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성경해석

고린도후서 5장 해석

白鏡 2006. 8. 19. 11:32

  (1st Revision: August 20th, 2006)

 

<고린도후서 5장 구문해석>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Now we know that if the earthly tent we live in is destroyed, we have a building from God, an eternal house in heaven, not built by human hands

장막집 - the earthly tent we live in  

이것은 우리가 현재 입고 있는 육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텐트가 일시적이고 부서지기 쉬운 거주지(temporary and flimsy abode)인 것 같이 우리의 육신도 약하고(frail), 상처받기 쉽고(vulnerable), 소멸해 가는(wasting away)

존재인 것을 나타낸다.

영원한 집 - a building from God

이에 반해 하늘에 있는 집을 building으로 비유함으로써 이는 튼튼하고(solid), 일시적이 아닌 영구한(permanent) 거주지로 대조시키고 있다.


5:2,3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Meanwhile we groan, longing to be clothed with our heavenly dwelling,

because when we are clothed, we will not be found naked.



과연

Meanwhile  - as we await the Lord's return


영어성경대로 해석하면

“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는데 그 이유는 그 처소로 옷 입을 때 벌거벗은 채로 발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탄식하며 - 본문에서의 탄식은 인간의 실존적 유한성에 의해 필연적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는 고난 때문에 튀어나오는 신음 소리가 아니라 긍정적인 의미의 고뇌를 표출하는 것이다. 즉 이 탄식은 인간 존재의  한계성과 무기력으로부터의 영원한 해방과 자유를 갈구(渴求)하는 것이며, 썩어질 육체를 벗어버리고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으로 덧입게 될 것을 소망하는 염원의 소리이다(롬 8:18-25).


벗은 자 - 죽음에 의해 지상의 장막이 걷힌 상태 즉 몸(body)이 없는 상태(Barrett, Tasker)


** 5장 1절에서 3절까지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내용을 이해하기가 상당히 어려운데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장 적합할 것 같다.

여기서 바울은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는데 그 이유가 ‘벗은 자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즉 육신이 없는 상태(무덤에 들어간 상태)로 발견되고 싶지 않다 하였다. 이 말은 새로운 영적인 몸을 입을 때까지 땅 속에서 기다리지 않고 살아서 그 몸을 덧입기를 바라는 것이다(Barrett).

그렇다면 바울은 육체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죽음'을 빨리 맞고 싶어 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4절의 "벗고자 함이 아니요"라는 표현에서 얻을수 있다.

따라서 위의 절들은 바울이 살아서 부활의 영광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것에 대한 묘사라고 할 수 있다.

 


5:4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짐 진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  의 내용은 2절과 마찬가지로 바울이 육체의 질곡 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간절히 갈망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 육체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장막을 벗어버리면 가능해진다. 그러나 바울은 이 장막을 벗어버리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하늘의 집을 덧입는 방식으로 벗어나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것은 앞절(3절)에서도 다루었던 바 죽지않은 상태에서 바로 영적인 몸으로 바뀌어지기를 바울이 소망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고전 15:44, 51). 그렇다고 이것이 죽은 성도의 부활을 부정하는 것으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죽은 자도 산 자와 동일하게 부활에 참여할 수 있다고 바울 자신이 말했기 때문이다(살전 4:15). 다만 바울은 살아서 영화로운 몸을  입기를 더 원했던 것이다. 바울이 이렇게 육체를 가지고 부활에 참여하고자하는 소망을  피력하는 것은 영혼과 육신을 분리하고 어떠한 육체적 부활도 부인하는 영지주의자들을 반박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5:6-8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Therefore we are always confident and know that as long as we are

at home in the body we are away from the Lord.

We live by faith, not by sight.

We are confident, I say, and would prefer to be away from the body and at home with the Lord.


담대하여 - 6절 및 8 절에 나오는 이 ‘담대하여’라는 말 때문에 우리말 문맥이 잘 맞지 않는다. 이 부분은 NIV에 ‘confident’라 되어있고 이 단어는 사전에는 ‘대담한’ 이라는 뜻도 나오나 거의 대부분 ‘확신하는’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 바울은 육체를 입고 있는 한 여전히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음을 본 구절을 통해 고백하고 있다. 즉 비록 그는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이지만 그리스도와 실제로 함께 살고 있지는 않다. 바울의 현재적인 거처와 예수님의 거처는 분명하게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 절은 바울이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단절(斷絶)된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재적 상태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위의 절들을 영어에 의거해 풀이하자면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몸을 입고 사는 한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확실히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자신있게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 이 표현에 대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바울의 기본 교리와 모순된다고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으나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바울이 율법의 행함을 부인했을 때 그것이 뜻하는 바는 율법의

요구 자체를 폐기(廢棄)한 것이 아니라 율법의 요구를 이행하는 것을 하나님 앞에 의로 내세우려는 태도를 부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며 또한 율법이 명하는 바 선에의 투신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은 기초 위에서만 의미가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5:11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라노라


<표준새번역>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두려운 분이심을 알기에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 앞에서 환히 드러났습니다. 여러분의 양심에도 우리가 환히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5: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를 인하여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을 대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표준새번역>

그렇다고 해서 또 다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여러분에게 치켜세우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우리를 자랑할 수 있는 근거를 여러분에게 드리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에는 자랑할 것이 없으면서도 겉으로만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대답할 말을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5: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이제부터는 ..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

본 구절에서 바울이 '이제부터'라는 말을 했을 때 그것의 의미는 바울이 편지를 쓸 때부터라는 뜻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깨닫고 난 후부터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제부터' 성도는 육체적인 판단 기준을 버리게 된다.

과거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사람과 그리스도를 육체적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이것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함으로써 새롭게 태어났고(5:17;롬 6:3,4;갈 2:20) 결과적으로 전혀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육체적인 것은 왜곡된 인간의 본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자기중심적인 아집

(我執)과 이기적인 태도가 그것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여 자신이 유대인임을 자랑했던 것,

예수를 가리켜 사람들을 현혹케 하는 거짓 메시야라고 하여 그를 따르는 자들을 탄압했던 것 등은(행 26:4-11) 바로 이 육적인 지식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바울 자신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된 그 때부터 더 이상 과거와 같이 육체적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이 표현은 그리스도와의 영적  연합을 의미한다. 이 연합의 비밀에 대해 사도 요한은 포도나무와 그 가지의 관계로 설명했다(요 15:1-7).

새로운 피조물 - 인종과 성(性)을 초월하여 누구라도 그리스도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으로 받아들여(14절) 그리스도와 영적인 연합을 이루면(갈 2:19,20)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여기서 '피조물'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티시스'는 창조행위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즉 본 구절은 사람이 그리스도와 영적인 교제를 갖게 되었을 때 그에게는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로운 창조 행위가 일어나 새로운 존재가 된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창조 행위를 오해하여 새로운 질료(質料)로 만들어지는 전혀 다른 모습을 상상해서는 안된다.

그는 여전히 육의 몸을 입고 있고 동일한 세계에 살고 있으므로 육체의 욕망과 죄에 굴복당할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롬 6:12, 13).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실은 그가 그리스도와 세계에

대하여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피조물'이 될

사람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생활 방식과 사고 방식을 따라 살게 된다.

과거에는 그리스도를 핍박하였으나 이제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고,

과거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을 인정했으나 지금은 그런 차별을

부인하고 오직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만이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갈3:28; 엡2:11-22;골 3:11).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God made him who had no sin to be sin for us, so that in him we might become the righteousness of God.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 - 이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상대적으로 의로운 자의 공로가 죄인들에게 덕을 끼칠 수 있다고 보는 사상이 유대교에 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러한 사상 이상을 진술하고 있다.

즉 예수는 상대적으로 의로운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의로운 것이다

(롬 8:33, 34).

죄를 삼으신 것 - 이 표현은 다음 두 가지의 뜻을 함축한다.

(1) 그리스도의  성육(成肉) 즉 죄있는 인간의 모습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롬 8:3).

(2)  그리스도께서 실질적인 죄인으로 취급되어 죄의 삯인 형벌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었다(마 27:46).

(마 27:46)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하나님의 의 - 본문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으나 ‘칭의’의 개념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즉 그리스도가 짊어진 대속적 죽음을 믿음으로써 의롭다함을 얻게됨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다(갈 3:13, 14:빌 3:9; Hodge, Barrett, Harris, Lowery).


*參考文獻 : 개역한글성경, 표준새번역, 톰슨주석성경, NIV,

               The NIV Study Bible, 성경주석 Web si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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