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성경해석

로마서 16장 해석

白鏡 2007. 6. 3. 21:16
 


16: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겐그레아 - '겐그레아'(Cenchreae)는 고린도에서 남동쪽으로 약 11Km 떨어진 항구 도시로서 당시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인 고린도의 중요한 교통의 요충지였다.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시 고린도에 도착하여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와 함께 고린도 교회를 세웠는데(행 18:1-18), 바로 이 고린도 교회로부터 복음이 그 주변의 여러 도시로 전파되었고 그 결과 세워진 교회 가운데  하나가 겐그레아 교회이다.

   교회의 일군 - 이는 헬라어 '디아코논 테스 여클레시아스'(*)로 번역되어 있는데 여기서 '디아코논'(*)은 '디아코노스'(*)의 여성 목적격으로 '교회에서 섬기는 자', '사역자'라는 의미이다(KJV, NIV). 그러나 '집사'라고 번역하기도 한다(RSV, JB, NEB).


* 초대 교회에서 '집사'라는 직분은 회중의 인정을 받아 교회의 기물이나 그 밖의 봉사를  관장하는 역할로서 대부분 남자들이 봉사하고 있었다(빌 1:1).

그러나 후에 여자들도 집사로 임명되었다(딤전 3:11). 바울이 '뵈뵈'라는 여집사를 로마 교회에 소개하는 것으로 보아 여자들이 집사로 봉사한 사실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벌써 알려져 있는 사실임을 볼 수 있다(Lenski).

당시 교회에서 여자 집사들은 심방과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일 그리고 병든

자와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것과 같은 남자들의 손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일들을 독립적으로 담당했었다(Godet).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서 겐그레아 교회는 어느 정도 교회 조직을 갖춘 교회로서 다른 교회보다 더 진보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뵈뵈 - '뵈뵈'(*포이벤)는 '밝다', '빛을 발하다'의  뜻으로  그녀는 바울이 로마 교회에 추천할 정도로  겐그레아  교회에서  믿음이  탁월한  사람이었다(Murray).

   천거하노니 - 바울은 뵈뵈를 로마 교회에 추천(推薦)하고 있다.

바울은 로마에 갈 계획을 세웠으나 곧바로 갈 처지가 안 되었기에(15:25) 다른 사람을 통해서 먼저 본 서신을 보내려고 하였다. 그러던 중 뵈뵈가 로마로 떠나려고 하였으므로 그녀 편에 본 서신을 전달하고자 하였다. 일반적으로 뵈뵈가 본 서신의 전달자라고 인정하는데 대부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Godet, Murray).

그녀가 본 서신의 전달자라는 사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으나 그녀에 대한 언급으로부터 추론해 보면 바울이 뵈뵈를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간곡히 추천한 사실과 뵈뵈가 로마에 도착한 시점에 로마서가 로마 교회에 전달된 사실을 통해서 볼 때 뵈뵈가 본 서신의 전달자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Lenski).


16:2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보호자 - 이는 헬라어로 '프로스타티스'(*)로 일반적으로 남성에게만 사용되는 단어이다. 즉 어떤 공동체의 합법적인 우두머리나 대변인을 뜻할 때 사

용되어졌다(Bauer). 당시 여인들은 법적인 기능을 행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본 절에서만 유일하게 여성형으로 사용된 이 단어는 어려울때나 위급할  때  도와주는 '후원자',  '구원자',  '조력자'(helper, NEB)라는 의미를 가진다. 헬라 문화권에서 후원자, 또는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사람은 대개 물질이 부유한 사람들이었다(Dunn).

여자의 경우에 있어서도 당시에 이러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가리킬 때 이 단어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바울은 그의 선교 사역에 경제적 도움을 준 뵈뵈의 따뜻한 배려에 관해서 그녀를 '보호자'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 사실로 보아 뵈뵈는 부자였고 사회적으로 유력한 여성임을 알 수 있다.


16:4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바울의 복음 사역을 조력(助力)함에 있어서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헌신이 어느 정도인지 잘  표현되어  있다.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로 번역된 헬라어 원문은 '톤 테아우톤 트라켈론 휘페데칸'(*)으로 '사형 집행자의 도끼 밑에 자기 목을 내어 놓다'라고 문자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그들이

핍박의 손길에서 바울의 생명을 구하고자 극단적인 위험을 겪었음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현이다(John Murray, Dunn). 이 사건이 고린도에서 일어났는지(행 23:12) 아니면 에베소나 그 밖의 지역에서 일어났는지 그리고 언제 일어났는지는  확실치  않다(Godet, Meyer).

아마도 이 사건은 에베소에서 데메드리오와 유대인들이 폭동(暴動)을 일으켜 바울의 목숨을 해하려고 할 때 바울의 생명을 구하려고 온갖 극단적인  위험을 무릅쓴 것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행 19:28-31;고전 16:8, 9, 19).

그러나 확실한 것은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바울이 고난 가운데 있을 때 그와 함께 죽을 각오로 생사 고락을 함께 하였다는 점이다(Meyer).

이처럼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자신의 복음 사역을 돕기 위하여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자신과 함께 한 것에 대하여 바울은 깊은 감사를 느끼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16:5 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


[표준새번역]롬 16:5

그리고 그들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에도 문안하여 주십시오. 나의 사랑하는

에베네도에게 문안하여 주십시오.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를 믿은 첫

열매입니다.


[NIV]롬 16:5

Greet also the church that meets at their house. Greet my dear friend Epenetus, who was the first convert to Christ in the province of Asia.


   저의 교회 - '저의 교회'(*텐 카트 오이콘 아우톤 여클레시안)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가정 교회를 말한 것으로 보인다(Meyer). 바울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독립된 교회 건물보다는 성도들의 가정집을 정규적인 회합(會合)의 장소로 사용한 것이 보편적이었으며(10, 11,14, 15절;고전 16:19;골 4:15) 몇 개의 가정 교회들이 모여 하나의 지역 교회를  이루었다(Dunn).


** 성경에 나오는 초대 교회에서 대표적인 가정 교회

1) 마가의 다락방(행 1:13),

2) 빌립보에 있는 루디아의 집 (행 16:40),

3) 골로새에 있는  빌레몬의  집(몬 1:2),

4) 라오디게아에 있는 눔바의 집(골 4:15)등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중심한 신앙과 참된 형제애로 이루어진 가정 교회는 초대 교회의 신앙과 생활상을 알려주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가 된다.

   에배네도(*에파이네토스) - 이것은 '칭찬을 받을 만한'이라는 뜻을 가진다. 그는 바울이 제3차 전도 여행 중 상업과 종교의  중심지인  에베소를 중심으로 아시아 지방에서 전도하는 과정에서 얻은 최초의 이방인 회심자로  여겨진다(Godet, Meyer, Dunn). 그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바울의 전도를 받아 회심한 자였다(Dunn). 그후 자연스럽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가정 교회에 속해 함께 일을  도우면서 에베소에서 로마까지 복음의 동역자로 함께 수고한 것으로 보인다(Godet).


16:6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마리아 - 헬라어는 '마리안'(*)으로 이름의 뜻은 '높여진 자'이다. 

어떤 사본에는 히브리어형인 '마리암'(*)으로 나온다. 이 이름은 로마에 있는 유대인 출신의 기독교인을 나타낸다(Robertson, Dunn).  신약성경

에는 마리아라는 동일한 이름을 가진 7명의 여인이  나온다. 

(1)  예수의  어머니(마 1:16;막 6:3;눅 1:41),

(2) 막달라 마리아(마 27:56;막 15:40;눅 8:2),

(3) 야고보의 어머니(마 27:56;막 15:40),

(4) 글로바의 아내(요  19:25), 

(5)  마르다의  동생(눅 10:39;요 11:1),

(6) 마가 요한의 어머니(행 12:12),

마지막으로 본절에 나타난  마리아이다.

그런데 신약성경에 나타난 이들은 한결같이 신앙이 훌륭한 여인들이었다.  본

절에 소개된 마리아에 대해서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이란 표현  이외에  자세한 언급을 하고 있지 않지만, 이 간단한 소개로도 우리는

(1) 그녀가 로마  교회  초창기(草創期)의 한 회원이라는 것과

(2) 로마 교회가 그녀의 수고와 헌신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사실과(Murray) (3) 뵈뵈나 브리스가와 아굴라처럼 활동적으로 바울의 사역에참여해 왔을 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사람처럼 바울의 배후에서 그의 선교 사역을 헌신

적으로 지원해왔음을 알 수 있다(Godet).


16:7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 '친척'에  해당하는  헬라어 '슁게네이스'(* )는 문자 그대로 친척을 의미하기보다는 9:3에서처럼 '골육'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어 동료 이스라엘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 같은  유대인이라도 누구에게든지 친척이라 부르지 않은 것을 보면 특별히 친척이라 호칭된 사람들은 바울과 보다 긴밀한 관련을 맺은 사람들이었음이 틀림없다(Lenski, Murray). 

또한 이들은 바울과 함께 옥에 갇힌 적도 있었다고 소개한다(고후  6:5;11:23).  여기서 '함께 갇혔던'으로 번역된 헬라어 '쉬나이크말로투스'(*)

는 직역하면 '전쟁에서 함께 포로된 자'란 뜻이다. 그들이 바울과 함께  언제  감옥에 갇혔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마 그들은 바울이 당한 여러 번의 투옥 사건 중 한 사건에서 함께 감옥에 갇혔을 것이다. 브루스(Bruce)는 그곳이 에베소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 본 구절이 의미하는 바는 이 두 사람(안드로니고와 유니고)이 그들의 믿음과 봉사로 인해서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의 인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복음사역을 돕는 사도들에게도 잘 알려졌을 정도로 특별히 다른 사람과 구별되었다는 것이다(Murray).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 두 사람이 사도들 가운데서 왜 높이 평가받고 있는지를 말해준다(Lenski). 그들은 기독교 역사 초기에서부터 일찍 회심(回心)하였기에 지도자로서 알려질 시간상의 여유가 충분히 있었다. 그들은 유대인으로서 예루살렘이나 그 주변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알려졌으며 또한 사도들의 무리와도 쉽게 연합될 수 있었을 것이다(Murray).


16-8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어떤 사본에서는 단축형 '암플리아스'(* )로 기록되기도 한 '암블리아'는 라틴식  이름  '암플리아투스'(Ampliatus)의 축소형이다(JB, NIV, RSV). 이 이름의 뜻은 '큰' 또는 '많은'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런 이름은 당시 로마에서는 흔했으며 특히 황제의 가문에 많이  사용되었다(Bruce).

초기 기독교 묘지나 카타콤의 비문에도 이런 이름이 발견된다.


바울은 암블리아에  대해 '내 사랑하는' 자라고 매우 다정한 수식어를 사용하여 특별히 개인적인 애정을  고백하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적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서로의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말해주는 것으로서 바울과 그의 사이에 그리스도인의 진실한 우정이 깃든 교제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관계가 '주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밝히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모든 아름다운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은혜

를 통해 한 형제가 되었다는 인식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16: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 - '우르바노'(*우르바노스)는  '세련된', '우아한'의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이름은  일반적으로  로마  노예의  이름이다(Godet, Hendriksen, Murray).

바울이 그를 가리켜 '우리의 동역자'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그가 과거에 바울을 도와 복음 사역에 동참하였고, 주의 일을 하는 다른 사람들도 도와주었음을 알 수 있다.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스타퀸) - 신약성경에는 그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없으나 '나의 사랑하는'이란 표현을 쓴 것을 보면 그도 역시 바울 사도와 개인적인 친분 관계가 있던 자로서 암블리아와 같이 바울의 사랑을 받은 로마의 성도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이름이 귀족의 비문(碑文)에 나타난 것을 볼 때 황제의 가족에 속한 자라고 여겨진다(Gifford).


16:10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벧레(*아펠렌)  -  '특색'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이름은 로마의 유대인들 사이에 흔한 이름이었으며 또한 황제 가문이나 로마인들 사이에도 종종 발견되는 이름이다. 그를 가리켜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는 자'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헬라어로는 '톤 도키몬 엔 크리스토'(* )로 여기서 '도키몬'(*)은 아벧레가 어떤 극심한 시련을 통해  신앙의  연단을  단단히  받았음을  시사한다(Lenski, Murray). 이것으로 보아 그가 자기에게 임한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은사를 받아 교회에서 많은 봉사를 할 수 있었고 그 결과 교회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리스도불로의 권속 - 아리스도불로는 헤롯 왕의 손자였으며,  아그립바(Agrippa)와 형제였다(Dunn). 당시 그는 로마에 오랫동안 살고 있었으며 또한 로마 황제 클라우디오의 친구요 추종자였으며(Josephus), 그 자신은 기독교인이 아니었다(Meyer). 그가 죽은 다음 그의 집안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다른 황제의 집안에 귀속(歸屬)되어 그들의 신분이 유지되었고 그의 집안의 노예들과 자유인은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Dunn). 혹자는 그들 가족 중의 일부가 기독교인이 된 것이라고  추론한다(Lightfoot).

즉 바울은 그의 권속들에게 문안 인사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아리스도불로 아래 있었던 노예들과 일꾼들이었을 것이다.


16:11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권속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헤로디온 - 바울은 7절에서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처럼 '헤로디온'도 자기의  '친척'이라고 부른다. '친척'에 해당하는 헬라어 '슁게네'(*             )는 7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바울의 가까운 '유대인 동료', '동족', '이스라엘 사람'을 뜻한다.  

헬로디온은 아리스도  불로의 권속처럼 헤롯의  가계에  속한  유대계  그리스도인일  것으로  추정된다(Lightfoot, Murray).


바울은 주로 이방인을 향한 선교 활동을 폈지만 항상 그의 동족  유대인들에

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동족 중 대부분이 현재는 비록 복음을  거절하고 있지만 장래에  하나님께서  그들도  구원하실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11:1-6).

   나깃수의 권속 중 주 안에 있는 자들 -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나깃수(*   나르킷수)를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나르킷수스(Tiberius   Claudius

Narcissus)라고 하였다(Calvin, Lenski, Bruce, Murray).

이 사람은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Tiberius)의 노예의 신분으로 있다가 해방된 자유민으로서 권모  술수(權謀術數)에 능한 부자였다고 한다(Gifford).

그는 클라우디우스(Claudius) 황제 치하에서 권력을 휘둘렀던 자로 A.D. 54년에 네로(Nero)가 즉위한  직후  네로의  모친  아그리피나(Agrippina)의 미움을 사서 그녀의 명령에 의하여 처형되었다고 한다(Lightfoot). 그의 죽음 후 그의 재산은 몰수되었고 그의 노예들은 황제의 소유로 예속 되었는데 황제 가문의 다른 노예와 구별하기 위하여 나깃수에게 속한 모든 노예들에게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처럼 '나르키시아니'(Narcissiani)라는 명칭을 붙였다(Bruce). 권모 술수에 능하고 극악 무도한 나깃수는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았지만 그 권속들 중의 일부와  노예와 가족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칼빈(Calvin)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은혜가  온갖 종류의 사악으로 들끓는 나깃수의 집에까지 들어간 것은 의미가 깊은  일이며  놀랍고 대단히 경이로운 일이다'라고 하였다. 이렇듯 바울 사도는 그  신분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갖고 기회있을 때마다 그들

에게 문안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16:12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NIV]롬 16:12

Greet Tryphena and Tryphosa, those women who work hard in the Lord. Greet my dear friend Persis, another woman who has worked very hard in the Lord.



 드루배나와 드루보사(*  트뤼파이난

카이 트뤼포산) - 이 두 이름의 뜻은 '화사하다' 혹은 '우아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이름은 동일한 어근 '트뤼파오'(*호화롭게 생활하다')에서 유래된 것으로

1) 아마 이들은 같은 자매였을 것이다(Godet, Dunn). 또한 쌍동이였을 가능성 이 크다(Robertson). 왜냐하면 당시 같은 어근에서 유래된 이름들은 쌍동이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2) 또한 그와 같은 이름은 귀족 계층에 어울리는 이름으로서 그들은 당시

귀족 집안의 사람들이었음에 틀림없다(Harrison).

3)바울은 그들을 '주 안에서 수고한'(*타스 코피오사스 엔 퀴리오) 자들이라고 칭찬하고 있는 바, 그들이 귀족적인 풍요로운 생활에서  안주(安住)하지 않고 열심으로 신앙 생활을 하며 헌신하였음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버시 - '버시'의 헬라어는 '페르시다'(*)로 

1) '페르시아  여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당시 외국인들은 흔히 그들 출신 지역을  따서  이름을 명명하곤 했다(Godet). 이러한 이름은 로마나 기타 다른 지역에서 헬라어나 라틴어로 쓰여진 묘비명에서 노예나, 자유인 여자의 이름으로 발견된다(Bruce).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이런 점을 참고하여

2) 그녀가 해방된 여종이란  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Dunn). 바울은 에배네도, 암블리아, 스다구에 대해서는 '나의 사랑하는'이란 말을 붙였으나, 여기서는 그냥 '사랑하는'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서 아마도 그녀가

3) 독신녀로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수고를 하였으므로 바울 뿐 아니라 모든 교회가  '사랑하는' 여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Harrison).

* 시제상 앞의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 대해서는 현재 시제를 사용했고 '버시'에 대해서는 과거 시제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의미상으로 큰 차이는 없지만 추측해 보건대 '버시'가 수고를 많이 한 것은 이미 지난 날 이었고 사도가 편지를 쓴 현재는 아마도 나이든 노령(老齡)의 여인이 되었을  것이다.

4) 따라서 그녀가 연령이나 허약함으로 인해 더 이상 과거처럼 활동적으로 일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기에 시제를 과거로 썼는지 모른다(Murray, Godet).


16: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루포 - '루포'의 헬라어는 '루폰'(*)으로 '붉다' 또는 '머리카락이 붉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이름은 로마나 희랍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1) 루포는 막 15:21에 언급되어 있는 루포와 동일 인물로서 골고다에서 예수의 십자가를 진 바 있는 구네레 사람 시몬의 아들이다(Harrison, Meyer). 마가는 주로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복음서를 기록하였는데 그가 구레네 시몬의 두 아들을 언급한 것은 로마 성도들이 그들을 알고 있었고 특히 루포는 저희 교인들 가운데 특별한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Lenski).

바울은 루포를 '택하심을 입은 자'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톤 에클레크톤'(*)은 

2) 보통  의미의  '택하신 자'라기 보다는 다른 성도들에 비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봉사와 충성이 뛰어나게 구별된 자임을 나타낸다(Meyer, Godet, Hodge, Murray).

이러한 맥락에서  일부  영역본은 '톤에클레크톤'을 '주님을 탁월하게 따르는 분'(NEB, RSV)으로 번역하였다. 또한 그는 그의 아버지 구레네 시몬이 겪은 십자가에서의 사건 때문에 로마의  성도들  사이에서 어떤 명성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Harrison).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 루포의 어머니가 문자 그대로 바울의 친 어머니가 아니라 바울이 한때 그녀의 모성애어린  돌봄을  받은  적이  있었던  것을  암시한다(Murray).

* 이 일이 언제 어디서 일어났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헤리슨(Harrison)은 추측하기를 수리아 안디옥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바울이 루포를 생각할  때면 반드시 그의 어머니에 대해서 회상할 만큼 그녀는 바울에게 특별한 존재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바울이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하여 자기 가족들을 떠난 후에(빌 3:8) 인간적으로 외로웠었는데 잠시 루포의 집에 유숙하는 동안 루포의 어머니가 그의 외로움을 알고 친아들처럼 그를 따뜻한 친절과 사랑으로 돌보아주었던 것 같다(Godet,  Moule).

따라서 그녀가 당시 로마에 있었다는 사실은 바울로 하여금 특별한 기대를 가지고 로마 방문을 고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바울은 루포의 어머니에게 특별한 친애(親愛)와 존경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16:14-15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저희와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 자매와 올름바와 저희와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 - 이들에 대해서는 단순히  이름만 오고 그들에 대한 칭찬이나 설명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사실은

1) 그들과 바울과의 유대 관계가 앞에 언급된 사람들과의 관계보다는 덜 강했음을 시사한다. 

2) 이들은 모두 남성으로서

3) 아마도 어떤 특수한 지역이나 직업에  종사하던  자들이었을  것이다(Murray). 이들의 이름을 통해서 공통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이들 모두가 노예나 혹은 노예에서 해방된 자들로

4)  노예 계급중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이라는  점이다(Dunn, Sanday).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 자매와 올름바와 저희와 함께 있는 모든 성도

- '빌롤로고'(*필롤로곤)는 황제 가문의 권속들 중에 특히 노예나 노예에서 자유롭게 된 자들의 헬라와 라틴 묘비명에서 발견된다(Lightfoot).

'율리아'(*율리안)는 로마 여성들의 가장 보편적인 이름으로 황제 가문의 노

예들 사이에도 매우 흔한 이름이었다(Lampe).

이들 둘은 한 부부이거나 오누이로서 황제 가문의 노예로 생각되어진다.

또한 '네레오'(*네레아)와 그 자매는  빌롤로고와 율리아의 아들과 딸일 가능성이 있다(Dunn). '올름바'(* 올륌판)는 올림피오도루스(Olympiodorus)의 약칭으로서 전로마 제국에 널려있는 흔한 이름이었다.

앞 절에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로마에서의 다른 가정 교회이다. 그러나 앞절과의 차이점은 본절에서는 '모든 성도'(*판타스 하기우스)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구성원에 남녀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 단체가 여러 단체들 가운데 가장 컸던 것으로 보인다(Lenski, Meyer). 이것으로  보아 이 도시에는 여러 구역의 가정 교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나오는 무리들도 로마의 여러 가정 교회 중 하나로서 정기적으로 한 곳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나누는 신앙 공동체를 형성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Liddon).


16:21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이 편지를 대서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나의 동역자 디모데 - 바울은 디모데를 다른 서신서에서도 자주 언급하고  있다(행 16:1;17:14, 15;고전 4:17;16:10;고후 1:19;빌 2:19;살전 3:2, 6).

1) 이와 같은  언급은  그가 사도 자신과 얼마나 가까운 동역자 중의 한 사람인가를  보여준다(빌  2:22;딤후1:2, Dunn).

디모데는 고린도 교회의 교인이 아니고 오히려 바울의 복음 전도 사역에

협력한 전도자이며 바울의 동역자로 수고하였다. 그는 경건한 가정에서 성장한 믿음의 아들로서(딤후 1:5;3:15)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시 마게도냐와 아가야  전도  여행에 동행하였고(행 17, 18장) 고린도 교회 내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을 도운 바  있다(고전 4:17;16:10). 또한 바울은 때때로 디모데를 서신의 공동 집필자(執筆者)로  대우하기도 하였다(고후 1:1;골 1:1;살전 1:1;살후 1:1).

2)바울이 여기서 디모데를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그의 동역자로 가장 먼저 소개하는 영광을 허락한 것은 그가 믿음의  아들로서 남다른 사랑을 받고 있었으며 사도와 함께 복음을 위해 헌신적으로 수고하였음을 암시한다.


   나의 친척 - 누기오, 야손, 소시바더 이들 세 사람을 바울은 '나의 친척'이라고 지칭하고 있는데 앞절에서(7, 11절)처럼 헬라어로 '슁게네이스'(*)를

사용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피를 나눈 친척을  의미하기보다는  '골육'(9:3)이라는 말로 한정되어 동족인 유대 민족을 지칭한다. 그러나 다 같은 유대인 성도라 하더라도 아무나 친척이라 부르지 않는 것을 보면 친척이라 호칭된 사람들은 남달리 바울과  보다 긴밀한 관계에 있었던 사람으로 보인다. 본장에서 바울이 '나의 친척'이라고  언급한 사람은 모두 여섯 명이다(7, 11, 21절).

   누기오 - 로마식 이름으로서 그를 보는 견해가 학자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1) 그를 '누가'와 동일인물로 보는 견해이다(A. Deissmann).

(2) 그를 누가와 다른 인물로 보는 견해이다(Lenski, Harrison, Dunn, Godet).

(3) 누기오가 누구인지 자세히 언급 되어 있지 않으므로 불확실한 인물로 보는 견해이다(Bruce).

여기서  (2)의  견해를 취함이 무난하다. 물론 누기오에 대한 더 이상의 자세한 언급이 없으므로  추측만으로 누구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문제이지만 누기오를 가리켜 바울이  '나의  친척'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그가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임에 분명하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 같은 견해를 지지하여 누기오가 안디옥 교회에서 선지자나 교사(敎師)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으로 '구레네인  누기오'(*루키오스 호 퀴레나이오스)로 알려진 자라고 말하고 있다(Hendriksen, Dunn, Godet).

또한 누가는 이방인 의사였으므로(골 4:14) ‘누기오’와는 구별되는 인물임이 분명하다.

   야손(*) - 이것은 헬라식 이름으로 바울이 제2차 전도 여행 중 데살로니가를 처음 방문했을 때 바울과 바울의 동행인들을 대접한 집 주인과 동일 인물일 것이다(행 17:5-7, 9 Liddon). 그러나 그는 구제 헌금을 전달하기 위해 예루살렘 교회로 가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대표자 명단 가운데 들어 있지는 않았다(행 20:4).

   소시바더(*소시파트로스) -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동일 인물일 것으로 추정된다(행 20:4, Meyer). 그는 당시 이방 교회들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해 연보한 구제 헌금을 전달하는 일을 맡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15:25-27;고후 8:18).


  이 편지를 대서하는 나 더디오 - '더디오'(*테르티오스)는 '셋째'를 의미하는 로마식 이름이다.

1) 그는 로마 독자들에게 알려진 인물로서 고린도에서 바울과 함께 있으면서 바울의 편지를 대필해 주었다(Meyer).

그는 신약성경 다른 곳에서는 언급되지 않다가 갑자기 여기서 제1인칭으로써 자기 자신이 직접 로마 교인들에게 문안하는 표현을 취함으로써 로마의 독자들을 놀라게 하지만 이것은

2) 바울의  권면으로 필기자 더디오 자신의 인사말을 직접 기록한 것일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3)'더디오'에 대한 바울의 특별한 호의와 동시에 그를 한낱 대필하는 기계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Dunn, Godet).

** 바울은 보통 서신의 끝부분을 제외하고는 서신을 남에게 대서시키는 것이 습관이었는데(고전 16:21;갈 6:11;골 4:18;살후 3:17) 대필자의 이름이 그의 서신에 직접 기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Meyer).


본서신의 대필자 더디오에 관해서 더 자세한 언급은 없어서 그에 대해서 더 이상 알 수는 없지만 짐작하건대 그는 필사에 능하여서 바울의 구술을 필기하는 일을 담당하였을 것이다.


16:23 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없음)


  교회 식주인 가이오 - 여기서 '가이오'(*가이오스)는 마게도니아의 가이오가 아니며(행 19:29), 더베 사람 가이오드(행 20:4), 요한 삼서에 언급되어  있는 가이오도(요삼 1:1) 아니다.

1) 본절의 '가이오'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행  18:7의  '디도 유스도'와 동일 인물일 것으로 추정하여 고린도에서 바울에게 세례를 받은 인물로  본다(고전 1:14, Godet, Meyer, Lenski, Bruce). 그러므로 가이오는

2) 바울의 고린도 전도 사역에서 첫번째 회심자 중 한 사람이었다(Dunn).

3) 그리고 그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겨울을 보내는 동안 머물러 있었던 집 주인이기도 하다.


* 본절에서 그를 가리켜 '온 교회 식주인(食主人)'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에게 당시 어느 정도 재산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며 또한 그의 집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집회 장소로 개방되었음을 암시하며 아울러 가이오의 집이 고린도를 방문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개방되고 있음을 말해 주기도 한다(J. Murray, Meyer, Godet).

여기서 '식주인'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크세노스'(*)로 처음에는 '객우'(客禹), '초청된 친구'라는  뜻이었다가  후에는 '나그네'(마 25:35), '외국인'(엡 2:19) 또는 본절과 같이 나그네나 다른 사람을 친절하게 환대하거나 영접하는 사람으로'집 주인'의 의미로 바뀌었다(Dunn). 특히  여기서

바울이 가이오를 자기가 머물렀던 집 주인으로 언급한 것은 이 서신을 겐그레아나 또는 마게도냐의 어떤 지역에서 쓴것이 아니라 고린도에서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뒷바침하고 있다(Harrison).

   에라스도 - '에라스도'(*에라스토스)는 고린도 시의  '재무관'으로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코노모스'(*)는 '극장  지배인',  '관리인'(눅 12;42)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여기서는 '도시의 재산 관리인'이라는 뜻으로 쓰여졌다.

이것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고린도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는 사실이다(Murray).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고린도교회가 사회적 저명 인사들을 포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본절에서의 에라스도가 다른  신약성경에서 언급되어 있는(행 19:22;딤후 4:20) 에라스도와 같은 인물이라는 근거는  없다(Bruce, Lenski, Murray, Harrison, Godet, Meyer). 당시 그 이름은 아주 흔한 이름이었다.

   형제 구아도 - 이의 헬라어 '쿠아르토스'(*)는 '네번째'라는  의미를 가진 로마식 이름이다. 바울은 그를 '형제'(*아델포스)라고 부르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에라스도나 더디오의 형제라기보다는 그리스도 안의 형제를 의미하는  것이다(1:13;고전  1:1;고후  1:1;갈  1:2;빌   1:12;골   1:1;살전   1:4;살후

1:3;Godet, Dunn).

구아도에 대해서는 본 절에 기술된 것 이외에 더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 어디에서도 그에 대한 기록이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한편 바울이 여기서 그를 언급한 것을 통해 그가 로마교인들과 관계를 갖고 있었던  사람으로서 로마교인들이 이미 그를 잘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Meyer).

이상과 같은 본절에 언급된 사람들은 모두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로서 특별히 고린도 시에서 영향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  1:26)라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었던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 예외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는 복음이 신분의 고하(高下)를 초월하여 역사한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마 24:14;28:19).


16:25-27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전부터

감취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공동번역]롬 16:25-27

하느님께서는 내가 전하는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을 통해서,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감추어 두셨던 그 심오한 진리를 나타내 보여주심으로써

여러분의 믿음을 굳세게 해주십니다.

그 진리는 이제 예언자들의 글에서 명백하게 드러났고 영원하신 하느님의

명령을 따라 모든 이방인들에게 알려져 그들도 믿고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NIV]롬 16:25

Now to him who is able to establish you by my gospel and the proclamation of Jesus Christ, according to the revelation of the mystery hidden for long ages past, but now revealed and made known through the prophetic writings by the command of the eternal God, so that all nations might believe and obey him--

to the only wise God be glory forever through Jesus Christ! Amen.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 - '나의  복음'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카타 토 유앙겔리온 무'(*)로 복음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이 믿고 있고 전파하고 있는 메시지를 가리킨다(2:16;딤후 2:8). 일반적으로 바울의 복음은 모든 기독교적 선교사역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구속  사건을  선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전 15:1-3, Dunn).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토 케뤼그마 예수 크리스투' (* )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선포된 말씀'(현대인의 성경)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여기서 '선포된  말씀'을 가르키는 '케뤼그마'(*)는 '나의 복음'과 같은 뜻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긴세월 동안에 걸쳐 숨겨져 있었던 것이지만 이제는 확실하게 역사상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 곧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Dunn).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 이것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크로노이스  아이오니오이스 세시게메누'로 직역하면 '오랜 세월 동안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비밀의  내용은  일반적으로 다음 두가지이다.

(1)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구원을 말하는 것이다.

(2) 이 구원이 이방에 전파되어져서(갈1:16) 이방인들이 믿음을 통하여 유대인 신자들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한몸이 된 것을 말한다(Godet).

여기서는 문맥상 (1)번의 뜻을 담고 있다. 

그리고 '영세 전부터'는 '천지 창조 이전부터'(딤후 1:9;딛 1:2)라는  의미로서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시간의 진전에 따라 수정, 발전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근원을 창조 이전에 이미 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이 영원한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을 통해서 드러났고 또한 성령에 의해서 충분히 계시되어졌다(고전 2:7-12, Godet).

'감취었다가'(*뮈스테리우)란 말은 구체적으로 '창조로부터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시대'를  두고한  말이다(히 1:1). 그 여러 시대에 걸쳐 '선포된 말씀'(*케뤼그마)은 베일에 가려진 상태에서 여러 모양과 여러 형식을 통해 점진적으로 계시되어 오다가 마침내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비로소 온전히 계시된 것이다(1:2;엡 3:3-5;골 1:26-28).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 이는 율법에서 복음으로, 옛 시대(old aeon)에서 새 시대(new aeon)로, 즉 하나님의 경륜의 비밀함이 감추어져 있던 데서(25절) 이제 온전히 드러나게 된 역사의 전환점을 선언하는 중요한 표현인 것이다. 그리고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는 '베일에 가리웠던 것이 베일을 벗김으로써 나타나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또는 '그늘에 있던 것이 밝은 햇빛에 의해 드러났다'는 말로서 영세 전부터  감추어진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이 밝히 드러난 복음의 역사적 확실성을 명시한 말씀이다. 따라서  사도가

전하는 복음은 이제는 감취어진 것이 아니다. 즉 더이상 비밀이 아닌  것으로  역사의 한 가운데 모두가 보고 들을 수 있도록 나타난 것이다. 구약시대부터 점진적으로 계시되어 오던 것이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명백하게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을 사도는 다시 한 번 천명(闡明)한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해하는 데  이것만

큼 중요한 사실이 없기 때문이다(Murray).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디아 테 그라폰 프로페티콘'(* )으로 '성경의 예언서들로 말미암아'라는 의미이다. 문자 그대로 이것은 '구약성경의 예언서'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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