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성경해석

고린도후서 8-9장 구문해석

白鏡 2006. 9. 13. 16:23
 

<고린도후서 8-9장 구문해석>

 

8: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마게도냐 교회들 - '마게도냐'는 현재의 그리이스 북쪽에 있는 발칸반도로서  서쪽으로는 아볼로냐로부터 동쪽으로는 빌립보에 이르는 지역을 가리킨다. 이곳은 B.C.148 년 이후부터 로마의 영토였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들'은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교회를 가리킨다(행 17:10-15, Bruce).



    은혜를...알게 하노니 - 바울이 마게도냐 교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고린도교인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이유는 그 말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극이  되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을 모으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바울이 헌금에 관한 문제를 '은혜'(*카린)의 관점에서  접근해가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바울은 마게도냐의 교회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헌금을 기꺼이 그리고 분에 넘칠 정도로 한 것에 대한(2-4절) 이유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라는 사실에서 찾고 있다. 바레트(Barrett)가 말하는 대로 '은혜'는 관대함을  뜻한다고 볼 때 죄인으로서 심판(審判)을 받아야 마땅하고 아무런 용서받을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한 인간으로서의 마게도냐 교인들이 아무런 조건 없이 베풀어진 하나님의 관대함을 입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을 위하여 자비를 베푸는 것은 공로가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결국 마게도냐 교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관대해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다.

8: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 마게도냐 교회들이 당한  시련에 대해서는 빌 1:29, 30; 살전 1:6;2:14;3:3, 4; 살후 1:4-10에 언급되어 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다만 유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환난과 같은 것을 마게도냐 교인들도 받았다고 언급될 뿐이다(살전  2:14).  마게도냐의 교인들이 당한 환난은 그들이 기독교를 믿는다는 사실 때문에 당한 것이었으며, 아마 유대인 적대자들에 의해 난동꾼들로 모함을 받았거나 유대인들로부터 직접적인 공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행 16:20;17:5, 13).

또한 마게도냐 교인들은 피식민지  백성으로 받는 시련도 있었다. 이 모든 시련 가운데서도 마게도냐의 교인들은  넘치는 기쁨 속에 살았다고 바울은 전해준다. 혹자는 말하기를 '이 기쁨은 마게도냐 교인들 자체에서 나온다기보다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관대함의 결과'라고 말한다(Schlatter). 

아무튼 마게도냐의 교인들은 시련을 당할수록 오히려 넘치는 기쁨을 누렸는데 그것은 그들의 신앙이 매우 성숙한 수준에 있었음을 말해준다. 마치 그들은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는' 바울의 모습(6:10)과도 같았다.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 당시에 마게도냐는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으므로 금광이나 은광, 선박용 나무를 베는 권리 등의 수입원들을 모두 로마인들에게 빼앗겨 구조적인 가난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마게도냐는 전체적으로 농업, 광업, 목재 산업 등이 번성하였기 때문에 '극한 가난'의 상태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본다(Barrett).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 마게도냐 교회들의 형편을 '극한 가난'으로 표현한 것은 경제적인 요인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해진 박해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본문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마게도냐의 교인들은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였다는 사실을 또한번 전해주고 있다.

여기서 '연보'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플로테토스'(*)는 '소박',  '단순',  '순수함'이라는 뜻으로 헌금의 기본적인 태도는 마음의 순수함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것임을 말해준다.



한편 본문은 '가난'이라는 상황이 남을 돕거나 하나님께 드리는데 인색함의 동기가 되서는 안됨을 말해준다. 마게도냐의 교인들은 마치 자신의 전재산을 하나님께 바친 한 가난한 과부처럼 극한 가난 속에서도 자기들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었으니 그것은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의 모습이었다(6:10).

8:10 이 일에 내가 뜻만 보이노니 이것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이 일에 내가 뜻만 보이노니 - 바울은 명령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또  명령할 수 있을만큼 당위성이 있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명령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이 좋겠습니다'(공동번역)라는 말로 정중하게 권고하고 있다.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 이 말의 의미가 고린도 교인들이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서 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기왕에 시작한 일인만큼  끝까지 완수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물론 두가지가 다 해당될 수도 있다.

   너희가 일 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 여기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그것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적어도 1년 전에 구제 헌금 사업을 시작했다는 것과 그 일이 지지부진하여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구제 헌금 사업을 이제는 속히 완성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1) 고린도 교인들이 구제 헌금을 시작한 것은 전적으로 그들 자신의 의사에 의한 것이었다.

(2) 그들이 구제 헌금 사업을 시작한지가 1년이나 되었지만 그들의 헌금은 그들보다 늦게 시작하고 시련과 극한 가난이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헌금을 한 마게도냐 교인들보다도 미흡했기 때문이다(3절).

(3) 적어도 그것이 선한일이라면 빨리 끝을 맺는 것이 신앙적으로 유익하다. 그렇지 않고 중도에 그만둔다면 그것은 진실한 신앙이 아니며(8절) 앞으로도 승리하는 생활이 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4) 구제 헌금을 빨리 완성하여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속히 아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Harris).


8:12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 For if the willingness is there, the gift is acceptable according to what one has, not according to what he does not have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 여기서 '받으실 터이요'의 주체는 하나님이다.  고린도 교인들의 구제 헌금이 가시적으로는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에게 도움이 되겠지만 궁극적으로 받으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이것은 달리 말해서 고린도교인들이 예루살렘 교인들을 위한 구제 헌금을 할 때 누구를 돕는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되며 다만 하나님께 드린다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본 절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헌금을 받으실 때 드려진 것의 양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사람의 마음을 중요하게 보신다는 것이며 또한 드려진 헌금과 드리는 자의 소유의 관계에서 평가하신다는 것이다(막 12:41-44). 그러므로 많이  소유한  자가

많이 드리는 것과 적게 소유한 자가 조금밖에 드리지 못한 것 사이에는 어떠한 가치의 차이도 없다. 다만 하나님께서 받으셨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다.

8:13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 본절은 고린도 교인들 중에서 구제 헌금에 대하여 말하기를 '남을 편하게 하기 위하여 바울이 자기들에게 짐을 지우고 있다'고 불평한 이들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Bruce). 

그러나 바울은 있는 자의 재물을 거두어 그를 가난하게 하고 그에게서 거둔 재물로 가난한 자를 부요하게 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중요한 것은 가진 자나 가지지 못한 자 모두가 평등하고 공평하게 살도록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강제도  물리적 알력도 배제된다. 다만 넉넉한 자가 자원(自願)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은혜에 응답하여 가난한 자에게 자기의 소유를 나누는 것인데 이것이 기독교의 공동체 의식이다.

바울이 여기서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전개하는 논리는 상부 상조하는 공동체의 논리이며(14절) 이것은 로마서에서 사용한 논리와는 다르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이방인 성도들이 예루살렘 성도들로부터 영적인 것을 나누어 받았기 때문에 육적인 것에 관한 한 이방인 성도들이 예루살렘성도들을 위해 나누어 주는 것은 마땅하다는 논리를 전개하였다(롬 15:27).

8:15 기록한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기록한 것 같이 - 바울은 자신이 제시한 평균의 원리에 더 강한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내려주신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출 16:13-36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주실 때 많이 거두어 들인 자나 적게 거두어 들인 자나 모두가 배불리 먹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많이 거두어 들인 자의 남은 것은 썩어서 저축될 수 없었다는 점과 적게 거두어 들인 자는 모자라지 않았다는 점이다. 바울은 이 광야의 이야기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경제의 원리라고 생각한 듯하다. 즉 하나님께서는 과거 광야에서 직접 개입하시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시되 남은 것의 축적(蓄積)을 허락하지 않 음으로써 백성들간의 경제적 평균을 이루게 하셨다. 이제 지금은 직접 개입하시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당신의 백성들이 이런 원리를 지켜 서로 풍족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즉 물질을 넉넉히 가진 사람은 그물질이 하나님께로서 왔다는 것을 알고

자기가 쓰고 남은 여분의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8:18 또 저와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이 사람은 복음으로서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구제 헌금을 위해 디도 외에 두 사람을 더 보냈다

(22절). 본문에 '복음으로서 칭찬을 받는 자' (공동번역에는'복음을 전하는데 명성을 떨친 사람'으로 되어 있다)라고 소개된 이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학자들은 '누가'나 '디도의 형제'일 것이라고 추측하는데 이에 대한 근거는 없다. 다만 우리는 이 사람이 바울의 신뢰를 받았고 여러 교회로부터 칭찬을 받았던 자라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다.

8:19 이뿐 아니라 저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입어 우리의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


  여러 교회의 택함을 입어 - 본문은 방금 바울이 소개한 사람이 바울에 의해 선택된 것이 아니라 여러 교회들에 의해 선택되었으며 이 선택의 방법은 교회들에 의한 공식적 투표에 의한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택함을 입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케이로토네데이스'(*)는 '거수(擧手)로써 투표하여  선택한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선택된 사람이 공신력있는 인물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혹자는 이 사람이 마게도냐의 교인들로부터 뽑힌 대표자일 것이라고  보는데(Barrett), 이렇게 볼 수 있는 가능성은 많다. 왜냐하면 이미 마게도냐 교인들의 구제모금은 끝이 난 상태였으므로 모금된 돈을 디도와 함께 운반하고 보호할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8:19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We want to avoid any criticism of the way we administer this liberal gift


   이것을 조심함은 - 바울이 구제금을 모금하고 관리하기 위한 실무자를 그의 측근인 디도 한 사람으로 국한하지 않고 두 명을 더 참여시킨 것은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한 사려 깊은 행위였다.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 '훼방하지 못하게'가 뜻하는 바는 그 모금된 돈을 도둑질 당하거나 분실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거액의 연보가 바울과 관계되어 있음으로 해서 생길 수 있는 의혹이나 인간적인 의심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것을 뜻한다.

이는 '훼방하지 못하게'로 번역된 헬라어 '메 모메세타이'(* )가 문자적으로 '비난을 받지 않다'를 뜻하는데서 알 수 있다(be no accusations, JB). 당시 복음 전도자들이 대개 받았던 비난처럼 바울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선교활동을 한다는 비난을 예견한 만큼 바울은 오직 주의 영광과 성도들의 구원을 위해 일한 것이(4:12), 도리어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켜 선교하는데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했다(Barrett). 그러나 바울의 이런   세심한 주의에도 불구하고 악의에 찬 오해를 면할 수는 없었다(12:16-21).


8:22 또 저희와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 우리가 여러 가지 일에 그 간절한(zealous) 것을 여러번 시험하였거니와 이제 저가 너희를 크게 믿으므로 더욱 간절하니라


zealous

1 열심인, 열광적인
2 열망하여 《for, to do》;열중하여 《in》



  또 저희와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 여기서 또 한 사람의 알려지지 않은 동반자가 소개되고 있다. 이 사람은 여러차례에 걸친 시험에서 증명될 만큼 열성을 가지고 있었고 더욱이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였으므로 이번 일에 동행하게 하였던 것이다.

학자들은 이 사람이 아볼로나 두기고일 수있다고 추측하나(Farrar, Robertson) 확실하지는 않다.한편 바울이 디도와 함께 보낸 두 사람에 대해서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은 디도가 이 편지를 고린도 교회에서 읽을 때 그들을 소개하려고 했거나 아니면 두 사람의 대표자들이 마게도냐 교회들에 의해 선출된 자로서 이미 고린도에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다(Harris).

8:23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고린도에서 보내진 디도 일행에 대한 신임장(信任狀)이 서술되고 있다.

디도는 다른 두 사람과 구별될 만큼 다소 특별한 존재였다.

여기서 '동무'라는 표현은 바울과 디도가 상당히 친밀한 관계에 있었음을  말해주며 '동역자'라는 표현

'여러 교회'는 19절에서의 주석처럼 '마게도냐의 교회들'을 지칭하고

'사자들' (* 아포스톨로이)은 '사신' 또는 '사절'을 뜻한다.

이 형제들은 바울이나 디도처럼  사역자로세워진 것이 아니라 이번의 구제금 사업을 위해 여러 교회들로부터 선택된 사람들로 사도에 준하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구제금 모금 사업의 재정적인 면을 담당하는 지역 교회들의 대리인들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한편 본절에 언급된 이러한 구별이 바울이나 디도와 여러 교회들에서 선택된 '사절'들 사이에 지위의 차별을 암시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전자나 후자 모두가 그리스도의 영광이라는 점에서 동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디도를 비롯하여 두 형제들은 바울이 인정하고 신임하는  자들이

었으며 다른 교회들로부터도 신임받는 사람들이었다.

8:24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를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저희에게 보이라


공동번역은 본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그러니 여러분은 그들을 사랑으로 대하여 우리가 여러분을 자랑한 점이 사실이라는 것을 모든 교회에 드러내십시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이 보내는 사절단을 따뜻하게 환대(歡待)할 것을 요청하고 있으며 이러한 환대는 자신이 고린도 교인들에 대하여 자랑한 것을 확증해주는 의미를 갖는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바울의 요구는 고린도 교인들이 참으로 성숙하고 훌륭한 성도임을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9:1-2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년 전부터 예비하였다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격동시켰느니라


  성도를 섬기는 일 - 이는 8장에서부터 계속 다루어 온 문제로(8:4)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글라우디오 황제(A.D. 41-54)  때 몰아친 심한 기근으로 인해 생활이 몹시 궁핍해졌기에 그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기 위한 구제 헌금 내는 일을 가리킨다. 바울은 새삼 이 일에 대하여 쓸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 절(2절)에 제시된다.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 구제 헌금을 모금하는 일에 참여하도록 권고하는  편지를 쓸 필요가 없는 까닭은 그 일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강요된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자원했기 때문이다.

 아가야에서는...자랑하였는데 - 아가야는 마게도냐의 남방에 있는 헬라 전토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바울 당시 아가야는 로마의 식민지였고 고린도가 그 수도였다. 따라서 아가야와 고린도는 동일시될 수 없는 것이고 다만 고린도는  아가야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였으며 고린도 교회 역시 그 지역에서 가장 큰 교회였다. 고린도 시에 우리가 알 수 있는 지명으로 겐그레아나 아덴을 들 수 있는데 이 도시들에도  교회가  있었다(롬 16:1). 한편 본문에서 드러나는 새로운 사실은 바울이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구제금을 준비하였다고 자랑했다는 사실이다.

학자들은 8:2, 6, 10과 본절의 연결에 대해, (1) 8장과 본장이 한 편지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시차를 두고 씌어졌다고 본다. (2) 8:10, 11에서 고린도 교인들의 자발적인 헌신을 요구한 것은 그들의 모범을 마게도냐 교인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적극적인 헌신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3) 바울이 8장에서 고린도 교인들의 헌신을 고무시키기 위해 마게도냐 교인들의 모범에 관해 말한 것처럼 본장에서는 과거에 마게도냐 교인들을 격려하기 위해 고린도 교인들의 열심을 소개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러한 세가지 견해 중에서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첫번째 견해, 즉  8장과 본장이 한 편에 씌어진 것이 아니라는 견해는 학자들 사이에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고(3절 주석 참조), 두번째 견해는 이미 마게도냐 교회에서의 모금이 끝났다는 것을 생각할 때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격동시켰느니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레디센'(*)은 보통 나쁜 의미로서 '자극하다', '분내게 하다'를 뜻하나에서는 좋은 의미로 '건전한 경쟁의식을 조장(助長)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J. Hering). 고린도 교인들이  구제금에 대한 사업을 먼저 시작한 것은 사실인 듯하며(8:10) 이 소식이  마게도냐에 전해졌을 때 그들에게 이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의욕을 불러일으켰음도 사실인 듯하다(8:2, 3).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고린도 교인들의 모범을 보고 늦게 시작한 마게도냐인들은 매우어려운 상황임에도(8:2) 불구하고 이미 구제연보를 마쳤던 반면 먼저 시작하여 다른 성도들에게 동기를 부여한 고린도 교인들은 아직도 끝을 맺지 못하고 있으며 이제는 도리어 마게도냐인들에 의해 자극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바울이 염려하는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아직 구제 연보를 끝내지 못한 사실을  마게도냐인들이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이 바울 자신과 고린도 교인들에 대해 실망하게  되는 일이 생기는 것이었다(3-5절).


9:5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참연보 - 디도 일행이 해야 할 일은 단지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들이 과거에 한 약속을 상기시켜주는 일뿐이다. 그 이상 고린도 교인들이 심리적으로 압력을 받아서는안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은 구제 헌금에 관한 모든 결정은 고린도 교인들 스스로가 내리도록 해야 한다고 여겼으며 또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구제금에 대한 약속을 스스로 지켜주리라 믿고 있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본절의 내용을 볼 때  고린도 교인들이 구제금을 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고린도 교인들이 구제 연보를 미리 준비해 두지 않고 있다가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이 간 다음에 마지못해 연보를 한다면 그것은 억지로 하는 것이 되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연보가 아닌 것이다.

본문의 '연보'에 해당하는 헬라어 '율로기안'(*)는 '좋은 말', '찬양', '후한 선물', '축복'의 의미를  갖는다. 

본문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의미는 '축복'으로서 '참연보'는 주는 자나 받는 자 모두에게 축복이 된다(Bruce)는 것으로 '참연보'는 의무에 의해서나, 체면 때문에,또는 자랑이나 자기 만족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에  대한 책임 의식과 신앙적  사랑에 의해서 하는 것이다.

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적게 심는 자...많이 심는 자 - '연보'가 '축복'의 의미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은 본절과 관련하여 더 분명해진다.

본절은 잠 11:24, 25;19:17을 자유롭게 인용한  것으로 '뿌리는 것에 비례해서 거둔다'는 추수의 비유를 통해 적극적인 헌금의 필요성 및 이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을 강조하고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많이 베푸는 사람은 그 만큼 많은 것으로 축복을 받지만 적게 베푸는 사람은 그 아낀 것이 모아지지도 않을 뿐더러 돌아오는 것도 적어 늘 가난할 뿐이다. 이것은 내세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타인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은 곧 하늘에 재물을 쌓는 것이므로 그렇게 한 사람은 하늘에서도 많은 상급을 받지만, 남에게 베푸는데 인색한 사람은 그 쌓아둔  것이 없으므로 받을 상이 없는 것이다(마 6:19-21; 눅 12:33, 34; 갈 6:7)

9:9 기록한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  본절은  시112:9(70인역 시 111:9)을 인용한 것으로 가난한 성도를 돕는 것이 하나님의 의와  일맥 상통(一脈相通)하는 것임을 보여줌으로써 고린도 교인들이 구제 연보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신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한편 본문의 '의'(*디카이오쉬네)에 대해서는 마 6:1,2에서 나타난 '의' 개념과 동일하게  '자선을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와(Lietzmann), 바울이 말하는 법적 의미 즉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줌으로써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의로운 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뜻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Barrett). 여기서는 바울의 교리적 '의' 개념인 후자의 입장에서 전자를  포괄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9:11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You will be made rich in every way so that you can be generous on every occasion, and through us your generosity will result in thanksgiving to God.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 고린도  교인들이 후한 구제 연보를 한다면 그것은 자신들에게 '의'가 되고 예루살렘의 성도들에게는 유익이 되며 더 나아가 하나님께는 영광이 된다. 왜냐하면 구제 연보의 수혜자들이 그 연보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이 있기까지에는  '우리로 말미암아' 즉 바울 일행의 매개 역할이 중요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울은 구제 연보 사업의 최초 입안자로서 고린도 교인들이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고 그들이 끝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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