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5-6 장 강해>
5:1-2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
1) 당시 고린도교인들의 상황 :은 영지주의의 영향으로 금욕주의에 물들어 있거나 이와 반대로 쾌락주의에 빠져 있었을 것인데(Farrar)
2) 바울의 논지는
ㄱ. 혼인을 금하는 것과 같은 이단 종파의 교리(딤전 4:1-3)를 지지하지 않으며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터이나“
ㄴ. 방종을 허락하지도 않는다.
* '가까이 함'(*하프테스다이)은 '성적 관계를 갖는다'는 말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으로 합법적인 결혼을 뜻한다(Morris). 그러나 본절에서 바울이 결혼에 대하여 반대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남자가 여자에게 가까이 하는 결혼 그 자체를 나쁘거나 죄악스러운 것으로 취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Calvin).
헬라어 본문에 의하면 '심지어'(*홀로스)가 본문 초두에 나와 있는데 이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이미 벌어졌음을 시사한다.
'음행'(*포르네이아)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다른 사람의 육욕을 위해 자신의 몸을파는 행위를 뜻하지만 보편적인 의미로는 불법적인 성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한편 '들었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쿠에타이'(*)는 '아쿠오'(*듣다)의 현재수동태로서 '...라는 소문이 들리더라'는 것이다. 이는 고린도 교회로부터 들었다는 것인지, 아니면 고린도 교회에 음행이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었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글로에의 집 식구들에 의해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1:11, Farrar). 뿐만 아니라 이것은 널리 퍼져 있는 사실이기에 여러 경로(소문)를 통해서 들었을 것으로 여겨진다(Lenski).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 - 유대인의 율법에는 이런 죄를 범한자는 돌로쳐 죽이라고 명시되어 있다(레 18:8;신 22:30). 이러한 율법의 내용을 알고 있는 바울이 구태여 여기서 이방인과 비교한 것은 더 이상 재고의 가치도 필요없는 아주 경멸스런 행위로취급하기 위함이다. 당시 고린도 지방은 성적 문란과 방종으로 소문난 곳이었으나 바울은 그 이방인의 문란보다 더 큰 죄악이라고 규정함로서 자신의 분노를 반영(反映)하고 있다.
한편 바울이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고 말한것은 이방인들은 이러한 범죄를 전혀 저지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본절은 당시 이방인들 사이에서도 가장 치욕스러운 죄로 취급하는 추악한 행위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Calvin).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 바울은 이 사건을 '간통'이나 '근친 상간'이라는 말로 표현하지 않고 '그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고 하여 음행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그의 어머니'라고 표현하지 않고 '아비의 아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아 그 음행이 최소한 '그의 어머니'(친모)와의 관계 속에서 빚어진 음행은 아닌것 같다(L. Morris). 사실 본문에는 그 여인의 정체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그 대상이 '아비의 아내' 였다는 점과 '아내'로 번역된 헬라어 '귀나이카'(*)란 뜻으로 '계모'(* 메트뤼이아)라는 말과 거의 뜻을 같이 하기 때문에 '아내'는 아버지의 첩이거나 의붓 어머니일 수 있다(Farrar, Calvin).
한편 '취하였다'라는 헬라어 본문 '에케인'(*)은 현재 부정사로 이 음행 사건이 단회 적이지 않고 지금도 지속적(持續的)인 반복 행위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여기서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는 말은 계모와의 관계에서 성적 부정이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Harris).
5: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그들은 그리스도의 공동체 속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옛 이방인의 생활 습관을 미처 다 버리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괴이한 악행 가운데서도 여전히 회개할줄 몰랐고 버젓이 그리스도인 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F. W. Farrar). 그들은 음행 사건으로 인하여 적어도 수치스러워하며, 그들의 공동체 속에서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들로 인하여 자신들을 되돌아 보아 최소한 통한히 여기는 모습으로 주의 용서와 은혜를 구했어야 했다.
여기서 '통한히 여기지'의 헬라어 '에펜데사테'(*)는 '죽은 자로 인하여 애통한다'는 의미로 죄에 대한 신자들의 반응이 어떻게야 되는지를 나타낸다.
즉 그들은 자신들이 주장한 자유와 방종으로(6:12;10:23) 인하여 죄악이 성행하게 되었다는 공동체적인 책임을 느껴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공동체적인 책임은 고사하고 오히려 자신들이 영의 사람이 됨으로 말미암아 모든 육체적 일들로부터 자유하게 되었다는 또 다른 교만과 거짓으로 더 큰 죄악을 범하고 있었다.
이처럼 형제의 죄악을 보고 애통할 수 있는 사랑을 잊어버린 교회가 분열과 분쟁을 격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추악한 성적 타락으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바울은, 음행한 자에 대해 무관심 내지 방조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죄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만 가운데 있던 고린도 교인들을 크게 책망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1)그리스도인들의 연대적(連帶的) 책임성과 지체 의식 (2)무관심과 교만은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을 방해하는 범죄라는 점 (3)어떠한 죄악 가운데서도 회개의 은총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수 있다(5절).
5: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즉 멀리 떨어져 있는 교회와 영으로, 곧 마음으로 함께 있음을 의미한 것이다. 아울러 본절의 심각성을 생각할때 바울이 영으로 그들과 함께 하여 문제를 해결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심정이 강하게 암시되어 있다.
거기 있는 것 같이...이미 판단하였노라 - 음행한 자들에 대한 바울의 태도는 매우 단호하다. 그는 '에고'(* '내가')의 강조 용법과 함께 '에데'(* '이미')라는 부사와 '판단하다', '정죄하다', '심판하다'(*크리노)의 완료직설법 능동태인 '케크리카'(*'판단하였다')를 사용함으로써 그들을 향한 심판이 이미 선고되었음을 강조한다. 한편 헬라어 본몬에서 '함께 있어서'(*파론)라는 말에 이어 다시 한번 반복된 '호스 파론'(*'거기 있는 것 같이')이라는 표현은 판결의 순간에 그들과 함께 실제로 있었던 것과 같은 확실성과 자신이 함께 한 심판의 권위가 다시 번복(飜覆)될 수 없다는 절대성을 강조하고 있다.
5:4-5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
바울은 자신의 판단이 독단적이거나 판협된 것이 아님을 증거하고 그들이 스스로 모임을 갖고 자신들의 판단에 의하여 음행한 자들을 징계할 것을 촉구한다.
바울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자 하였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 예수의 이름과 능력(能力)이 함께 한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그들의 판단 기준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설명하고 음행한자에 대한 징계가 정당하고 합법적임을 증거하며 나아가 교회의 징계는 인간의 힘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권위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Harris). 따라서 예수 안에서 자신의 영이 그들과 하나되어 이미 그가 판단한 것과 같은 판단을 내려줄 것을 바울은 기대하였다.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
'내어주다'라는 말을 꼭 이방인의 저주 의식에서 유래된 단어라고 주장할 수 만은 없다. 바울은 교회가 책임있는 거룩한 공동체로서 그러한 자들을 출교시킬것을 권고하였다(13절). 이러한 표현은 딤전 1:20에도 나타나는데 그들의 출교는 일차적으로 그들의 죄악을 심판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다른 성도들을 보호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고린도 교회의 순결한 영혼들을 훼방하지 못하도록 교회로부터 분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한편 우리는 본절에서 중요한 하나의 원리를 발견하는데 그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다스림과 보호하심 아래 머물러 있는 반면 교회 밖은 그리스도의 지배하심에서 떠난 사단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였다는 것이다(Calvin).
따라서 출교는 사단에게 내어주는 멸망의 극단적인 조치로서 그들에게 있어서는 제일 큰 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육신은 멸하고 영은...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 이 구절은 해석상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다. 유대교에서는 육체의 죽음을, 속죄받지 못한 죄들을 속죄하는 수단으로 취급하기도 하였으나 본절에서 이와같은 원리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다시 말해서 육신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영혼이 구원받는다는 견해는 성립될 수 없다는 뜻이다.
성경에는 영과 육이 따로 분리되어 구원받거나 멸망받는 일에 대하여 전혀 말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둘 다 구원받든가 둘다 멸망하든가 해야한다(Lenski). 특히 바울은 다른 모든 구절에서 속죄는 육신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본절의 육신의 멸망과 영의 구원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칼빈(Calvin)은 전반부에 등장하는 '내어준다'라는 말의 법정적, 선언적 의미를 강조한다. 다시말해서 사단에게 내어주는 행위는 일시적(一時的)인 것으로서 궁극적인 심판과 구원에 선행하는 임시 조치라는 뜻이다. 음행한 자들을 사단에게 내어주는 교회의 심판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이며 영원한 그리스도의 심판에 의하여 그의 운명은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참된 사랑의 원리인 징계를 나타냄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이 다시 그들에게 미칠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하며 또한 올바른 징계를 행함으로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야 한다.
한편 바울은 '주 예수의 날'이라는 구절을 첨가함으로써 그 징계받은 죄인들을 주의 백성들 가운데서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따라서 본절에서 범죄자에 대한 징계의 목적을 살펴볼 수 있다. 즉 징계는 범죄한 영혼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이나 유기가 아니라 회개와 돌이킴을 위한 일시적 고난이며 구원을 전제로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이다.
본절은 특히 (1) 범죄자를 그대로 방치하는 행위는 사랑이 아니라 무관심의 소치로서 그 사람을 멸망에 빠뜨리며 다른 사람들까지 함께 타락케 만드는 범죄라는 사실과
(2) 참된 징계의 정신은 사랑이라는 점을 극명하게 교훈해 준다.
5: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 '자랑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우케
마'(*)는 자랑하는 표면적 행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랑하는 내용을 의미한다. 헬라어로 '자랑하는 행위'는 '카우케시스'(*)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자랑할 것이 없다'라고 말한 것은 단순히 그들 교회가 분열과 음행으로 가득찬 교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그들이 하나님의 은사를가졌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음에도 그 사랑과 은사를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은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은사를 죄악을 묵인하는 곳에 사용하였으며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곡해하여 죄악을 용납하고 그들과 더불어 죄악에 빠지는 것에 사용하였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죄악의 행위를 묵인하는 것이 그들의 자랑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L. Morris).
적은 누룩이...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
누룩은 (1) 그리스도의 복음(마13:33; 눅 13:21).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2) 죄(출 12:15;갈 5:9)
“너희는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
등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죄악을 상징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바울은 그들의 자만이 결국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누룩'이라는 하나의 실례를 들어 증명한다. 누룩은 아주 작은 미량의 효소로 그보다 몇 배나 더 큰 반죽 덩어리를 발효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효력은 더욱 왕성해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교회 내의 범법자는 처음에는 그 이웃을 감염시키지만 결과적으로는 교회 전체를 부패시키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갈 5:9).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의 지혜와 은사에 비하여 악의 요소인 누룩이 작아 보였기에 자만 할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들 앞에 닥친 위협은 결코 작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의 지혜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악으로부터 교회의 순결성(純潔性)을 유지하는 일이다(Harris).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1) 누룩없는 자의 의미-
하나님의 백성은 이미 죄로부터 해방된 사람들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기 전의 타락한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이다(Calvin).
2) '누룩 없는 자이어야 한다'는 표현을 하지 않고 '누룩 없는자'(* 아주모이 온테스)라고 한 이유
그의 표현은 그들이 더 이상 죄의 지배를 받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존재 자체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강조한다(고후5:17).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만 하는 신분임을 상기시킨다(4:17).
만약 그들이 아직 거듭나지 못한 자들이었다면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묵은 누룩을 제거하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3) 하반절은 헬라어 원문에서 '가르'(*)로 시작하는데 '왜냐하면'의 뜻을 가진 '가르'는 왜 묵은 누룩을 버려야만 하는것인가 하는 문제와 그들이 어떻게 누룩 없는 자가 되었는가 하는 이유를 암시한다.
4)유월절 어린양을 내세운 이유 바울은 누룩으로 시작된 비유를 유월절의 무교병과 유월절 어린 양이라는 또 다른 비유의 의미에 연결 시키면서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성취된 무교병에 참여한 자들은 더 이상 누룩 있는 떡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Lenski).
5: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 이구절의 전체적인 의미는 '영적(靈的)인 유월절을 지키자' 로 해석한다. 칼빈(Calvin)왜냐하면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새로운 유월절의 개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잡히시기 전날 밤에 만찬에서 떡을 떼시고 포도주를 나누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는 다시 범죄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새로운 명절에 참여한 자들은 옛 습관의 죄악된 누룩을 가지고 새 덩어리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새 명절을 지키고자 하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누룩이 아니라 순전함과 진실함이라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적인 생활이다.
* 묵은 누룩'과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이란 성도들이 그리스도께 속하기 이전에 지니고 있던 죄의 습성을 가리킨다.
* '순전함'(*에일리크리네이아스)은 동기의 순수함을 나타내고 '진실함'(*알레데이아스)은 행동의 순수함을 나타낸다.
새로운 명절, 누룩없는 새 명절은 모든 삶의 영역에서 거룩한 삶으로 드려져야 할 성도의 순결한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롬12:1).
5:9-10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 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1)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 헬라어 '에그랖사'(*'내가 쓰다')는 부정 과거 능동태로서
(1)이미 그가 썼던 과거의 한 편지를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Calvin,Meyer, Godet).
(2)서신서에 등장하는 부정 과거의 특징적인 성격을 생각할 때 '내가 지금 쓰고 있는 한 편지'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와 같은 견해에 반대한다(Lenski, Barrett, Morris). 만약 이 편지가 지금 쓰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면 아직 받지 않은 편지를 두고 그들이 어떻게 오해할 수가 있겠는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편지는 앞서 고린도 교회에 보내진 편지로서 지금 우리에게는 발견되지 않은것들 중 하나라고 보는 것이 학자들간에 널리 알려진 정설이다(Calvin,Meyer, Godet, Harris).
2) 만일 그리 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
for then you would have to go out of the world.
많은 사람들은 본절이 세상과의 분리나 은둔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이해한다(Barrett, Lenski, L. Morris). 그러나 본절이 세상과의 타협과 동화를 뜻하는 말이 아님도 기억해야만 한다. 바울이 고린도에 보낸 서신들의 전체적인 주제는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세상의 음행한 것들과 타협함으로 말미암아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 서신은 타락한 도시 고린도로부터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구별되어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두고 있다.
5: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1) 후욕하거나 : '로이도로스'(*'후욕하는 자')로서 다른 사람에 대한 욕설이나 비방을 서슴지 않고 행하는 것이며(마 5:22)
5:12,13 외인들을 판단하는데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
* 의미 :
그는 성도들의 신앙 규범과 행동 원리를 교회 공동체 내에 한정(限定)시키면서 그들의 동료들 가운데서 발생한 문제들을 스스로 판단함으로써 책임을 다할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교회 공동체가 범죄자를 판단하는 행위를 그리스도인 개인이 성도의 행위를 판단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Lenski).
왜냐하면 교회는 교회의 순결성을 유지하기 위해 공동체를 훈계하고 권징하는 일을 교회적차원에서 행하는 것이지 어느 개인에게 맡겨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의 판단의 권위와 진실성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말씀과 권위에 순종할 때 더욱 명백해질 것이다(Barrett).
* '악한 자'를 뜻하는 헬라어 '호 포네로스'(*)는 한 행악자 개인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보다 총체적인 악의 개념으로 앞에서 열거한 모든 행악자들을 의미한다(Calvin).
* '내어쫓으라'(*엑사라테)는 동사의 주체가 구약의 여러 곳에서는(신 19:19;22:21, 24;24:7) 단수로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절에서는 복수로 기록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들의 판단이 교회 전체에 의하여 행사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6: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 의미 : 당시 율법 아래있는 유대인들이나 이방 종교들이나 사회 단체들 조차도 스스로 분쟁을 해결하는 관행(慣行)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가 세상 법정에 송사한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Morris, Barrett). 또한 그 송사는 부끄러운 것일 뿐만 아니라 세상 법정의 판결에 따라 형제를 멸시(蔑視)하고 괴롭히는 또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Calvin).
* '불의한 자들'(*톤 아디콘)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세상의 재판관'들을 일괄적으로 지칭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적인 의와 세상적인 의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볼 수 있는데 세상적인 의는 인간의 행위나 공로에 그 기반을 두는 반면, 그리스도인의 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이다(롬 1 : 17). 따라서 본절은 (1) 세상 법에 대한 하나님의 법의 우월성과 (2) 성도간의 문제는 법 이전에 신앙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것임을 교훈해 준다.
* 송사는 하지 않아야 하나?
한편 칼빈(Calvin)은 본 구절을 성도는 세상 법정에 절대로 설 수 없다는 견해로 이해하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성도들 역시 불가피한 상황에 따라서는 세상 법정에 송사할 수 있다.
1)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모체한 이후에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 사용하는 차선의 방법이다.
2) 또한 성도는 세상 법정으로부터 출두 명령을 받았을 때 마땅히 법정의 순서상 절차를 따라 출두하여 해명(解明)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성도역시 하나님 나라의 백성임과 동시에 일반 국가 시민으로서 그 책임을 다해야 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법의 정당한 보호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Lenski).
6: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 '판단할'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 '크리누신'은 미래 능동태로서 세상 끝날에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마지막 심판에 성도들이 참여한다는 가르침을 반영하고 있다(마19:28;눅22:3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이 미래에 누리게 될 세상에 대한 왕권 행사(벧전 2:9)를 현실에 적용함으로써 그 사소한 일들조차도 심판할 능력이 없겠느냐고 반문한 것이다.rris).
6: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 그는 앞절에서 사용한 수사적 표현보다 더 강조된 부정 의문을 사용함으로써 그의 논지가 필연적 결론에 도달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 여기서 '천사'(앙겔루스)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유 1:6) 곧 범죄한 천사들(벧후 2 : 4)을 가리킨다(히 2:14).
* '세상 일'로 번역된 헬라어 '비오티카'는 법정 용어가 아니라 '일반 생활 습관에서 발생하는 평범한 일' 들을 의미하는데 그들은 평소에 사소한 마찰 정도도 해결하지 못해 세상법정에 소송한 것으로 추측된다(Farrar).
6: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6: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그러니, 여러분에게 일상의 일과 관련해서 송사가 있을 경우에, 교회에서 멸시하는 바깥 사람들을 재판관으로 앉히겠습니까?”
“Therefore, if you have disputes about such matters, appoint as judges even men of little account in the church! ”
* 본절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두 가지이다.
(1) '경히 여김을 받는 자'가 누구를 가리키느냐하는 것이며
(2) '세우느냐'로 번역된 '카디제테'를 직설법으로 쓰인 수사 의문문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풍자적 어조를 띤 명령문으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카디제테'는 '카디조'(*'임명하다')의 2인칭 복수 현재 명령형이나 문맥상 그 의미는 의문문과 관계된 직설법 동사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 먼저 명령형으로 해석하는 자들은 본절을 다음과 같은 풍자적 의미로 해석한다. 즉
'만일 너희가 세상과 천사들을 심판할 위치에 있는데도 이러한 세상 사건으로 논쟁해야 한다면 차라리 교회에서 교인들 중에 가장 경히 여김을 받는 자를 세워 이런 작은 일을 처리하도록 하라 ! '는 의미로 이해한다(KJV, NIV, Godet, Calvin, Mare, Bengel).
이처럼 명령법으로 받을 경우 '경히 여김을 받는 자'는 교인들 중에 '믿음이 약한 자'로서 '무시 당하는 자' 또는 '어리석은 자'로 해석한다. 그래야만 풍자적 의미가 강하게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2) '카디제테'를 직설법 동사로 이해하고자 하는 자들은 "너희에게 세상사건으로 인한 논쟁이 있다면 왜 너희는 그 사건을 교회로부터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에게 맡기느냐?"라는 의미로 해석한다(RSV, C.K. Barrett). 이 경우 '경히 여김을 받는 자'는 성도들의 송사를 주관하는 '세상 법관'들을 시사 한다.
@@우리는 여기서 전자의 해석을 따르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톰슨주석,Mare, Harris)
3) 여기서 교훈하는 바는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이 누구이든지 간에 그들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정당한 해결자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교회는 분쟁의 사건이 사소한 생활의 문제이든지 아니면 큰 분쟁이든지 교회 자체 내에서 공동체(共同體)의 능력으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바울이 4 : 8에서 고린도 교회를 풍자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사실과 전자의 해석이 일치할 뿐만 아니라 본문의 문맥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때문이다(Mare, Harris). 후자의 해석을 취할 경우 이 문맥에서는 고린도 교인들이 당시의 재판관들을 경멸히 여겼다는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사실 본절의 의미를 어느 것으로 취하든 간에 이 말을 한 바울의 근본 의미는 손상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울이 이 말을 한 목적은 고린도 교인들을 부끄럽게 하려한 한데 있었으니 명령적인 어조든 의문문적 어조든 이 말은 교인들간의 사적 문제를 법정으로까지 끌고간 것에 대하여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6:6,7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The very fact that you have lawsuits among you means you have been completely defeated already
1) 바울은 접속사 '카이'('그리고')를 사용하여 논리를 점진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2) '허물'이라는 헬라어 '헥테마'(*)는 초대 교부들 가운데서 '패배'라는 의미로 자주 사용되었는데(Morris) 본절에서도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에 속한 두 형제는 세상 법정에 제소하는 그 순간 모두 패배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기심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랑의 원리를 저버리고 세상의 법정을 선택함으로써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기를 포기하는 영적 패배를 선택하였던 것이다(Harris).
3) '불의를 당하는 것'('아디케이스데) : '불공평한 상태나 모욕을 당하는'을 뜻하는 단어
'속는 것'('아포스테레이스데) : '강도를 당하다', '빼앗기다'를 뜻하는 단어로서 형제에게 양보하는 것이 마치 강도에게 약탈당하는 것과 같은 불이익(不利益)을 당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양보하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골3: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마5:39-4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6:8-10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 '불의를 행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디케이테'와 '속이다, 빼앗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스테 레이테'는 모두 능동태 동사로서 단지 그들의 소송이 '방어적 소송' 이상임을 시사한다.듯
2) ‘불의한 자’의 뜻과 그 종류
관사없이 사용된 '아디코이'('불의한 자')는 '악을 행하는 집단'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악을 행하는 자들의 특성', 곧 '악의 성격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와 대적 관계에 놓여진 자들'을 의미한다.
* 본절에 기록된 다섯 가지의 악의 형태는 모두 성적 타락과 관계된 것들이라고 할수 있다.
(1) '음란'(*포르네이아)은 모든 형태의 성적 타락을 표시하는 일반적인 의미로 쓰였으며
(2) '우상 숭배'는 당시 이방 신전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행위로서 당시 이방 신전들은 성적 타락의 본거지였기 때문이다.
(3) '간음'은 특별히 결혼의 신성함을 파괴하는 성적 타락을 지칭한다.
(4) '탐색'(*말라코스)은 원래 '유약한', '여자같은'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혹자는 이 단어의 수동적 의미를 강조하면서 남자들과 더불어 음행하는 자들 중에서 수동적 위치에 있는 상대자를 뜻하는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Barrett).
(5) '남색하는 자'(*아르세노코이테스) : 동성 연애자
3) 10절의 내용은
앞절의 행악은 주로 자기의 몸을 더럽히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나 여기서는 주로 이웃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종류의 악들을 기록하고 있다.
(1) 도적(*클레프타이) - 전문적인 강도라기 보다는 '좀도둑'을 의미한다.
(2) 탐람하는 자(*플레오네크타이) - '자기 욕심에 의하여 이웃의 것을 탐하는자'
(3) 술 취하는 자(*메뒤소이) - '술로 인하여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들에게도 해를 끼치는 자들'을 의미한다.
(4) 후욕하는 자(*로이도로이) - '남을 비방하는 자'를 뜻한다.
(5) 토색하는 자(*하르파게스) - 탐람하는 것과 짝을 이루는 것으로서 완력뿐만 아니라 가능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여 '남의 재산을 강탈하는
자'
4) 하나님 유업을 받지 못할 자의 종류가 이것 뿐인가 ?
사도 바울은 당시 고린도 교회에 만연하던 죄상(罪狀)을 지적하여 그들의 수치를 자각시키고 성도 본연의 사랑과 순결의 중요성을 깨우치며 죄악을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음을 명백히 선포하고 있다.
6:11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 '지난 날에 너희는 이방인과 같은 죄악에 빠져 있었으나'를 뜻한다.
바울은 지금 죄악들을 나열하며 지난날 고린도 교인들이 이방인 가운데서 살 때의 죄악과 예수 안에서 얻게 된 새로운 삶을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2)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
* 이제는 더 이상 죄악 가운데 묻혀 있지 않다는 뜻을 강조하기 위하여 헬라어 원문은 접속사 '알라'(*'그러나')를 '씻음', '거룩함', '의롭다 하심'을 뜻하는 세 동사 앞에 각각 하나씩 기록함으로써 주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실 때 일어난 세 가지 사실을 열거한다. 먼저,
(A) '씻음'에 해당하는 동사 '아펠루사스데'는 죄로부터 씻음을 받은 것을 뜻한다(행 22:16;계 1:5) -> '세례를 받았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세례는 세례받는 자의 선택과 고백에 의하여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두 동사와 구분하였다고 한다('거룩함'과 '의롭다 하심'는 부정 과거 수동태로서 그들이 의롭게 된 것과 거룩하게 된 것은 이미 과거의 시점에서 하나님의 주도적(主導的)인 은혜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한편 본 구절에서 주의할 점은 바울이 세 동사를 사용하여 그들의 현재적 신분을 설명하고 있다. 즉, '죄 씻음'과 '거룩'과 '의'는 그들의 죄가 아무리 컸을지라도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었다는 것을 시사하며 그들이 새로운 의의 삶을 지향하게 된 것을 가리키는 법정적 선언의 개념을 가진다.
6: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1)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 바울은 이 구문을 주로 1인칭으로 사용하며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자유를 표현할 때 사용하였다(7:17;9:19;10:23).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이 격언에 대하여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었으며 영지주의자들은 물질과 육체를 경시함으로써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격언을 육체의 방종과 잘못된 결혼생활을 정당화시키는 방편으로 삼게 되었다(Barrett, A. Schlatter).
2)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자유가 곧 무책임을 뜻하지는 않는다. 율법은 '칭의'의 수단으로서의 기능은 상실했으나 여전히 존재하며 율법에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살지만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덕을 세워야 하며(8:1) 자유를 통하여 진실과 사랑을 실천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방종이 아니라 방종을 다스리는 자유이기 때문이다.
3)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값싼 방종의 자유에 노예노릇하지 않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자유는 그리스도에게 맡기겠다
6:13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1)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 이것 역시 12절의 격언과 같이 고린도교인들이 이미 알고 있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은 먹는 것은 육체의 본능이기 때문에 앞의 구절과 같이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다는 뜻으로 이 말을 사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우상에게 바친 음식이라 할지라도 몸을 위하여 또는 식욕의 본능을 채우기 위하여 믿음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8:8;10:25).
그런데 당시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이 격언을 엉뚱한 곳에 적용시키는 자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식물을 먹는 것이 육체적 본능이듯이 성적 욕구를 채우는 것도 육체적 본능의 발로라고 주장하며 그들의 성적인 타락과 방종을 정당화시키려 하였다(Barrett).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태도와 주장을 단호히 거부한다. 왜냐하면 먹는 것과 성적인 욕구는 잠깐 있다가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모두 폐하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새롭게 태어난 몸은 오직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따라 행하며 거룩한 생활 가운데서 주를 영화롭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도는 자신의 몸이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도구임을 자각해야 하며, 또한 그 헌신뿐만 아니라 모든 육체적 생활조차도 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2)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Yet the body is not for immorality, but for the Lord; and the Lord is for the body.”
주님이 오실 때 사람의 몸을 입고 왔다. 만약 우리 몸이 육체의 정욕을 체우기만을 위 있는 것이라면 주님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고오지 않았을 것이다.
6:14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 바울은 성도의 육체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따라 함께 부활할 것을 강조함으로써 육체를 경시하여 성적인 방종에 빠진 자들을 경고한다.
6: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6:16-17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이는 성적 타락으로 더럽혀진 죄악의 상태와 성도의 거룩한 신분을 선명하게 대조시킴으로써 고린도 교인들의 성적 부도덕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성도들의 참된 지향점은 그리스도와 합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나가는 것임을 암시해 준다.
6: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1) 음행을 피하라 - '피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퓨게테'(*)는 복수 현재 명령형으로 한순간의 도피나 연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음행의 유혹으로부터 철저하게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2)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
바울은 여기서 '몸'(*소마)이라는 말과 '죄'(*하마르테마)라는 단어를 특이하게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몸'은 '썩어 없어질 육체' 를 의미하는 '사륵스대신 '소마'를 사용하고 있다(Lenski). 일반적으로 '죄'는 '하마르티아'(*)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본절에서 바울은 '하마르테마'를 사용하여 죄의 행위 자체보다는 그 죄로 인하여 초래될 결과, 즉 이는 음행이 단순히 육체에 행하는 자해적인 것 이상으로 인간의 전인격을 손상시키는 치명적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시사한다.(Morris).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바울은 '몸'이라는 단어를 육체적인 것 뿐만 아니라 인간의 전인격적인 모든 것을
포함하는 용어로 사용함으로써 인간의 전인격인 모든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여야 함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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