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성경해석

로마서 3장21절 - 5장21절(칭의) 해석

白鏡 2007. 2. 3. 08:27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표준새번역]롬 3: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한 것입니다.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 바울은 지금까지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사람이 없다(20절)고 주장했으며, 또한 율법 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21절) 주장하면서 믿음의 법(27절)을 율법과 배치되는 원리로 설명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직접 주신 그 율법이 아무 쓸모없다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으며, 구약성경의 하나님과 현재 바울이 주장하는 하나님 간의 단절이 생각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단절의 반론을 잠재우기 위해 바울은 신약과 율법이 서로 배치(背馳)되지 않음을 피력하고 있다.

실제로 초대 교회 시대에 마르시온(Marcion)뿐 아니라 영지주의자들(Gnostics)은 구약성경의 하나님을 저급한 신(Ialdaboath)으로 취급하면서 구약성경 자체를 무시했다.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 이 말은 '도리어 율법을 굳게 지킨다'란  의미이다. 어떻게 해서 율법을 굳게 지킬 수 있는가 ? 이에 대한 대답은 이신 칭의에서 나온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받았으나 율법을 굳게 지킬 수 없었다. 다시 말해  유대인들은 율법의 원리에 따라 살지 못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율법과 선지자들에 의해 증거된 하나님의 의를 믿는 사람은 그 의를  받게 되어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된다.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구약성경에 증거된  율법의  원리대로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원리에 따라 사는 것은 율법의 증거를  더욱  확실하게 보증하며 율법이 지향하는 목적을 남김없이 성취하는 것이다.

 

4: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NIV]롬 4:4

Now when a man works, his wages are not credited to him as a gift, but as an obligation.


[현대인의성경]롬 4:4

일해서 받는 삯은 정당한 대가이지 선물로 거저 받는 것이 아닙니다.


4: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NIV]롬 4:5

However, to the man who does not work but trusts God who justifies the wicked, his faith is credited as righteousness.


[표준새번역]롬 4:5

그러나 경건하지 못한 사람을 의롭게 하여 주시는 분을 믿는 사람은, 비록 아무

공로가 없어도, 그 믿음이 의로움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4:10 그런즉 이를 어떻게 여기셨느뇨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니라


[현대인의성경]롬 4:10

그러면 언제 아브라함의 믿음이 인정을 받았습니까? 할례를 받은 후입니까,

받기 전입니까? 그것은 할례를 받은 후가 아니라 받기 전이었습니다.



4: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표준새번역]롬 4:13

아브라함이나 그 자손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 곧 그들이 세상을 물려받을

상속자가 되리라는 것은, 율법으로 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은 의로 된

것입니다.


[NIV]롬 4:13

It was not through law that Abraham and his offspring received the promise that he would be heir of the world, but through the righteousness that comes by faith.


heir [ɛər] n. (fem. heiress [ɛ́əris])

① 상속인, 법정 상속인.


4: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현대인의성경]롬 4:15

율법은 아무리 잘 지키려고 해도 어기기 마련이며 그 결과로 하나님의 노여움만

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이 없으면 자연히 어기는 일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4:16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표준새번역]롬 4:16

이런 까닭에, 이 약속은 믿음에 근거한 것 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은혜로 주시려는 것이며, 이 약속을 그 모든 자손에게도, 곧 율법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지닌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도

보장하시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4: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본절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사건을 성도에게 적용시키면서 반대되는 의미를 지닌 두 구절을 대조시키고 있다.

즉 '우리 범죄함'과 '우리를 의롭다하심'이 대조되어 있고,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와 '위하여 살아나셨으니라'가 대조되어 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내어 줌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 죄를 위한 대속적(代贖的)인 죽음을 의미하며, 우리를 위하여 살아나심은 대속의 결과인 '의'를 보증하고 선포하시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이 바울은 24절에서 믿음의 내용으로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것에 대하여 언급했던 것을 성도들에게 다시 적용시키는 논리의 순서를 밝고 있다.

한편 바울이 예수의 대속적 죽으심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은 것은 사 53:1-9과 같이 구약 시대에서 메시야의 고난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어 유대인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사건이 논리적으로 설명되고 증명되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사건에 대해 구약 성경을 인용하면서까지 굳이 증명을 시도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내용이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비밀을 밝혀내는 것이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을 위해 더 유익한 것으로 판단되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5장에서 8장까지 줄곧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성도들에게 어떤 의의를 갖게 되는지에 대해서 진술하게 되었다.


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 '환난'으로 번역된 헬라어 '들마세신' 은 동사 '들리보'의 여성 명사형이다. 원래 '들리보'는 포도즙 틀에서 포도즙을 짜내듯이 피와 땀과 눈물과 고통을 '짜낸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즐거워하나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우코메다'는 동사 '카우카오마이'의 1인칭 복수 현재형으로 '기뻐 날뛰다', '의기양양해하다', 또는 '자랑하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바울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가게 된 즐거움이 복음으로 인해 받게 되는 핍박과 환난보다 훨씬 큼을 강조하고  있다.

성도가 괴로움과 슬픔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환난을 극복하며 오히려 즐거움 가운데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세상의 즐거움과 고통은 잠깐 피었다 사라지는 안개처럼 가변적(可變的)이요 일시적인 반면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는 즐거움과 기쁨은 불변하며 영원하기 때문이다(고후 4:18). 더더욱 성도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바 영원한 세계에 대한 소망이 지대하고 극명하기 때문에(요 14:1-3) 현재의 모든 고난을 즐거움 가운데 상쇄(相殺)시킬 수 있다.

   환난은 인내를 - 복음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필연적으로 환난이 닥쳐오며 인내가 요구된다(마13:20-22). '인내'로 번역된 헬라어  '휘포모네'는 동사

'휘포메노'에서 유래한 여성 명사이다. '휘포메노'에는 '최후까지 남는다',

'참는다', '계속하다', '기다린다'는 의미가 있다. 성도들이 이 땅에서 그리스

도를 위해서 살 때 극심한 핍박과 고난이 임하나 이 모든 환난에서  성령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참고 견디며 끝까지 살아 남을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성도의 인내는 성령의 사역의 결과로 주어지는 수동적 의미만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성품과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의미까지 함축한다(W. Hendriksen).

   인내는 연단을 - '연단'(鍊鍛)에 해당하는 헬라어 '도키메'는 '증명하다',

'시련을 주다', '시험하다', '분별하다', '택하다' 등의 의미를 가진 동사 '도

키마조'에서 유래한 여성 명사로서 '연단' 외에 '인격', '증거', '문서', '자격'등의 의미를 지니며, 일반적으로 '엄격한 시험 또는 혹독한 시련을 통과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용광로에서 금이 여러번 단련됨으로써 정금과 순금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성도는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참고 견딤으로써 그 자신이 정화된다. 여기에는 성령의 사역이 함께하며 이 믿음의 시련을 통과한 성도는 금보다 더 귀한  신앙인으로  증명된다(벧전1:7). 

혹자는  '도키메'를  '체험'으로  번역한다(Calvin). 즉 그는 본 절의 '도키메'를 '하나님의 확실한 보호하심에 대한 체험'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도의 삶에 있어서 환난을 당하고 그 가운데서 인내하는 이 모든 과정들이 체험이므로 본절에서는 이와 같은 포괄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바울은 신앙에서 소망의 문제로 접근했다. 신약성경에서 성도의 소망은 일반적으로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하지만 보다 구체적으로는 '부활의 소망'을 의미한다(행 28:20). 바울은 죽은 자가 다시 사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 성도의 신앙도 헛되다고 가르쳤다(고전 15:12-16). 이 말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임을 보여 주고 있다. 한편 본 절의 '이루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테르가제타이'는  '만들어내다', '행하다', '준비하다', '정복하다', '성취하다'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본 절에서는 어떤 사건에서 어떤 결과를 '산출해 낸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성도는 불 시험과 같은 연단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을 받으며 이러한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부활에 대한 소망이 구체화되고, 그 소망만을 붙잡게 된다.

또한 본 절의 '앎이로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도테스'는 '오이다'의 주격

남성 복수 분사이며, '오이다'는 '에이도'의 제 2 완료 분사이다. '에이도'는

'기노스코'가 주로 육적(肉的)인 앎을 의미하는데 반해 영적 체험을 통해 얻어지는 지식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에이도테스'는 분사 형태이므로 체험을 통해 획득한 영적 지식이 부단히 계속됨을 의미한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는 소망이 물리적 지식이 아니라 부단한 영적 지식을 통해 성도의 삶 속에 확고하게 자리잡게 됨을 시사하고 있다.


 

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NIV]롬 5:5

And hope does not disappoint us, because God has poured out his love into our

hearts by the Holy Spirit, whom he has given us.


[표준새번역]롬 5:5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현대인의성경]롬 5:9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으니 틀림없이 그분을 통해

하나님의 무서운 형벌에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NIV]롬 5:9

Since we have now been justified by his blood, how much more shall we be saved from God's wrath through him!

본 절은 6절과 8절 내용의 연속이나 좀 더 자세하고 진일보한 면을 갖는다. 즉 6절에서는 '우리가 연약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고 하셨고 8절에서는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하였다. 이제 본 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주신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면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운'()은 주로 '그런즉' 또는  '그러므로'라

고 개역 성경에 번역되었다(1절;4:9, 10, 16, 22). 본 절에서는 앞 절의 설명과  연결짓기 위해 유도된 접속사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 4:25에서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칭의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나 본 절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대속(代贖)에 대한 설명이다. 즉 4:25은 부활을 통해 '생명을 주는 영'이 되신 그리스도가  칭의의  근원이라는 진술이며, 본 절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으심이 칭의의 근거라는 진술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 피를 인하여'라는 표현에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 문구는 헬라어로 '엔 토 하이마티 아우투'()이며 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그의 피 안에서'이다. 여기서 바울이 전치사 '디아'()를  사용하지  않고 '엔'()을 사용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디아'는 '....을  통하여'(throught)라는 방법, 수단의 의미를 지니나 '엔'은 '어떤 사물이나 사람의 상태, 조건'을 나타내는 포괄적 의미를 갖는다. 특히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엔 크리스토), '주 안에서'(엔 퀴리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엔 크리스토 예수)등의 독특한 표현을 사용할 때 '엔'을 썼다.

한편 본 절의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은 1절의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이라는 표현과 비교가 된다. 두 구절은 상호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즉 1절에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음에 있어 인간 편의 책임과 의무로서의 믿음이 강조되었고 본절에서는 의인(義認)의 근거로서의 하나님의 대속적 피흘림이 강조된 것이다.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인한 진노하심에서의 구원이 칭의를 위한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여기서의 '칭의'는 재판관에 의해 무죄 선고를 받아 벌을 면하게 되는 법정적인 차원의 '의'라고 단정지을 수 있다. 따라서 본 절에서는 그리스도가 죄인 된 인간과 진노하시는 하나님 사이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는 '화목 제물'(propitiation)이 되셨다는 의미가 강하게 부각되고 있다. 한편 '더욱'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폴로 말론'()으로서 비교법 강조의 의미를 지닌다. 즉 본 절에서 '폴로 말론'은 단순히 '더욱'이란 의미가 아니라

'훨씬 더', '더욱더'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피흘림이 칭의보다 더 확실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있다는 뜻이다.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공동번역]롬 5: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던 때에도 그 아들의 죽음으로 하느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하물며 그분과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에 와서 우리가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NKJV]롬 5:10

For if when we were enemies we were reconciled to God through the death of His Son, much more, having been reconciled, we shall be saved by His life.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칭의’를 받았다. 즉 의롭다함을 입음으로서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에 들어갈 수 있는 은혜를 받았다.

바울이 이처럼 화목을  강조하는 것은 '화목' 자체가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바울이 고후 5:18에서 언급하기를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화목케하는 직책'을 주셨다고 할 때에 이 직책이란 물론 죄악된 세상과 하나님을 화목케 하는 제사장적 직분(벧전 2:9)이지만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선전하는 직책'이다.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  상반 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화목에 대하여 진술한 반면 본 구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구원에 대하여 진술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죽음보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죄인 된 인간의 구원과 화목에 있어 더욱 확실한 보증이 됨을 역설하고 있다. 그 이유는

(1) 그의 부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를 따르는 무리에게 부활을 확증시켜 주셨으며

(2) 그의 부활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조에)이 그를  믿는 성도들에게 공급되므로 성도는 그 생명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고 하나님의  후사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바울은 고전 15장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보다 부활을 더욱 강조하게 된 것이다.


한편 본 절의 '화목된'과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각각 '카탈라겐테스'(*)와  '소데소메다'(*)이며 이 둘은 모두 1인칭 복수 수동태이다.

이는 하나님과 죄인 된 인간과의 화목을 이루는 주체가 하나님이시며 또한 구원을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드러낸다.

칭의화목 그리고 구원은 인간의 공로나 업적과는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은 것이다(3:25-28).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이러므로 - 이는 헬라어 '디아 투토'(*)의 번역으로 본 절에서 이 접속사의 사용은 매우 부자연스럽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진술과 본 절부터 진술될 내용은 직접적으로 어떤 상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디아 투토'를 별 의미 없이 다른 주제로 전환하기 위해 사용된 단순 접속사로 이해해야 한다. 이는 히브리식 문장 전개 방법임을 이미 2:1의 주석에서 설명한 바 있다.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현대인의성경]롬 5: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아담으로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아담이 지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까지 지배하였습니다. 아담은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습니다.


[NIV]롬 5:14

Nevertheless, death reigned from the time of Adam to the time of Moses, even over those who did not sin by breaking a command, as did Adam, who was a pattern of the one to come.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 이렇게 아담을 그리스도의 표상(表象)이라고  일컫는 것은 이상하게 생각될 수 있다. 두 사람은 신분이나 인류에게 미친 영향 면에서 판이하게 다르기 대문이다. 그러면 아담이 그리스도의 표상이 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

(1) 아담이 옛 시대의 시조인 것처럼 그리스도는 새 시대의 시조이다.

(2) 아담의 범죄가 모든 사람에게 미치듯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義)도 모든 사람에게 미친다(고전15:22;고후 5:14, 15). 즉 아담이 범죄의 시조라면 그리스도는 의의  시조이시다. 이 두 가지 의미에서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형'(튀포스)이 될 수 있다  (type, RSV)


5:15 그러나 이 은사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현대인의성경]롬 5:15

그러나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은 아담이 지은 죄와 같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담 한 사람이 지은 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선물은 더 많은 사람에게 넘쳤기 때문입니다.


[NIV]롬 5:15

But the gift is not like the trespass. For if the many died by the trespass of the one man, how much more did God's grace and the gift that came by the grace of the one man, Jesus Christ, overflow to the many!



   그러나(알라) - 이는 앞에서 말한 내용과 반대되는 뜻의 내용이 전개될

것임을 암시한다. 앞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와 아담의 유사점을 말하였으나  본절에서는 그리스도와 아담의 차이점을 말하고자 한다.

   이 은사 - 이는 언급된 사실과 관계있는 것이 아니라 본 절에 언급된
'은혜'와 관계된다.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 '그 범죄'라 함은 '아담의 범죄'와 '아담의 범죄 외의 다른 범죄', 즉 '모든 범죄'를 지칭할 수 있다. 그러나 본 절 하반 절은 아담의 범죄와 그리스도의 은혜를 비교하고 있으므로 대표적으로 '아담의 범죄'라고 해석하는 편이 타당하다. 그리고 헬라어 본문에서 '범죄'(파랖토마)가 단수형이라는 사실도 이 견해를 지지한다.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의 은사'(카리스마)와 아담에서 비롯된 '인간의 보편적인 범죄'를 대조시키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부각시키는 논리를 전개시키고 있다.


* 카리스마 [charisma] 본래는 그리스도교적 용어로 '은혜', '무상의 선물'이라는 뜻으로서

신약성서에서는 어떤 특정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는데, '다시 거두어 가지 않는' 하느님의 선물 전체를 뜻하기도 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에게 거저 베푸는 '은총의 선물'을 뜻하기도 한다. 이 단어가 특정한 의미를 지니고 사용된 것은 온갖 종류의 '무상의 선물'을 베풀면서 활동하는 성령의 현존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한 때부터이다. 즉 성령의 특별한 은혜이다.

그리스도교
에서는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개별적으로 받게 되는 소명(召命) 또한 여기에 기인한다. 모든 신자들은 각자 자기 나름의 카리스마를 받아 단일하고 다양한 '하느님의 은총의 관리자'로서 생활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M.베버는 이 말의 원뜻을 확대하여 사회과학의 개념으로 확립시켰다. 즉, 보통의 인간과는 다른 초자연적·초인간적 재능이나 힘을 이렇게 불러 그 말에 대한 절대적 신앙을 근거로 맺어지는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카리스마적 지배라고 이름하여 지배형태의 하나로 만들었다. 그것은 법률에 따른 지배(합법적 지배)나 관습에 따른 지배(전통적 지배)와는 달리 어디까지나 카리스마의 소유자에 대한 개인적인 절대적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한 사람의...죽었은즉 - 12절에서 바울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와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고 했으나 본 절에서는 '모든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두 용어 사이에는 의미상 아무런 차이가  없다.

대표 단수를 사용하든지 단순히 복수를 사용하든지 헬라어 문법에서는 '모든'을  의미할 수 있다.


5: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본 절에서 바울은 범죄와 은혜의 기원(起原)과 그 위력(威力)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즉 범죄는 한 사람에서부터 시작되었으나 은혜는 사망이 왕노릇하는 데서 또는 범죄가 만연되어 있는 데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은혜'의 기원과 위력이 '범죄'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선물(도레마) - 이는 15절에서 언급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을 가리킨다. 15절에서  '은사'(카리스마)가 '범죄'(파랖토마)와 비교되었고 본 절에서는 '은사'가 '심판'(크리마)과 비교되었다. 은사는 값없이 주는 용서이며 심판은 엄격한 공의로서 모두 하나님이 주체이시다. 만일 하나님께서 공의로 심판하신다면 우리는 모두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고 값없이 우리를 의롭다 하셨다. 본 절은 바로 이 칭의의 선물이 심판의 효능보다 우월함을 선언하고 있다.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 '의롭다 하심'(디카이오마), 곧 칭의(稱義)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피 흘려 죽게 하심으로 죄인들을 사면해 주시고 의로운 자들이라 칭하신 것으로서 이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주신 선물이요 은사이다. 따라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죄와 사망의 세력 아래 놓인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원수된 상태에서 회복되어 구원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NKJV]롬 5:18

Therefore, as through one man's offense judgment came to all men, resulting in condemnation, even so through one Man's righteous act the free gift came to all men, resulting in justification of life.


[NIV]롬 5:18

Consequently, just as the result of one trespass was condemnation for all men, so also the result of one act of righteousness was justification that brings life for all men.


   한 범죄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 헤노스 파랖토마토스'(*)는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즉 한글 개역 성경과 같이 '한 범죄'로 해석하거나 영역 성경이나(the offence of one, KJV;one man's trespass, RSV) 독일어 성경처럼(eines Sunde, Luther Bible) '한 사람의 범죄'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어느 경우를 취하든지 전후 문맥상의 의미에 있어서 별다른 차이를 초래하지 않으나 후자의 해석이 지배적이다. 헬라어사본들 중의 가장 유력한 사본들 중 하나인 알렙 본(*)을 위시하여 고대 라틴어 사본들은 본문의  '헤노스'  다음에   '안드로포스' ( '사람')을 첨가하고 있으며 많은 역본들이 이를 따르고 있다. 그리고 15-17절에 '한 사람'이란 표현이 일관되게 반복 사용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서도 '한 사람'이 원문에 충실한 듯하다. 아무튼 본 문구는 '한 사람 아담의 범죄'를 가리키는 것이다.


5: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현대인의성경]롬 5:20

율법이 들어와서 범죄가 늘어나게 되었으나 죄가 늘어난 곳에는 은혜도 더욱

풍성하였습니다. 


[KJV]롬 5:20

Moreover the law entered, that the offence might abound. But where sin abounded, grace did much more abound:


[NIV]롬 5:20

The law was added so that the trespass might increase. But where sin increased, grace increased all the more,


   헬라어 성경 본문에는 본 절 초두에 '데'(*)가 언급되고 있으나 한글 개역  성경은 이 접속사를 번역하지 않았다. KJV는 이를 '더욱이'(Moreover)로, Modern Language Bible은 '그러나'(But)로 번역하고 있다. 아무튼 '데'는 본절에서 새로운 개념, 곧 '율법'에 관해 이야기를 하려고 유도된 것이다.

   율법이 가입한 것은 - 본 구절은 인간에게 모세 율법이 부여되었음을 말하나 이는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이 최초로 사람들에게 주어진 법이 아니라 그 이전에 법이 선재(先在)함을 나타낸다.

이는 '가입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레이셀덴'(*)이 단지 '들어왔다'라기 보다는 '곁에 들어오다'(came  in  beside, Green), '미끄러져 들어오다'(slipped in, Modern Language Bible)를  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세 이전 아브라함이나 야곱 등과 같은 족장들은 그들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믿음의 길을 걸었고 모세 시대에는 성문화된 율법이 부여된 것이다.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 이 말은 율법이 세상에 들어옴으로써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죄를 짓도록 동기를 유발시켰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죄를 증가시켰다는 말이 된다.

헨드릭슨(Hendriksen)은 본 구절을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즉 "이것은 하나님께서 죄를 증가하게 만들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완전하신 사랑의 요구에 비추어 보아(마 22:37-40;막 12:29-31;눅 10:27) 인간으로 하여금 죄의식에 예민해지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었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