한 일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칭찬을 받기에는 지극히 미흡하다고 느꼈다는 사실을 시사해준다. 따라서 이는 그의 겸손이 잘 드러나는 기도라고 할 수있다. 그 문자적 의미는 '나의 하나님 큰 사랑을 베푸시옵소서'이다. 한편, 여기의 '은혜'(*헤세드)는 신적인 언약에 근거한 불변적 사랑을 뜻한다.


13:23 그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았는데


'아스돗'은 블레셋의 일파로서 유다 땅 서쪽에 위치했었으며(4:7) '암몬과 모압'은 모두 유다 땅 동쪽에 위치했었다. 이들 모두 유다 땅과 인근 지역이었던 까닭에 쉽사리 이스라엘 백성들의 통혼(通婚)대상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13:24 그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통혼의 심각한 결과가 언급되고 있다. 이스라엘 남성과 결혼한 이방 여인들이 그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들에게 자신들의 모국어를 가르침으로써 야기된 현상이었다.

   아스돗 방언...유다 방언은 못하니 - 히브리어 원문상으로 해석이  애매한  부분으로서 이에 대한 논란이 많으나, 통혼한 이들의 자녀들 중 절반 가량은 유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이해하는것이 가장 무난하겠다


(NIV, Half of their children spoke the language of Ashdod or the language of one of the other peoples, and did not know how to speak the language of Judah).


13:28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내가 쫓아내어 나를 떠나게 하였느니라

(NIV) One of the sons of Joiada son of Eliashib the high priest was son-in-law to Sanballat the Horonite. And I drove him away from me.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 - 이것은 '엘리아십의 아들 요야다의 아들 중 하나'로 번역함이 더 타당하다(NIV)(12:10). 느헤미야가 산발랏의 사위가 된 '요야다'의 아들을 다만 '하나'라고 하여 이름을 밝히지 아니한 것이 특이하다. 이는  그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축출되어 그의 이름도 명부에서 도말됐기 때문인 듯하다. 따라서 느헤미야는 그 같은 이름을 이방인과의 통혼 문제를 다루고 있는 본 문맥에 기록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엘리아십'은

(1) 느헤미야가 귀환했던 B.C. 444년, 즉 13년 전에 이미 대제사장이었으며(3:1),

(2) 그의 손자가 결혼 적령기가 됐다는 점 등으로 볼 때 그 당시 꽤 연로한 상태였을 것이다. 그리고'요야다'는 '엘리아십'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에 올랐었을 것이다(12:10).


13:31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I also made provision for contributions of wood at designated times, and for the firstfruits.


‡provision [prəvíʒən] n.

U ① 예비, 준비, 설비(for; against).

② 공급, 지급; 지급량(量);(pl.) 양식, 식량; 저장품.


‡contribution [kɑ̀ntrəbjúːʃən / kɔ̀n-] n.

U,C ① 기부, 기부금, 의연금; 기증(품); 보급(물).

② 기여, 공헌(to; toward).


'나무'는 상번제 등에 계속적으로 소용됐던 화목(火木)을 가리킨다(10:34 또 우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들이 제비 뽑아 각기 종족대로 해마다 정한 기한에 나무를 우리 하나님의 전에 드려서 율법에 기록한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단에 사르게 하였고 ).

'처음 익은 것'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생계유지에 필요했던 여러 헌물 중의 대표적인 것이었다(10:35 해마다 우리 토지 소산의 맏물과 각종 과목의 첫 열매를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로 하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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