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석의 얼굴특강

사얼메(011) 제2장 눈이 둘인 이유 -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도(道)

白鏡 2017. 12. 3. 07:33

사람의 얼굴이 전하는 메시지

서문(序文)

1 사람 얼굴, 모양으로 만들었나?

2 눈이 둘인 이유

1. 많이 보고 많이 배우라

 자연(自然)

우리는 어떤 것을 '아름답다' 여기는가?

아름다움의 개념에서 배우는 자연과 인간의 탄생원리

자연의 운행원리

과학이란 무엇인가?

자연의 섭리(攝理)와 인간의 도()


요즈음 한 스님의 즉문즉설(卽問卽說)이 큰 화제다.

한 지인이 카톡으로 보내 준 그 스님의 문답 동영상을 보고
배를 잡고 크게 한 번 웃은 후

처음엔 재미로 나중엔 마음공부의 목적으로 보게 되었는데

볼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묻는 사람에게, 그리고 대답하는 사람에게.

 

묻는 사람에겐

‘바람난 며느리가 집을 나갔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유부단한 성격을 어떻게 하면 고칠까요?

‘여자만 보면 마음이 동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등등

황당한 질문의 내용에 놀라고

 

대답하는 사람에겐

즉석에서 하는 온갖 시시콜콜한 세상사에 관한 고민에 대해

어떻게 저렇게 거침없이 명쾌한 답을 자신 있게 내 놓을 수 있는지에 놀랐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렇게는 못한다.

그래서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그러면서 의문의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스님이 누구인가?

속세를 떠난 사람들이다.

세상사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 모두 자식 역할은 해 보았으나

그들 대부분은 부모 역할, 남편 역할, 아내 역할, 며느리 사워 역할,

회사 상사 부하 역은 해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대답하는 걸 보면

마치 그 온갖 역할 다 해본 것처럼 말하는데

별로 트집 잡을 말이 없다.

오히려 ‘아니 우째 저래 잘 아노? 장가도 안 가 본 사람이!!!’ 하면서 놀라고

실타래처럼 얽키고 섥킨 그 기막힌 사연들 앞에 내놓는 너무나 간단명료 명쾌한 해답에 놀란다.

 

한 마디로 도() 통한 사람이다.

그 도는 무얼 통해서 얻었을까?

아마도 경전(經典)과 기도/()을 통한 것이리라.

 

한지만 이 두 가지는 일반 신자들도 할 수 있다.

투자하는 시간과 정성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런데 왜 신자들 중에는 이런 도인(道人)이 잘 나오지 않을까?

 

그들은 세상살이 해 본 적 없고 세상앓이 해 본 적 없다.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훤하니 꿰뚫고 있을까?

그 비결은 무엇일까?

 

이런 화두(話頭)로 묵상을 하던 중

사람 사는 거주지에 대해 생각이 이르자 한 가지 답이 떠올랐다.

 

그들은 어디 사는가?

산 속에 산다.

 

그렇다!

속세 사람들은 마을에서 사람 속에 부대끼며 살고 스님들은 산 속에 산다.

그들은 자연(自然) 속에서 자연을 보며 자연을 느끼며

자연의 가르침을 들으며 깨달아 온 것이다.

 

그러면서 언젠가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스님이 되고자 처음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면

일정 기간 동안은 나무하고 군불 때고 청소하고 밥하고. 등 온갖 허드렛일만 시키는데 그 와중에 하루 한 번은 계곡에 나가 앉아 있으라 한다.

그러면

계곡 바위에 앉아 물 흘러가는 것만 보고 있어도

거기서 깨우치는 도()가 스무 가지가 넘는다 한다.

 

나는 스님들이

흐르는 계곡물을 보고 깨닫는 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른다.

그것은 아마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여

한창 젊었던 시절 3개월간 장안사에 머무르며

매일 아침 식사 후 개울가에 앉아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느꼈던 소회(所懷) 에 최근 5 년간 출퇴근 시 강물이 보고 싶어 일부러 돌아서 낙동강변로를 따라 달리며 흐르는 물로부터 배운 몇 가지 진리와 지혜를 적어보고자 한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사랑은 내리사랑이다.

부모가 자식 사랑하듯 자식도 그 사랑 지 자식에게로 흘러가지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 부모에게로 거슬러 올라가진 않는 것이다.

그러니 부모사랑 자식이 몰라준다고 너무 섭섭해 말아라.

 

물은 결코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못된 똥 덩어리 낙동강 거슬러 올라간다고

세상 갈등과 고민과 불행은 다 순리대로 행하지 않아 오는 것을.

세상만사 물 흐르듯 순리대로 살면 무슨 큰 어려움이 있으리오?

 

바위를 만나도 물은 멈추어 서지 않는다

물이 흐르다 바위를 만나면

‘너 뭔데 내 앞길을 막아? 하며 비키라고 맞서지 않고 말없이 돌아서 간다.

 

권위자에게 함부로 대적하지 말라.

계란으로 바위 치지 말라.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머리 숙이는 법부터 배워라. 인내심을 키워라. 힘 기를 때까지.

 

돌아서 지나가되 모서리를 갉아먹으며 간다

물이 강한 돌을 만나면 돌아는 가되 그냥 가지 않는다.

그 모서리를 조금씩 조금씩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갉아먹으며 간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면 그 단단하고 모난 돌이

약하디 약한 물에 의해 맨들맨들한 몽돌이, 조약돌이 된다.

 

가랑비에 옷 젖고 세월 앞에 장사 없다.

 

강한 것을 부드럽게 변화시키는 것은 부드러움이지 강한 것이 아니다.

강한 것으로 강한 것을 치면 쪼개지면서 날은 더 설 뿐이다.

 

이렇듯 자연은 자신의 운행법칙, 그 섭리(攝理)를 통해서

인간사회의 운행법칙, 인간의 도()에 관해서도 많은 깨우침을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