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3장 강해>
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신령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뉴마티코이스'(* )는 2:14, 15과는 달리 본절에서는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을 가리킨다. 2:14, 15에서는 이 단어가 구원받지 않은 사람과 대조되어 구원받은 사람을 의미하였지만, 본절에서는 영적으로 미숙한 상태에 있는 '어린아이'(*네피오이스)와 대조되고 있다.
3: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밥'에 해당하는 헬라어 '브로마'(*)는 원래 '고기'(meat)라는 의미로서 일반적으로 성인이 먹는 단단한 음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어린 신자로 여겨, 그들이 수용할 수 있는 형태로 진리를 표현하고자 했음을 시사한다. 바울의 이러한 화법은 헬라세계에 퍼져있던 밀의 종교의 방식과는 다르다. 밀의 종교에서는 신도의 수준에 따라 일정수준에 이른 신자들에게만 은밀하게 자신들의 교리를 가르쳤다. 그러나 바울이 이런 방식으로 복음의 진리를 단계적으로 구분하여 가르쳤다고는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은 신앙의 상태에 관계없이 항상 진리이기 때문이다(Calvin). 오히려 복음의 내용을 설명하는 형식을 달리하여 가르쳤다고 보는게 더욱 타당하다. 이렇듯 하나님의 계시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이 수용할 수 있는 상태에 따라 깊고 넓게 가르쳐야 한다.
3: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육신에 속한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사르키코이'(*)는 1절에서 언급한 '사르키노이스'(*)보다 강한 표현으로 '사르키노이스'는 육신 자체를 가리키는 반면 '사르키코이'는 육신적인 특성을 나타낸다. 이 말이 신앙 생활을 적게 한 사람에게는 비난이 되지않지만 신앙 생활을 오래한 사람에게 사용되면 비난하는 투가 된다(Morris).
'사람을 따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안드로폰'(*)은 통상적인 죄인의 삶의 방식인 이기심, 교만, 시기 따위의 정서를 정당하게 여기고 수용하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육체의 요구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아 없애버린 칭의인(稱義人)으로 살아가야 한다(갈 2:20;5:24). 그렇기 때문에 본절에서 바울은 이를 염두에 두고 고린도 교인들의 오류를 스스로 시인할 수 밖에 없도록 수사적 의문문을 사용하고 있다.
3: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그런데 바울이 본절에서 자신을 중심으로 모인 바울파와 견주어 자신과 깊은 관계에 있던 '아볼로'를 예로 들어 설명하는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교회 안에서 어떤 특별한 사역이나 어떤 특정한 인물에 속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돼었음을 설득력있게 가르치기 위함이다.
3: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 앞 구절의 질문에 대한 대답의 형식을 취하여,'주'와 '사역자'를 대조함으로써 '주'의 우위성을 나타낸다. '사역자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코노이'(*)는 본래 식탁에서 시중을 드는 봉사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용어가 신약성경에서는 자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언급할 때 사용되어 '집사'(롬 16:1;빌 1:1)를 의미하기도 한다. 본절에서 이 단어가 사용된것은 그들의 직무가 낮다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Morris).
모든 행위의 주체자는 '그리스도'이시고 사역자인 바울과 아볼로는 도구에 불과하다.
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바울은 앞절의 논술을 뒷받침하기 위해, 식물 재배와 비교하여 설명한다. 본절에 나타나는 동사들 가운데 바울과 아볼로를 주체자로 삼는 '심었고'의 헬라어 '에퓌튜사(*)와 '물 주었으되'의 헬라어 '에포티센'(*)은 부정과거인데 반해, 하나님을 주체자로 갖는 동사 '자라나게 하셨나니'의 헬라어 '육사넨'(*)은 미완료과거이다. 이는 바울과 아볼로의 사역은 시간적인 한계를 갖고 있지만, 하나님의 사역은 영속적임을 보여준다. 본 구절은 그들의 사역 배후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항상 있었고 절대적인 역할을 하셨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3: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The man who plants and the man who waters have one purpose, and each will be rewarded according to his own labor.
- 본절에서는 심는 이와 물주는 이를 접속사 '카이'(*, '그리고','...도')로 연결시켜 바울이 언급하려는 것을 둘 다에게 동일하게 적용시킨다.
'일반이나'에 해당하는 헬라어 '헨 에이신'(*)은 '하나이다'라는 의미로 둘 다 동일하다는 의미이다.즉 본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역자들이 각기 하는 일은 다르다 할지라도 동일하게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동일한 교회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라는 표현은 사역자들이 하나님께 대해 개별적인 책임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울은 사역자들이 자신이 수고한 만큼의 대가를 받는다고 말한다.
그들이 가진 재능이나 은사조차도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갖고 있는 재능이나 은사에 관계없이 수고에 대한 대가로 상급이 주어진다(Hodge).
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 '동역자들'의 헬라어 '쉰에르고이'(*)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 학자들의 견해에 따라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혹자의 견해를 따르면 이 말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한다(Meyer, Alford, Robertson).
(2)혹자는 문맥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행함에 있어서 함께일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Bengel, Morris, Vincent). 여기서는 후자의 경우가 더 타당하다.
그 이유는 본절이 앞 구절에 대한 설명적인 표현이므로 문맥을 떠나 해석할 수 없기때문이다.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 '밭'에 해당하는 헬라어 '게오르기온'(* )은 신약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표현으로 교회를 가리킨다.
바울은 자신이나 아볼로와 같은 사역자들을 경작자로 간주하고 고린도 교회를 밭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집'의 헬라어 '오이코도메'(*) 역시 교회를 가리키는데, 바울은 이런 표현을 신약성경에서 자주 사용했다
(롬 15: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엡 2:20-22;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벧전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바울은 교회를 '밭'으로 비유하다가 갑자기 '집'으로 비유의 소재를 전환하면서 자신의 논증을 다음 절에서도 계속 이끌어나간다.
3: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 '지혜로운 건축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소포스 아르키테크톤'(*)은 '숙련된 건축가'라는 뜻으로 헬라어의 관례에 따르면 다른 일꾼들을 감독하는 사람을 말한다.
바울이 '집'(*, 오이코도메)이란 말은 곧잘 사용했지만, '건축자'라는 말은 여기에서만 사용하였다.바울은 교회를세우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엡 3:7-10)을 알고있는 숙련된 건축자로서 고린도 지역에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사실을 소개하고 이에 대한 교리적인 터를 닦아 놓았다(2:2;행 4:11;엡 2:20;벧전 2:6).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 '다른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알로스'(*)는 단수이지만, '각각'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카스토스'(*)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교회의 모든 사역자를 개별적으로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새로 기초를 놓을 필요가 없이 이미 닦여진 그 터 위에 건물을 세우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각자는 어떻게 그 위에 세울지를 주의하여야 한다.
3: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 본절은 앞절에서 경고했던 이유를 제시한다. 모든 건축에 있어서 그 건물의 기초를 세우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일이다. 마찬가지로 교회 공동체에 있어서도 교회의 터가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터로 삼지 않고서는 세워질 수 없다. 이 터는 바울이 닦았으나 실상은 그가 닦은 것이 아니다. 바울에게 사도적 권위를 부여하신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통해 그 터를 닦으신 것이다(Meyer).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 예수그리스도는 교회의 유일한 주인이며 교회의 진정한 터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터로 삼지 않으면 그것은 이미 교회라 할 수 없다. 엡 2:20 에서는 사도들을 '터'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이 돌'이라 하였다.
이는 그리스도가 교회의 궁극적인 기초이심을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어떠한 인물이나 사상 체계도 교회의 기초가 될 수 없다.
3:12-13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 바울은 건축에 사용되는 두 종류의 자재를 예로들고 있다. 그 하나는 '금, 은, 보석' 값비싸고 견고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무, 풀, 짚' 등 값싸고 허술한 것이다.
바울은 순수하며 변치않는 영원한 것과 이에 비해 무미건조하고 일시적인 것을 비교 조함으로써 거짓된 가르침은 쉽게 소멸될 것을 연상하게 한다.
여기서 후자(後者)는 '천한 초등 학문'이며 '철학과 헛된 속임수'이다(갈 4:9;골 2:8).
각각 공력이 나타날터 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 '그 날'은 재난이나 환난의 날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심판하시는 '주의 날'(롬 13:12;살전 5:2-9;히 10:25)이다.
'밝히리니'의 헬라어 '델로세이'(*)는 성격의 본질을 드러내어 그것의 실상을 밝힘을 의미한다. 그 드러나는 방식이 '불'에 의해 결정되어지는데,이는 '심판의 불'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불'은 크게 두 가지 작용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정화시키는 작용(마 3:11;막 9:49)과 소멸(燒滅)시키는 작용(마 3:12;살후 1:7, 8;히 12:29)이 그것이다.
바울은 '불'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각 사람의 공력이 정당한 것인지의 여부를 시험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
3:14-15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 바울은 본절에서 완벽한 불의 시험을 거친 후에 그 결과에 따라 상급을 받을 것을 설명한다
(마25:14-30;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ーーーー"(
(눅 19:11-27) "그러나 그 귀족은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맡긴 종들을 불러오게 하여, 각각 얼마나 벌었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
이렇듯 바울은 마지막 심판 때 있을 보상과 형벌(形罰)은 그리스도인에게도 적용된다고 보았다
(고후 5:10).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각 사람은 선한 일이든지 악한 일이든지, 몸으로 행한 모든 일에 따라, 마땅한 보응을 받아야 합니다.
그때 주어질 '상'이 실지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시되지는 않았으나 이 '상'은 개인적 구원이나 영원한 생명은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은 모든 신자에게 이미 주어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상급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남아 있는 것'(9:18) 자체가 될 수도 있다(Grosheide).
3:16-17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3:18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 '속이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엑사파타토'(*)는 현재 명령형으로서 고린도 교회 내에 자기 자신의 양심을 속이고 그릇된 행위를 하고있는 사람이 현재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바울은 하나님의 진정한 지혜를 세상적인 관점으로 그릇되게 인식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해서 불경건한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이므로 이를 엄증하게 경고하고 있다.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오직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미련함을 인식해야한다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지혜'를 무엇보다 중요시하고 있는 헬라인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이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은 미련한 것으로 여겨지나(2:14) 실상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바울이 1:18-25에서 언급한 대로 십자가의 도가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나 이것이야말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진정한 지혜이기 때문이다.
3:19-20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 바울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본절과 다음절에서 구약성경의 두 부분을 인용한다. 본 구절은 첫번째 부분으로 욥 5:12,13을 약간 자유스럽게 인용했다.
"하나님은 교활한 자의 계교를 꺾으사 그들의 손이 성공하지 못하게 하시며 지혜로운 자가 자기의 계략에 빠지게 하시며 간교한 자의 계략을 무너뜨리시므로 "
본 구절은 구약에서 인용한 두번째 부분으로서 시 94:11의 인용이다.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3: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고린도 교인들은 지혜를 사모하는 것 때문에 교만해졌고 그들이 따르는 지도자들의 이름을 힘입어 헛된 자랑에 빠졌으나 이제 그러한 현상에 쇄기를 박고 분열을 방지하라는 명령이다.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 헬라어
본문에 접속사 '가르'(*)를 사용한 것은 앞 구절의 권면에 대한 정당한 근거를 제시하기 위함이다.
이제 바울은 독자로 하여금 시야를 만물에 돌리게 한다. '만물'에 해당하는 헬라어 '판타'(*)는 하나님의 피조 세계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지도자인 바울이나 아볼로, 게바 등도 하나님의 피조물(被造物)에 지나지 않음을 상기시킨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우주의 대권자까지 될 수 있는 특권을 주셨다(롬 8:17,32;딤전 6:17). 그러므로 어떤 특정인이나 사상을 중심으로 모이는 행위는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는 무익하다.
3:22-23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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