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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민족의 기원과 대쥬신 1 ] 우리도 오랑캐

白鏡 2009. 10. 17. 08:01

 

 

[새로 쓰는 한일고대사 출판을 즈음한 칼럼]

한민족의 기원과 대쥬신 1 : 우리도 오랑캐

 

 

한국에서는 漢族을 빼고는 모두 오랑캐로 가르친다. 숙신, 동호도 모두 오랑캐다. 자신도 예맥이라는 오랑캐이면서 말이다. 그러면서도 숙신과 동호는 한국인과는 전혀 다른 종족으로 가르친다. 예맥(만주중부-한반도)은 한국의 직계 조상으로 대표적인 나라는 고조선․고구려라고 한다. 숙신(동만주)은 후일 물길․말갈․여진 으로 불리면서 금․청을 건국한 민족이며, 동호(요서)는 후일 해․실위․거란․몽골 등으로 불리면서 북위․요․원 등을 건국한 나라이다.

 

 

[그림 ①] 동북아시아의 민족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우리가 흔히 배우는 고조선의 유물과 유적지는 동호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있다. 그리고 『遼史』에서는 “요나라는 조선의 옛 땅에서 유래했으며, 고조선과 같이 팔조범금 관습과 전통을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즉 샤머니즘적 단군왕검식 제정일치의 전통이 가장 오래 보존된 지역이 바로 동호지역이었다. 『晋書』에서는 동호계열의 선비족인 모용황이 조선공(조선왕)에 봉해졌으며 北燕의 모용운(慕容雲)도 고구려 출신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국인들의 대표적인 주거시설인 온돌의 기원도 동호 지역이라고 한다. 북위(386~534)의 역사서인 『위서』에 오환(동호)은 요동 만주 지역에 있던 사람들의 총칭이라고 하고 있다. 결국 동호와 우리가 관계가 없다면 고조선의 역사도 우리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배우고 가르치고 있다.

 

『三國志』(관구검전)에는 정시(240~248) 때 위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하자 고구려왕 궁은 매구루(買溝)로 달아났고 “관구검은 현도태수 왕기(王頎)를 파견하여 추격하게 하였는데 옥저를 1천여 리나 지나 숙신씨의 남쪽 경계에까지 이르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 매구루는 현재의 원산에 가까운 지역(문천)이다. 즉 한반도 중부 지역을 숙신의 영역으로 묘사하고 있다. 『고려사』나 『아방강역고』에도 고려 태조의 아버지인 왕융이 궁예를 설득하는 말 가운데 “대왕이 조선에서 왕노릇을 하시려한다면 숙신․변한의 땅인 송악(松岳)을 차지하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충고한다. 즉 현재의 개성을 숙신의 땅이라고 하고 있다. 청나라 때 편찬된 『흠정만주원류고』에 숙신에 대하여 “한나라 때는 三韓이라고 했다.”는 기록도 있다.

 

숙신은 후에 물길, 말갈 등으로 불리며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민족이라고 우리는 배웠고 가르쳤다. 그런데 『三國史記』(백제본기)에는 말갈이 출몰하는 많은 기록이 있는데 이들이 출몰하는 지역은 현재의 수도권과 경기, 충북, 강원 등지로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그림 ②] 숙신이 나타나는 영역

 

한국의 사학계는 이들을 오랑캐로 보면서, 군사적 필요에 따라서 북방에서 동원한 민족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만주지역의 말갈과는 다르단다. 그런데 한반도 중부에서 나타나는 말갈이 많다보니 영서말갈과 영동 말갈로 나누더니, 영서말갈을 다시 남한강 말갈과 북한강 말갈 등으로 나누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이들이 한국인이 아니면 지금 우리도 한국인이 못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고려사』(정종)에는 고려가 화살을 조공하자, 요나라 황제가 東夷의 풍속을 되살렸다고 감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기』에 연나라의 장수 秦開가 동호를 1천리 밖으로 격퇴하였다고 하는데, 『위략』에는 동호 대신에 조선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몽골비사』에는 동호의 후예인 몽골 고유의 시조신화로 코릴라르타이 메르겐의 이동 설화가 있는데 이를 한역하면 고주몽(高朱蒙)과 같은 의미가 된다.

 

동호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쓰이기 전에 중국의 사서에서는 예맥이 요동 만주 지역에 있던 사람들의 총칭이었다가, 한나라를 기점으로 하여 예맥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있다. 예맥은 『三國志』에서는 드물게 보이다가 진나라(265~419)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진서(晋書)』에는 예맥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예맥인이 모두 갑자기 하늘로 솟았거나 땅으로 꺼지고 그 자리를 선비․오환이 채운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요동 만주 한반도 지역 사람들을 부르는 명칭이 다소 변화가 있었음을 의미할 뿐이다. ‘東胡’에서 사용되는 胡라는 말이『漢書』에서는 예맥을 지칭하는 고구려나 고조선을 나타내는 말에도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즉 朝鮮胡라는 말이 보인다.

 

중국의 여러 사서에서는 고구려는 그 지배층의 몰락 이후 고구려의 舊土는 모두 말갈의 땅으로 바뀌어 高씨 왕들은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송나라 때 4대 사서의 하나인 『태평환우기』에서는 “고구려가 멸망하자 고구려의 옛 나라 땅은 모두 말갈의 땅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이 말은 말갈은 고구려인임을 웅변하는 것이고 다만 그 지배층이 高씨라 것을 의미한다. 전주 이씨가 조선 왕권을 대표한다고 해서 그들의 몰락이 바로 조선 백성들의 소멸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같은 시각은 왕조를 중심으로 보는 사관으로 신라의 경우에도 지방민을 읍륵(邑勒)으로 부르고 있다. 그 뜻은 ‘읍루(아이누)같은 촌놈’으로 추정된다.

 

『사기』의 사료였던『국어』나 『춘추좌전』의 기록에는 숙신이 현재의 山西나 河北에서 나타난다. 앞에 본대로 『三國志』시대에는 한반도 중부를 숙신으로 보고 있고, 숙신의 후예인 물길(勿吉)은 막힐부(鄚頡部)를 중심으로 나타났다고 하는데 그 위치가 현재 랴오닝성 창튜현(昌圖縣)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은 고구려가 설치하였고 발해가 계승한 곳으로 과거 고조선의 영역이자 동호의 영역이었다. 허베이 - 요동․만주 - 한반도 등의 영역은 예맥의 이동 및 그 영역과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다. 현대 중국의 관영 사이트에도 말갈의 발음은 모허(Mohe)로 “말갈은 맥족(예맥)의 동음어이다”라고 하고 있다. 예맥은 허모(Hemo) 또는 휘모 등으로 읽혀지는데 이 말은 말갈(Mohe)를 거꾸로 쓴 말로 보인다. 이와 같이 한문 그자체로 보면 전혀 달리 보이지만 그 발음으로 대조해 보면 쉽게 공통성을 파악할 수 있는 용어들이 많다.

 

 

[그림 ③] 물길의 영역

 

결국 예맥, 말갈, 동호 등을 구별할 수 있는 근거도 없으며 이것은 시기적으로 변해온 한국인들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초기에는 조선, 숙신이라는 말이 나오다가 다음에는 예맥이 등장하고 그 다음에는 동호가 등장하더니 다시 해․실위, 숙신․물길․말갈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건국한 금․청 왕조, 북위․요․몽골은 당연히 범한국인의 역사에 편입되어야 한다.

출처 : 역사 카페
글쓴이 : Jusi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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