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1-3장 구문해석>
<제1차 수정 및/혹은 첨가 : 2006년 9월 27일>
디모데, References 편
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실루아노 - 실루아노(Siluanus)는 '실라'(Silas)의 로마식 표기이다. 실라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유대인으로서(행 16:20, 37) 주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신실한 그리스도의 일꾼이었으며 예루살렘 내에 있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높이 존경을 받았다(행 15:22,32).
그리고 바울과 함께 전도 여행을 하면서 빌립보에서는 혹독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으며(행 16:23-25), 데살로니가에서는 교회 설립에 지대한 공헌(貢獻)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바울과 함께 성난 폭도들에게 쫓기어 도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기도 하였다(행 17:5).
디모데 -
1) 헬라 사람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사람이다.
2) 그는 어릴 때에 할례를 받지 아니하였다. 그 의식은 바울이 함께 다니기를 원했을 때 행해졌다(행16:1-3).
3) 그의 외조모나 어머니는 경건하였으며 (딤후1:5) 그래서 어릴 때부터 성경을 배웠다(딤후3:14 이하).
4) 그의 성격은 다소 소심한 데가 있었던 것 같다.
5) 디모데는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회심한 자로서 바울이 '믿음 안에서 참 아들'(딤전 1:2)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깊이 사랑하였던 자 이다.
바울은 전도 여행을 할 때마다 그를 데리고 다녔고 선교지로 보내기도 하였다 (행19:22고전4:!7;빌2:19). 또한 여러 서신의 인사에서 디모데도 자리를 같이 하고 있다(고린도후서) 그는 바울이 제 2차 전도 여행 중 루스드라를 다시 방문하였을 때 복음 사역에 동참하였으며, 바울과 실라가 폭도들에게 쫓기어 데살로니가를 떠났을 때에도 그곳에 계속 남아 복음을 전하였다. 폭도들을 피한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약 400km 정도 떨어진 아덴에 이르렀을 때(행17:15) 디모데는 그에게 달려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당면한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보고하였고 이를 들은 바울은 다시 그곳으로 디모데를 보내어 계속 목회 사역을 하게 하였다.
그리고 바울은 아덴에서 고린도로 가서 일년 육개월을 유하며 주의 복음을 전하였는데(행 18:1-4, 11), 이때 디모데는 다시 고린도로 바울을 찾아가 데살로니가 교회가 짧은 역사에 비해 신앙생활에 모범을 보이며 박해를 받는 가운데서도 꿋꿋하게 믿음을 지켜나간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인들 사이에 종말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만연함으로써 신앙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였다. 이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더욱 열성적으로 신앙 생활을 할수 있도록 격려하고, 동시에 재림과 종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그들이 보다 건전한 신앙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배려(配慮)하는 입장에서 본 서신을 기록하였다.
1:2-4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We always thank God for all of you, mentioning you in our prayers.
We continually remember before our God and Father your work
produced by faith, your labor prompted by love, and your endurance
inspired by hope in our Lord Jesus Christ.
For we know, brothers loved by God, that he has chosen you,
이 절들의 구조를 살펴보면
2절에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함을
3절에서는 감사의 구체적인 원인을
그리고 4절에서는 그러한 감사의 궁극적인 동기를 말하고 있다.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 '너희 무리를 인하여' (*페리 판톤 휘몬)란 말은 '너희 모든 무리로 인하여'(for all of you, NIV)란 말로 번역할 수 있다. 이 말 속에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 중 어느 누구라도 제외시키지 않으려는 사도 바울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비록 복음의 역사는 짧으나 성도들이 복음에 근거한 바른 신앙을 소유하여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가운데 날마다 성장하고 있었다. 바울은 이처럼 성장하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 바울은 '말함' (*므네이안 포이우메노이)이란 말을 오직 기도와 관련된 부분에서만 사용하고 있는바(롬 1:9;몬 1:4), 이는 자신이 세운 교회의 성장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복음 위에 바로 서서 신앙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드렸음을 의미한다(L. Thomas).
(롬1:9)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mention, or remember로 번역)
(몬1:4)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mention, or remember로 번역)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 -
바울은 3절에서 믿음, 사랑, 소망에 대해 언급하면서 본 편지에서는 이 세 가지로 인해 생겨난 각 각의 결과를 칭찬하고 있다.
즉 믿음의 결과로 생겨난(produced) 역사(役事)(work)와 사랑으로 유발된(provoked) 수고(labor)와 소망으로 고취된(inspired) 인내(endurance)인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 본절은 2절에 나오는 바울의 중보기도의 때를 말해준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에 대한 기억이 매우 자주 떠올랐던 까닭에 '쉬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특히 바울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그의 기도가 신실함을 나타내준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어떤 자들은 자신들을 대하는 바울의 동기(動機)에 대해 의심을 품었던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바울은 본 서신의 서두에서부터 그러한 의혹을 일소하고자 한다(2:5,10;3:9, Thomas).
위의 절들을 보다 쉽게 우리말에 맞게 풀어쓰자면
“우리는 너희 모든 무리로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
우리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위하여 중보기도 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役事)와 사랑의 수고(受苦)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며,
너희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로서 하나님께서 너희를 택하셨음 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1장5절에서부터 2장16절까지는 바울이 처음으로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의 상황을 회고한 부분이다.
1:9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저희가 -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위시한 각처의 교인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의 소문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 2:1 이하에 보면 바울이 데살로니가로 들어간 날은 그에게 있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때 비방과 훼방, 박해 등 많은 고난을 당하였던 것이다. 구체적 내용은 2:1-3 주석을 참조하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회개를 묘사한 말이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대부분 헬라계 이방인으로 헬라의 다신교적 우상을 숭배하던 자들이었다.
이러한 우상 숭배에 빠져 방황하던 자들이 참 하나님에 대한 복음을 듣고 이제는 이전의 모든 생활( 우상 숭배 등)에서 돌이켜 거룩한 성도가 되었다.
1: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본 절에는 그리스도의 부활, 삼위 일체 하나님, 그리스도의 재림, 최후의 심판 등의 중요한 교리들이 제시(提示)되며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둘러싼 종말의 사건들이 강조되고 있다.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하여는 바울이 데살로니가 전도에서 역설한 바 있거니와 (행 17:3), 그들은 이를 그들의 신앙의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였다(행 2:24;3:15;13:30). 사실 초대 교회에서 언제나 강조하였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부 하나님의 역사에 직접 기인하는 것으로서 벵겔(Bengel)은 이에 대하여 "이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대한 중요한 변증이다"라고 설파하였다.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 그리스도의 '재림'은 본서와 데살로니가후서의 중요한 주제이다. 바울은 재림에 대한 잘못된 태도를 경계하였으나(살후3:10, 11) 재림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 재림의 때는 아버지 외에 아무도 알지 못하나(마 24:36) 분명한 것은 이때 신자의 구원이 완성되고 불신자는 하나님의 완전하신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4:13-17, 마 24:1-14)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 '장래 노하심'
(*테스 오르게스 테스 에르코메네스)은 '오고 있는 진노'(the coming wrath, NIV)라고 번역할수 있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임하게 될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을 뜻한다(습 1:14; 요3:36; 롬9:22; 엡 5:6;골 3:6). 그리고 여기에 사용된 '노하심'(*에르 코메네스)은 현재 분사형으로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이미 진행되고 있으며 확실히 이루어질 사건임을 나타낸다(렘14:10;암 3:2;롬 1:18).
바울이 이 말을 사용한 것은 노하심 이전에 있어야 할 예언된 사건들이 그때 당시에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2:15,16). 한편 '건지시는'(*뤼오메논)이란 말은 '노하심'과 동일한 용례로써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항상 현재적으로 예수께서 구원하실 것을 의미한다.
2:0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감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바울은 앞장의 내용을 연결하는 등위 접속사 '가르'(*'왜냐하면')를 사용함로써 본장을 시작하고 있다. 이는 본장 1-16절의 내용이 1:5-10절 내용의 확대임을 나타내 준다. 그러나 본장이 단순히 동일한 내용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본장에는 바울의 복음 전파 이면에 악한 동기들이 슴겨져 있다고 주장하는 바울의 적대자들(거짓 사도들, 유대주의자들, 영적 열광주의자들 등)에 대한 그의 변호가 함축되어 있다.
2:02 너희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말하였노라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귀신들려 점치는 여종을 고쳐줌으로 그로 인해 수익을 얻을수 없게 된 주인에게 기이한 풍속을 전한다는 이유로 고소당하여 모진 매를 맞고(고난) 정확한 판결도 없이 옥에 갇혔다(능욕).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행 16:19-34을 참조하라. 바울은 빌립보에서 주의 복음을 증거하다가 그토록 모진 고난과 인격적 능욕을 당하고서도 곧바로 데살로니가로 와서 담대하게 주의 복음을 증거하였다. 빌립보는 데살로니가와 같은 마게도냐에 있는 성이고 바울은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로 곧바로 갔으므로 당시 바울이 겪은 고난에 대한 소식은 데살로니가인들도 확연히 아는 사실이었다.
많은 싸움 중에 - 바울이 당한 고난과 능욕은 그가 데살로니가에 왔을 때에도 끝나지 않았다(행 17:5-10,13). 거기서도 역시 전도할 때에 많은 싸움(고난)이 있었으며, 이 싸움은 특히 유대인들로 인한 것이었다. '싸움'의 헬라어 '아고니'(*)는 운동 경기에서 경기자가 일등을 하기 위해 분투하는 것을 묘사하는 말이며, 이 말에서 영어의 '고투'(苦鬪)를 뜻하는 'agony'가 파생되었다.
2:03 우리의 권면(exhortation)은 간사에서나 부정에서 난 것도 아니요 궤계에 있는 것도 아니라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열심으로 복음을 전파하였으나 다른 좋지 않은 설교자들의 무리와 다를 바 없다는 비난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는 복음 전파의 동기가 순수함을 강조하며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고 있다.
'권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클레시스'(*)는 '파라'(*'곁으로')와 '칼레오'(*부르다')의 합성어로 '돕기 위하여 불러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격려'의 뜻도 가지며, 여기서는 '권면'의 의미로 사용되어 궁극적으로 '복음 전도'를 나타낸다.
2:06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 그러나 너희에게든지 다른 이에게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치 아니하고
We were not looking for praise from men, not from you or anyone else.
As apostles of Christ we could have been a burden to you, ·····
당시 사도들은 교회에 의해 부양받을(support) 권리가 주어졌으나 바울은 그런 권리를 일체 이용하지(take advantage of the right) 않았다.
‘우리가’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자신과 같이 사도에 포함시킨다. 이는 본 서신의 서두에서(1:1) 이 세 사람이 다 같은 복음사역의 동역자임을 밝힌 것처럼 동역자들을 향한 바울의 진실성을 보여준다.
'사도'(*아포스톨로이)는
'보냄을 받은 자','대리자'의 뜻으로 신약시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 널리 사용되던 용어이다.
성경에서 '사도'란 말은
(1)세례 요한 때부터 주님과 같이 한 자 (행1:21),
(2) 주께서 친히 임명하신 자(마 3:14),
(3) 주의 부활을 목격한 자(행 1:21)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으나 때때로 바나바(행 14:4,14), 주의 형제 야고보(고전 15:7;갈 1:19) 등 넓은 의미로도 사용 되었다.
3:1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표준새번역]
그러므로 우리는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테네에 남아 있기로 하고,
3:3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현대인의성경]
박해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고난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알고 있습니다.
[NIV]살전 3:3
so that no one would be unsettled by these trials.
You know quite well that we were destined for them.
3:5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일러니
[표준새번역]살전 3:5
그러므로 내가 참다 못하여 여러분의 믿음을 알아 보려고 그를 보냈습니다.
그것은 유혹하는 자가 여러분을 유혹해서 우리의 수고를 헛되게 만들지 못하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나도 - 본 구절에서 바울은 1절과 같은 표현을 되풀이함으로써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그리워하는 자신의 심정을 한층 강조하고 있다.
'나도'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고'(*)는 일인칭 단수이다. 바울이 지금까지 '우리'를 사용하다가 여기에서 단수를 사용한것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생겨난 일을 알기 위해 디모데를 그곳에 보내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이 그 자신임을 분명히 밝혀 두기 위함이다.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 '시험하는 자'는 2:18의 '사단'과 동일시되는 존재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사역을 좌절시키기 위하여 전도자들을 훼방하거나, 올가미를 놓아 회심자들의 영적(靈的) 붕괴를 야기시키고자 한다(마4: 3; 고전 7:5).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일러니 - '헛된 수고'에 대하여 빌 2: 16(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을 참조할 수 있다. 거기에서 빌립보 교인들의 인내는 복음을 위한 바울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증거가 되어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바울에게 기쁨을 안겨주게 될 것이 언급되어 있다. 본절에서 바울은 사단의 시험으로 그의 수고가 헛되이 될 것을 염려하나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할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 한편 하나님의 종의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상은 70인역 사 65:23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Bruce).
3:10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
[표준새번역]살전 3:10
우리는 여러분의 얼굴을 볼 수 있기를, 또 여러분의 믿음에서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줄 수 있기를 밤낮으로 간절히 빌고 있습니다.
[NIV]살전 3:10
Night and day we pray most earnestly that we may see you again and supply what is lacking in your faith.
* References : Mission Delux Bible, NIV Study Bible, 성경주석 web si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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